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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Jan 14. 2024

“둥쏸!” 대만 총통부 집주인은 라이칭더로 정해졌습니다

[대만, 정치의 계절] 다시 일상으로...양안관계도 ‘일상’으로 돌아올까

대만의 새로운 총통은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로 정해졌다. 558만 6,019표 득표, 40.1% 득표율이다. 2024년 1월 13일 치러진 제16대 대만 총통선거의 결과다.  


우리와 달리 각 선거구별로 바로 개표를 진행하다 보니 생각보다 결과가 빨리 나온 느낌이다. 투표 마감시간 오후 4시 이후 줄곧 라이칭더 후보와의 격차를 줄이지 못하던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가 이날 오후 8시경 패배를 인정했다. 최종 467만 1,021표 득표, 33.5% 득표율이다. 라이 후보와의 격차는 91만 4,998표, 6.6% 차이다. 


대만 Yahoo 뉴스 대선결과 화면 캡쳐


기호 1번 민중당 커원저 후보는 최종 369만 466표 득표로 26.5% 득표율이다. 예상보다 선전했다는 평가다. 국민당과의 단일화 실패 이후 ‘사표를 막기 위해 국민당을 선택해야 한다’는 허우 후보측의 공세를, 젊은 층의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버틴 결과다. 투표 전날 1월 12일 총통부 앞에서의 커원저 후보 마지막 유세장은 젊은 세대들로 넘쳐났다.   


투표 당일 13일 오후에는 민진당 당사가 위치한 타이베이 베이핑동루에 라이 후보 지지자 수만 명이 모여 ‘둥쏸(凍蒜)’을 연호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실은 둥쏸을 자막으로 보며 어리둥절했다. 직역하자면 얼린 마늘이 아닌가. 선거 결과를 보며 뜬금없이 얼린 마늘? 대만 민남어로 당선(當選)의 발음과 凍蒜의 발음이 같아 이렇게 표현하고 있던 것이었다.)   


열기는 차이잉원 총통과 라이칭더 후보가 함께 연단에 오르며 최고조였다. 사회자의 쉼 없는 “차이총통!” 연호에 지지자들이 환호했다. 차이 총통이 연단에서 내려오고 마지막 순서로 라이 후보가 연단에 오르자 “라이칭더! 둥쏸!”이 수차례 이어졌다. 라이 예비 총통은 “마침내, 우리 함께 여기에 왔습니다!”고 외친다. 민진당 지지자들에게는 행복한 순간이리라. 


라이칭더 대만 차기 총통 Youtube 화면 캡쳐 (총통 당선 환영 열기. 대만어로 당선과 발음이 같은 둥쏸(凍蒜)이 화면에 나와 있다)


소위 ‘친미, 반중’ 후보의 당선이다. 당선 일성도 민주주의였다. 당선 후 가진 외신기자회견에서도 올해 전세계에서 이어지는 수많은 선거에서 “민주진영의 첫 번째 승리”라며 “대만이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에서 계속 민주주의 편에 서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선거기간 내내 야당과 날카롭게 대립했던 주제인 양안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국제적인 관심사다. 라이 후보는 당선 후 양안관계의 현상유지, 대등과 존엄을 바탕으로 하는 교류 협력, 대결이 아닌 대화를 강조했다. 중국으로부터 ‘분열주의자’로 비난받던 라이 후보는 현상유지를 강조하며 일단 손을 내민 셈이다. 미국도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허나 중국의 반응은 차가왔다. 중국의 대만담당기구인 국무원의 대만사무판공실은 “대만은 중국의 대만”이고 “라이칭더의 득표율은 대만의 주류 민의를 대변할 수 없다”며 날카롭게 반응했다. 통일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피력하기도 했고 말이다. 향후 양안관계를 둘러싸고 긴장 관계가 더욱 조성되고 이로 인해 미중관계 갈등도 야기될 수 있으며 동북아 안보지형이 다시 한번 출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한편 이번 선거는 한 정당이 대만 정치 역사상 처음 3연속 정권을 차지한 선거라는 의미에서도 조명 가능하다. 대만은 1996년 직선제 도입이후 절묘하게 8년마다 정권을 교체해 왔다. 2000~2008년은 민진당 천수이벤 정부, 2008~2016년 국민당 마잉주 정부, 2016~2024년은 민진당 차이잉원 정부였다. 8년마다의 정권교체 공식이 이번에 처음 깨진 것이다. 이를 대만 언론들은 “징크스가 깨졌다”고 보도하고 있다. 중국이 각종 방식으로 국민당 후보 당선을 노골적으로 지원했지만 대만 국민은 친중 정당을 선택하지 않았다. 


