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적당한 멋없음과 적당한 가성비가 모두 애매하게 버무려져 있는 매력 없는 도시라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게 좋았다.
곧 발리와 유럽을 넘어갈 우리들에게 앞으로의 감동을 더욱 선사해줄 수 있는 마음가짐을 만들어 줄 것이고,
우리가 머물 모든 곳과 겹치지 않는 느낌의 쾌적한 공간에서 머무르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한마디로 한국에서 느끼던 익숙함에 약간의 생소함의 더해져 있는 곳이다.
많은 쇼핑몰들은 넓고 깨끗하며, 뒷골목의 상가들은 어딘가는 낡았고, 또 어딘가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다.
어디에나 있는 나이 지긋한 택시 아저씨나, 마트에서 마주치는 3살짜리 꼬마 모두 썩 멋지지는 않은 발음의 영어를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동남아에서 꽤 멋진 리조트 수준의 수영장 딸린 콘도 아파트를 한국 아파트 월세 가격으로 머무를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와 함께할 한 달 살기 지역을 선택함에 있어 큰 매리트임이 틀림없다.
이곳, 내가 머무는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의 신도시는 굳이 비유하자면 한국으로 치면 송도의 분위기를 엇 비슷하게 닮아 가고 있다. 넓은 부지에 계획된 도로가 있고, 고층의 신축 아파트 콘도들이 우후죽순 건설 중이다.
몇 개의 아파트 콘도들은 서로 밀집되어 하나의 상권을 형성하고 있지만, 워낙 넓은 부지다 보니 도심 형성에 연속성이 없어서 바로 근처에 있는 다른 상가단지까지도 콘도에서 제공하는 무료 셔틀이나 렌트카, 혹은 그랩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의외로 그랩 비용이 워낙 저렴해서 우리 세 가족이 가장 가까운 대형마트에 갈 때는 한화로 2천 원 수준이고 20분 거리의 약간 해변답지 않은 해변도 약 6천 원이면 갈 수 있으니, 한국의 절반 가격이다. 그리고 뚜벅이로 다니는 것이 꽤나 번거롭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상가가 아주 많이 있는 아파트 콘도를 고른 덕에 그리고 그 곳이 말레이시아에서 아주 보기 드문, 걸을 수 있는 보도가 적당히 설치된 동네기도 해서 큰 교통비 소요 없이 경제적이고 편하게 지내고 있다.
외식비도 저렴한데, 현지 음식을 자연스럽게 먹을 수 있는 식성을 지녔다면 1인 기준 한화 3천 원이면 현지 식당에서 칼국수 맛과 흡사한 판미를 한 그릇 할 수 있고, 치킨이 조금 올라간 백반은 4천 원이면 한 끼를 때울 수 있다.
적당한 인테리어에 적당한 맛을 고려해 볼 때에도, 물가는 다른 동남아 지역에 비해서 턱걸이로 아쉽지 않은 수준이다.
가성비라는 글자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 가족은 전자에 가깝다. 놀 땐 놀고, 돈 벌 땐 돈 벌자는 주의로 고정 소득을 마련해놓고 나오지 않아서 그런 부분이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예상외로, 내 주변 사람들이 아무도 몰랐던 것과는 무색하게 이곳은 한국으로 오해할 정도의 많은 한국인이 머무르고 있다. 신도시 내에서도 특히, 티가 콘도와 에코네스트 콘도의 경우 수영장에 모이는 모든 사람들이 한국인인 것 같다.
처음엔 영어 노출을 위해서 3개월 동안 적응을 하는 곳이니, 한국인이 상대적으로 적은 콘도에 머무를까 고민했지만, 생활편의나 집안, 주변 상가에서 먹고 마시고 길 위에서 마주칠 여러 장면들의 위생까지 고려하면 역시나 어딜 가나 신축인 신도시가 답이었다. 신도시 주변은 누가 봐도 개발도상국의 풍경이 아니며, 비교적 치안도 안전하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국민성도 상당히 긍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여느 동남아와 달리, 길에 파는 모든 물건들은 정가가 표기되어 있고 여행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받기를 시도하는 경험은 이곳에서 당해본 적이 없다.
다민족 국가에서 스스로 프라이드를 높여왔기 때문이라 들었는데, 딱 지불하는 만큼만 사거나 누릴 수 있으며, 과잉 관심이나 과잉 친절과도 거리가 멀기 때문에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순 있지만 내가 만난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한국인들 만큼이나 정직했다.
뭔가 한국과는 다른 특별함을 기대하고 온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치원이나 초등학생인 아이가 영어권에서 영어교육기관에 다니는 것을 경험시켜보고 싶다면, 그러나 괌은 비용이 부담되고, 필리핀은 치안이 걱정되고, 치앙마이는 너무 혼잡스럽고, 다낭은 위생이 걱정된다면.
그렇다면 아마도 말레이시아는 뛰어난 장점은 없을지 언정 그 모든 단점을 상쇄해주는 적당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이슬람 국가에, 아이를 데리고 가도 괜찮을까?
조호바루에선 말레이시아 사람과 인도계 사람, 중국계 사람이 각각 비슷한 비율로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가 처음 느낀 한국과 다른 점은 더운 날씨가 아니라 히잡을 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 왜 언니들이 스카프를 머리에 쓰고 있어?"
"응,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로 약속해서 그래."
"왜 돼지고기를 안 먹기로 약속했어? 맛있는데."
나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렇게 말했다.
" 그건 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인데, 세상에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종교라고 부르고, 여러 가지 종교가 있어. 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하루에 여러 번 절을 하고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대. 그런 약속을 한 사람들은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다녀."
전달이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사람들끼리 서로 이야기해서 여러명의 사람들이 그런 약속했다는 사실을 매우 흥미로워했다.
무교인 나는 천주교도인 남편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종교는 모두 세상을 이롭게 하거나 해롭게 하는 장단점이 모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대한 편견 없이 '종교'가 무엇인지,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와 어떻게 다르게 살아가는지 가르쳐 주고 싶다.
모든 교육이 그렇듯, 답은 없다.
단, 극단적으로 이슬람교를 혐오하는 사람이라면 말레이시아는 선택지에서 살짝 제외해야 할 것 같다.
나이스 한 레고랜드 직원들은 아이를 볼 때마다 환한 웃음으로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하이파이브를 한다. 그러나 그들이 히잡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아이와도 금방 친해지는 활달한 성격의 일곱 살 아이, 로숲이는 세계 일년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스케줄 매니저로, 아빠는 짐꾼과 보디가드로 함께 다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