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소소한 일상]
타이베이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돌아가는 길은 글쎄요. 가볍지 만은 않습니다. 언제나 그렇긴 하지만 이번에는 더욱 그러네요. 생각이 많습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자 돌아가는 날인 오늘, 하루 종일 분주했습니다.
아침 운동은 빠뜨릴 수 없어 새벽 5시 반에 일어났습니다. 집 주변 하천 따라 놓여 있는 산책길을 뛰었습니다. 이 코스 좋더라고요. 한 바퀴 돌면 약 7km입니다. 느린 속도로 달리다 보니 45분 이상 걸렸네요.
이번 연휴 휴가 기간에도 타이베이 일상처럼 매일 아침 뛰었습니다만 이상하게 속도가 나진 않더군요. 5km 겨우 뛰고는 그 다음부터는 뛰다 걷다 해서 한 바퀴 돌았습니다. 그래도 아침의 선선한 온도와 구름 덕에 힘들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아침을 먹습니다. 운동을 다녀오니 이날은 어머니가 일어나 계십니다. 엄마표 김치찌개와 고추절임입니다. 저희 집 트레이드마크 김치찌개에는 당면이 들어갑니다. 당면에 김칫국물이 알맞게 배어있고 당면 특유의 쫄깃함이 어우러져 맛납니다. 어머니가 음식을 잘 하시는데 이번 연휴 기간 처음으로 음식을 하셨네요.
추석 음식으로 큰누나가 해왔던 갈비찜과 작은누나가 가져 왔던 계란말이도 한쪽에 내놓으셨네요. 허나 다시 뚜껑을 닫습니다. 그렇게 아들내미 고기 먹이고 싶어 하시는 양반이 의외입니다.
“아침에 고기 먹지 말자.” 멋쩍게 미소 지으며 하시는 말씀입니다. 연휴기간 보지 못하던 어머니 미소네요. 오후에 시간 되면 진관사 가자하십니다. 어머니의 다소 활기찬 모습에 기분 좋습니다. 진관사 좋지요!
그렇지만 오전에 할 일이 있습니다. 어머니 모시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흉추골절 시술 받은 지 이제 2주 정도 됩니다. 너무 아파하셔서 처음엔 대상포진인줄 알았는데 며칠 지나 신경외과 가보니 골절이었습니다. 그 통증을 어떻게 참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술 후에도 통증은 가시지 않네요. 2주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많이 힘들어 하십니다. 시술 부위가 아니라 옆구리쪽 통증이 심합니다. 앉았다 일어나거나, 좀 걷거나 할 때 못 참아 하십니다. 저녁에 잘 때 더욱 그러하고요. 통증을 잘 참는 분이신데 이번 통증에는 눈물까지 보이십니다. 진통제를 제대로 쓸 수 없으니 그 통증이 온전히 모두 전해질 겁니다.
마땅히 해드릴 게 없으니 옆에서 지켜보는 게 많이 곤혹스럽습니다. 같이 아프기도 하고 그저 쓰다듬기만 하다가도 화도 납니다. 도대체 왜 이리 편찮으신지.. 말도 안 되는 소리인줄 알면서도 괜히 그러네요.
예약일은 원래 내일이지만 내일이면 큰누나가 휴가를 내고 와야 하기에 오늘로 날짜를 바꿨습니다. 이 병원은 다행히 휴일 마지막 날인 오늘 문을 열었네요.
시술부위는 잘 아물고 있습니다. 다만 3개월 정도는 통증이 지속될 수 있답니다. 허리 깁스는 계속 해야 하고 누워 계시는 게 제일 좋다네요. 하여간 오늘 아침에 조금 나아진 모습에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벌써 점심때가 됐습니다. 오전을 병원에서 보내다 보니 피곤할 법도 합니다. 어머니는 거실 소파에서 잠 드셨네요. 저는 잠시 집근처 스타필드로 향합니다. 트레이더스에 가서 와이프가 사오라 했던 진미채를 잊지 않고 챙깁니다.
진미채 사러 가는 김에 스타필드에 있는 침대 매장에 갔습니다. 어제도 작은누나와 함께 갔습니다. 그때는 침대가 아니라 토퍼를 사러 갔던 길이었죠.
어머니가 허리가 안 좋으시니 아무래도 오랫동안 사용했던 돌침대를 많이 불편해 하세요. 그래서 그 위에 깔아놓을 침구류를 사러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려 했던 토퍼를 실물로 보니 마땅치 않습니다. 그다지 효과가 없을 거 같아요. 매작 직원분은 차라리 침대를 바꾸라 하시네요. 허리 아픈 노인분들에게 돌침대 권하지 않는다고요.
