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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랑쥐 Jul 21. 2021

[아내의 글]배움을 통한 생의 호흡

우리가 일확천금의 부자가 된다면?

intro

우리가 일확천금의 부자가 된다면?


불가능한 일도 상상해보면 재밌잖아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말이야

갑자기 느닷없이 돈방석에 앉게 된다면,

그러니깐 한마디로 엄청난 부자가 된다면


어떻게 살고 싶어?



배움을 통한 생의 호흡


남편과 주말에 모처럼 서울의 외곽에 있는 카페에 갔다.

금요일 저녁, 회식하느라 술을 늦게까지 진탕 먹고 들어온 남편의 모습이 꽤나 괘씸했는지, 오늘은 기어코 나를 위한 시간에 함께 동참해주길 원하는 마음으로 그를 끌고 김포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라떼에 달달한 케이크를 주문하여 건물 밖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비집고 나온 힘찬 초록색 풀을 보고 있으니 안구정화가 절로 되는 화창한 토요일 낮이었다. 주문한 라떼 한 모금과 포송포송한 케이크에 포크를 베어 입에 넣으며 눈을 감았다가, 볼을 비벼오는 봄바람에 눈이 떠졌다.

그리곤 대뜸 남편을 쳐다보며 물었다.


2021.07.18 김포 어느 카페에서 / 오일 파스텔 / 사진_집 화판 위

 


“갑자기 우리에게 일확천금이 떨어져서

 부자가 된다면 말이야, 어떻게 살아 보고 싶어?”


어제 술도 깨지 않은 남편한테 갑자기 카페에 앉자마자 던진 첫마디가 밑도 끝도 없는 '부자가 된다면?'이라는 질문이다 보니 황당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어제 나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이내 나의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질문에 몇 분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글쎄?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싶어”

남편의 대답은 의외였다.

 

다른 친구들과 동일한 대화 주제로

“이따금 로또에 당첨되면?", “비트코인의 J자 그래프의 주인공이 된다면? "과 같은 늘 들어도 흥미진진한 질문을 던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친구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음.. 우선 집이나 건물을 사서 불로소득의 중심에 설 거야~그리고 잔잔한 갬성이 묻어있는 카페를 하나 차리면서 음악회도 열고 , 전시장도 만들면 좋겠다.”

그러면 옆에 있는 다른 친구는,

“아니 아니 아니지. 우선 퇴사하고 건물을 사서 월세나 받고 여행 다니는 게 베스트지 않을까?”

하고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는 게 가장 일반적인 대답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공부하고 싶어’라니!


나는 중 고등학교 때 공부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할 뿐이었다.

“커서 과학자가 될 것도 아닌데 뭐하러 미분 적분 공식을 알아야 해? “

“태정태세문단세.. 미래를 준비해도 시간이 아까운데 과거 이야기를 외울 필요가 있을까”라며 나랑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없어 보이는 공부를 하느라 연필을 잡고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들이 무척 헛수고 같았다.


신통방통하게도 성인이 된 이후로 "공부가 재미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4년 전, 회사에서 아침마다 무료로 열어주는 중국어 클래스를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회사 학점을 채우기 위해 시작했다. 예상외로 중국어 수업은 너무 즐거웠다. 학창 시절 무작정 암기하던 학습과 달리 문화, 숨겨진 한자 획의 뜻, 성조를 목에 핏대 세워가며 열심히 따라 하다 보니 생각보다 재미있는 게 아닌가.

더군다나 가까운 중국을 자주 방문해서 실전에 돌입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메리트였다. 무작정 음식점, 호텔, 관광지에서 열심히 학습했던 언어들을 쏟아내고 돌아오면 그때 온몸에 각인된 즐거움은 더 알고 싶어 하는 갈망으로 바뀌었다.


배움은 책에서만 존재하지 않았다.

나의 일상, 경험, 상상력, 이해력 속에 더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역사에 재미를 느낀 것도 동일한 이유이다. 몇 년 전 우연히 정도전, 선덕여왕과 같은 사극물에 심취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도 사극 드라마 하는 날은 꼭 일찍 들어가 본방사수를 하는 열정을 뽐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드라마에 나오는 조선의 시대적 배경, 인물 관계, 사건들을 스스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고민과 시대정신들을 하나둘씩 만나고 발견하는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쁨이었다.


공부를 하는 것은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공부가 하고 싶다' 혹은 '공부가 재미있다'는 건 아마도 세상과 사람, 그리고 나에 대해 열려 있는 마음의 태도일 것이다.


중국어와 역사를 공부하면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을 탐색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나를 심장 뛰게 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일확천금이 생긴다면?' 이란 질문은 어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대답일지 모르겠다.

여전히 대답은 남편과 같이 '계속해서 공부하고 싶다'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올바른 질문을 세상에 던지고 싶다.

그래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지식과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 그리고 아는 만큼 사랑하는 , 사랑해 나가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이자 삶의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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