민진당은 하지만 총통 선거와 함께 치러진 입법의원(우리의 국회의원에 해당) 선거에서는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고 제1당 자리도 국민당에 내줬다. 의석수를 보면 국민당이 52석, 민진당이 51석, 민중당이 8석, 무소속이 2석이다. 이러다 보니 라이칭더 정부는 원하는 정책을 펼치기 위해 야당의 협조는 필수가 됐다. 특히 8석을 차지한 민중당은 캐스팅보트 역할이 가능해졌다. 


이번 선거에서 개인적으로 관심 있게 바라봤던 지점 가운데 하나는 투표율이다. 최종 투표율은 71.86%로 나왔다. 2020년 총통 투표율(74.9%)보다는 낮아졌지만 2016년(66.3%)보다는 높았다. 우리나라 대선 투표율과 비교해도 약간 낮기는 하지만 그리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이 수치가 놀라운 것은 대만 선거에는 투표율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데도 이러한 수준의 수치가 나온다는 데 있다. 투표율이 낮을 수 있는 요인은 넘쳐난다. 이렇다. 사전투표제? 없다, 부재자투표제? 없다. 정해진 투표소에서만 투표가 가능하다. 자기 주소지에서만 투표할 수 있다. 해외거주민이 투표하려면 귀국해야 한다. 투표일은 토요일이다. 투표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만이다. 그런데도 저런 투표율이 나오는 것은 어떻게 해석 가능할까. 기본적으로 정치 참여 의지가 높다고 해석하는 게 맞지 않을까.


대만 총통선거 전날(12일) 총통부 야경


하여간 이렇게 16대 대만 총통선거는 끝났다. 최소 지난 반년간 대만 언론의, 대만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던 대형 이슈가 마무리된 셈이다. 


사실 총통 선거라고 해서 유세장에서는 떠들썩했지만 일반 국민들의 모습에서는 대만 특유의 평온함이 언제나 묻어나긴 했다. 투표날 궁금해서 찾아갔던 투표소에서도 차분한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집 주변 즈산국민소학교(芝山國民小學校)에 차려진 투표소에는 아이들 손잡고 투표하러 온 젊은 부모나 어르신들이 줄서서 투표 차례를 기다리며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 놀이터 그네를 타며 엄마 아빠가 투표 마치고 나오길 기다리고 있고 낙엽을 주워 나뭇가지에 꿰며 도너츠를 만들고 있었고. 


투표 다음날인 오늘 14일 오전에는 확성기 소리가 나길래 귀 기울였다. 이 지역구에서 낙선한 국민당 후보의 낙선 인사였다. 투표 전에 쩌렁쩌렁 울리던 그 후보의 목소리가 이제는 차분했다. 


주말 아침이면 조깅하는 길에 만나던 어르신도 여전히 맨손 체조하러 집앞에 나와 계셨다. 아침 운동하는 지롱강변에는 여전히 조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고 도우장(豆漿, 콩국)과 단빙(蛋餅, 계란 부침개)을 파는 조그마한 동네 조찬가게에는 아침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다시 일상이다. 아무쪼록 대만인들의 이러한 평온한 일상이 ‘현상유지’될 수 있길 바란다.

 

대만 타이베이 지룽강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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