어제 그 말을 듣고 누나들과 얘기한 결과 침대 바꾸기로 했습니다. 다만 연휴기간 누나들도 바쁘고 저도 오늘 돌아가기에 어찌 교체해야 하나 조금은 막막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혼자 다시 한번 매장을 가본 것이죠. 일단 보고만 왔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일어나셨네요. 점심밥을 차리고 계세요. 고기를 낼까 했더니 어머니가 여전히 “오늘 우리 진관사 갈 수 있을까?” 하십니다. “어머니 안 피곤하세요?” 괜찮다 하십니다. 고기는 다시 냉장고에 넣어둡니다.
아침에 먹던 김치찌개와 김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진관사로 향합니다. 이번 연휴기간 어머니와의 첫 외출이네요. 진통제를 약으로는 복용하지 못하고 패치로 붙이고만 있는데 패치 효과로 졸음이 생기는지라 계속 잠만 주무셨어요.
진관사 안쪽에 주차를 합니다. 어머니가 예불 드리러 왔다 하니 안쪽에 주차를 하라 배려해 주시네요. 그래도 문제긴 합니다. 진관사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주차장에서 대웅전까지는 꽤 가파른 길이 이어집니다. 성큼성큼 걸어갈 수 있다면야 5분 안에도 갈 거리이고 길도 예쁘지만 허리 깁스를 차고 조심조심 걸어가는 노인에게는 꽤 먼 거립니다.
10여 차례 쉬어가며 겨우 올라갔습니다. 땀도 흘릴 일 없던 어머니 얼굴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네요. 잠시 그늘 아래 앉아 대웅전 뒤 소나무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곤 공양미 사서 대웅전으로 향합니다. 불전에 올리고 기도를 드립니다.
내려오는 길에 진관사 안에 있는 찻집에 들렀습니다. 에어컨이 들어오는 실내에는 빈 자리가 없네요. 어쩔 수 없이 밖에 앉아 있는데 안에 있던 사람들이 나옵니다. 자리가 하나 생겼는데 우리보다 먼저 왔던 한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부부가 들어가니 어쩔 수가 없다 하고 밖에 앉아 있는데 그 아내분이 남편분에게 안에 들어가 어서 자리맡아 놓으라 하고는, 어머니 모시고 들어가라 미소 지으며 문을 열어주네요. 따듯하고 감사한 배려입니다. 덕분에 시원한 실내에서 땀을 식힐 수 있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생강편을 하나 사서 건네 드렸어요.
집에 오는 길에 피곤할 법도 한데 어머니에게 침대 얘기를 넌지시 하니 보러 가겠다 하십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사자하시는 모습 낯서네요. 그만큼 잠자리가 불편하셨던 거지요.
속전속결입니다. 침대 매장 두어군데 들러 허리 아픈 노인분들이 많이 찾는다는 침대 추천받아 앉아보고 누워보고, 바로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필요하셨는데 이제야 알아챘네요. 하여간 누나들과 상의해서 바로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주면 침대가 오게 됐어요. 돌아오기 전에 이렇게 해결하니 한결 마음이 좋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5시가 되어 갑니다. 6시 공항버스 타려면 집에서 5시40분에는 나가야 합니다. 부랴부랴 30분 만에 짐을 챙깁니다. 어머니가 안절부절 입니다. 저녁도 먹지 못하고 갈까 걱정이세요. 10분 만에 어머니가 차려주신 저녁 먹고 일어났습니다. 건강하시라는 말씀드리고 부리나케 집을 나섭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 저녁 10시경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서 ‘고민하고 있습니다’라 했는데 그 고민의 내용은 정작 말씀드리지 않았네요. 지난해, 올해초, 올해 중반, 지금, 어머니를 뵐 때마다 모습이 눈에 띄게 쇠약해 지는 게 보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아픈 곳도 계속 늘어나고 있네요.
이번 추석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실 때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마음이 떠오르고는 가시질 않고 있습니다. 조급해 집니다. 1년이라는 시간을 어머니 옆에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와이프도 비슷한 생각을 은연중 내비치고요.
너무나도 당연한 방향이지만 현실이 녹록치는 않습니다. 해외에서 근무하고 이다보니 임기는 내후년까지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하려면 중도 귀국 신청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거기다 아이 교육 문제도 섞여 있고요.
이번 추석 기간 이 고민이 해결되리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돌아가는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했네요. 고민이 어떻게 결론 날지 아직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렇게 추석을 보냈습니다. 다들 즐거운 추석 보내셨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