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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세아 Dec 07. 2019

아이와 해외 한 달 살이, 도대체 하루 종일 뭘 할까?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서 지내는 하루 일과


 한국에서의 하루는 마치, 마구 구겨 넣어놓아 문을 열면 쏟아져내리는 냉동실 같았다. 

내 삶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몰랐고, 중요한 것들과 급한일들 때문에 아이가 만드는 일정의 변수를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여기서의 아침은 알람을 맞춰놓지 않아도 저절로 눈이 떠지는 평온함으로 시작된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말레이시아가 한국보다 한 시간 늦어 시차 덕분인지 일찍 일어나 영어유치원에 가는 아이에게 아침을 챙겨 먹였었는데, 아이의 자는 시간이 점점 늦어져 지금은 등원 시간을 넘겨 일어나는 바람에 마트에서 많이 파는 오트밀로 만든 쿠키 등으로 아침 요기를 간단히 때워 보낸다. 한국처럼 영어유치원에서 아침 간식이 있는 것이 참 다행이다.





 우리 부부는 아홉 시쯤에 아이를 등원시켜놓고, 한국에서는 먹지 않던 아침을 간단히 차려먹는다. 샐러드와 토스트 혹은 시리얼과 우유에, 남편은 커피를 그리고 나는 밀크티를 곁들여 먹는다. 외식하는 물가에 비해서 마트는 저렴한 편임에도 이상하게 시리얼과 우유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그 가격 이상이라, 매일 먹을 때마다 집에 있는 걸 다 먹고 나면 이제 사지 말고 아침은 그냥 굶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침을 일찍 먹은 날에는 남편은 영어공부를 하고 나는 설거지와 청소, 빨래를 한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기 전에는 그 시간에 수영장에 가고 저녁에도 수영장에 한번 더 갔었는데, 아이가 유치원에 다닌 이후로는 횟수가 부쩍 줄었다. 





 청소가 끝나면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깐 쉬다가 씻는다. 점심 전 남편은 평일에는 매일 그리고 나는 화목만 어학원에 나간다. 나는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데 큰 지장은 없지만 좀 더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위해서 다니고, 남편은 한국에 돌아가서 사용할 비즈니스 영어를 배우고 있다. 한 달 살기가 영영 이민 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돌아갈 차비가 마음 한편에서 항상 있고, 그래서 때로는 불안하고 또 때로는 성실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점심이 되면 간단하게 집에서 밥과 반찬 하나, 혹은 파스타 정도로 차려먹거나 아니면 나가서 사 먹기도 한다. 이곳 조호바루 신도시에서 외국인용 식당이 아닌 현지 레스토랑의 점심값은 12링깃 전후인데, 한국돈으로는 3,600원 정도 되는 금액이라 저렴한 편이기도 하고, 장을 봐서 요리해먹는 것을 계산해보니 오히려 사 먹는 게 저렴할 때가 많아서 외식 의존도는 한국보다 높은 편이 됐다. 오후에는 남편은 주로 낮잠을 자거나 영어공부를 하고, 나는 아이의 브이로그 촬영을 편집하거나 브런치에 글을 쓴다.





 요즘 아이는 2시 30분에 하원을 해서 남편과 유치원 앞에서 같이 기다렸다가 함께 맞아준다. 아이는 요즘 유치원을 나올 때마다 연간이용권을 끈은 레고랜드에 매일 가자고 조르고 있다. 비가 오면 카페를 가기도 하지만, 날씨가 맑으면 거의 아이의 의견에 따라 레고랜드로 간다. 레고랜드에는 워터파크와 수족관도 있어서 쉽게 질리지 않는 모양이다. 레고랜드에 가지 않는 날은 콘도의 셔틀버스를 타고 마트에 가거나 야시장에 장을 보러 간다. 무거운 것들은 테스코 어플로 배달시키고, 가벼운 것들은 사서 온다. 물가가 꽤나 비싸서 가격표를 꼼꼼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저녁장을 봐오는 날에는 저녁을 해 먹는다. 처음으로 김치도 담가보고,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하고 너무 피곤한 날에는 맨밥에 참치만 넣어서 먹기도 한다. 가끔씩은 주변의 맛집에 찾아가는데, 그런 식당은 현지인보다는 주로 중국인이나 여행객들이 많이 온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맛집은 가끔은 후회할 때도 있지만, 깜짝 놀랄만한 맛집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서 용감하게 시도한다. 저녁에는 다 같이 아파트 안의 헬스장에 가거나 날씨가 더운 날에는 밤수영을 하면서 남아있는 아이의 기운을 소진시킬 수 있게 노력한다.  날씨가 아주 선선한 날에는 셋이서 손을 꼭 잡고 산책을 한다. 





 밤이 되면 아직 한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와 함께 한글 학습지를 펼쳐놓고 한 장 쓸까 말까 하다가 자연스럽게 빈 곳에 그림을 그리다 색칠공부로 넘어간다. 잠 없는 아이는 열한 시 전에 잠들면 그날은 성공이다. 그 후엔 주로 다음 한 달 살기를 할 집을 에어비앤비에서 검색하고, 그다음 한 달 살기를 할 나라를 검색한다. 가끔씩은 미드를 보기도 하고, 일찍 잠들기도 한다. 



 


한 달 살기의 하루 일과는 이렇게 별거 없다. 그래도 우리에겐 놀라운 하루이다. 맞벌이 부부로써 워킹맘으로서 허겁지겁 바쁘게 살아왔던 시간을 보상해주는 듯한 그런 마음에 항상 감사하고, 가끔은 분에 넘치는 행복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어서 꿈인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별거 없어 보이는 하루는 나에겐 깨끗하게 정리된 냉장고 같은 하루다. 마치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나는 가질 수 없을 줄만 알았던 그런 것 말이다. 나의 느낌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말은 없을 것 같다.

 오늘도 이렇게 나의 시시하지만 소중한 하루가 지나고 있다.     


   



처음 보는 아이와도 금방 친해지는 활달한 성격의 일곱 살 아이, 로숲이는 세계 일년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스케줄 매니저로, 아빠는 짐꾼과 보디가드로 함께 다니고 있습니다.
로숲 TV :: rosoup https://youtu.be/fpIR1AfLTq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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