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랑쥐 Jul 31. 2021

[남편의글]남편이 미쳤어요 전재산 1/3을 기부하자네

우리가 일확천금의 부자가 된다면?

intro

우리가 일확천금의 부자가 된다면?


불가능한 일도 상상해보면 재밌잖아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말이야

갑자기 느닷없이 돈방석에 앉게 된다면,

그러니깐 한마디로 엄청난 부자가 된다면


어떻게 살고 싶어?



남편이 미쳤어요 전재산 1/3을 기부하자네요


"10억? 20억? 아니 요즘 시세로 20억원은 일확천금이라 할 수도 없지. 최소한 30억원은 돼야 하지 않겠어?"


아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나는 10억원은 기부를 할래."


끄덕이던 아내의 고개가 멈춘다. 눈이 동그래진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말한다.


'미쳤어?'



30억원이면 충분하다. 15억원으로 아파트를 한 채 사고(집값이 미쳤어요), 5억원을 저축하면, 10억원은 기부할 수 있다. 이정도만 가져도 평생 쪼들리며 살 일은 없다. 어차피 일은 계속 할 거니까.


금요일 밤엔 고민 없이 치킨을 시키고, 주말엔 소고기에 와인 한 잔. 아내에게 예쁜 옷도 계절 마다 사줄 수 있겠다.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내가 너무 소박한가?


아내의 표정을 보니 전혀 설득이 안 된 듯 하여 기부에 얽힌 내 학창시절 썰을 좀 풀어보려 한다.


대학생 시절 군대를 가기 전까지 나는 중앙도서관에 가기를 정말 싫어했다. 환기가 잘 안 되는 열람실에선 퀴퀴한 냄새가 났고 화장실은 바닥에 물이 흥건히 고여있을 때가 많았다. 도서관이 별로라는 핑계로 나는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런데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앙도서관 뒤에 거대한 새 도서관이 건립됐다. 밖에서 보면 엄청난 규모에 한 번 놀라고 안에선 말도 안 되게 쾌적한 학습 환경에 또 놀란다. 정말 공부를 부르는 도서관이었다.


알고 보니 이 도서관은 한 사업가가 500억원을 학교에 쾌척하면서 일사천리로 짓게 됐다고 한다. 지을 때 돈 걱정 없이 최고급으로만 발라놓아서 시설 곳곳에서 돈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도서관 내부의 책상, 의자, 책장, 스탠드 등엔 소액 기부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자리에 앉을 때마다 누가 기부한 책상인지 볼 수 있었는데 사업가, 노부부, 직장인 동문 등 다양했다. 이들 덕분에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이곳에서 취업에 성공해 사회에서 자립할 기반을 만들었다.



도서관 시설 뿐이었겠나.

 도서관이 아니었더라도 공부는   있었겠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가정 형편에 따라 받을  있는 장학금의 대상과 금액이 점차 확대됐다.  때문에 갈수록 등록금 걱정을  하면서  학기 등록을   있었고 학자금 대출 없이 졸업할  있었다. 학교 구성원이라서 무료로 이용할  있었던 수많은 학술지와 논문들도 많은 기부자들 덕택에 유지가 가능한 거라고 한다.


이렇게 내가 한 사람의 성인으로 자리잡을 때까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의 기부가 나를 떠받쳐 주고 있었다. 지금 내가 버는 월급의 5할은 내 능력이 아닌 남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얻는 몫인 셈이다.


그때부터 나도 나중에 우리 부부의 이름으로 후배들에게 기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등록금 때문에 시험 기간에 알바를 해야 하는 일이 없도록, 돈 때문에 더 하고 싶던 공부를 포기하지 않도록 그물망을 깔아주는 데 한 올이라도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때?"


나의 장광연설을 들은 아내는 약간 넘어오긴 했지만 역시 10억원은 좀 많다는 표정이다. 어릴 때 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돈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을 잘 아는 아내이기에 1억원 정도는 허락해 줄 것 같은 분위기다. 마저 설득할 다른 방법이 없을까?


미리 고민하지 말자. 어차피 나는 지금 30억원이 없으니까. 생기고 나서 설득해도 늦지 않겠지. 어젯밤 꿈이 좋았는데 로또나 한 장 사러 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내의 글]배움을 통한 생의 호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