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얼굴을 그려보자
intro
3분 동안 서로 눈을 마주쳐보자
그리고 이마, 눈, 코, 입
관찰해보는 거야
우린 닮았을까?
아니면 다를까?
‘~답다’라는 말을 우리는 많이 쓴다. “너답다” “남자답네” “친구답네".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인식을 만들어 놓거나 어떤 성질을 지칭할 때 자주 쓰게 되는 접미사다.
특히나 사람을 보고 ‘무엇 무엇답네’라고 사용할 때에는
구체적으로 연상되는 이미지나 개성이 뚜렷하게 있을 때 자주 표현되기도 하는데.
남편의 첫인상이 그랬다.
‘기자답다’
내가 만들어 놓은 편견 프레임이었다.
냉철해 보이는 눈빛, 단정하게 자른 머리, 구김살 없는 와이셔츠, 잘 웃지 않는 듯한 입꼬리
마음속에 연상되는 딱 기자 이미지였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네 번, 여러 번 만나다 보니
신기하게도 새로운 모습들을 조금씩 발견하게 되었다.
하루는 회사에서 작업을 하다가 손을 다쳐 병원을 갔다가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하철 출구 쪽에서 가장 슬픈 눈을 하며 하염없이 초조하게 기다리며 낯익은 남자가 서있는 게 아닌가
바로 지금의 남편이었다.
그는 나의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가장 먼저 한걸음에 달려와주는 사람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은 눈 녹듯 서서히 열렸다.
기왕 낯간지러운 거, 자랑을 조금 더 해보자면.
나주에 취재를 가는 날엔 '나주배'를 청도에 가면 '단감'을 무거운 백팩에 넣어 한걸음에 달려왔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챙겼는지 매번 걱정해주고
겨울철엔 감기에 걸리지 말라며 유자청을 챙겨주는 그런 소소하지만 따뜻한 사람이란 걸
매 계절마다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현재
‘우리 남편답다'라는 나만 아는 따뜻함의 수식어로 재세팅 하였다.
그리고 어젯밤 서로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 식탁에 앉았다.
얼굴을 그리는 순서에 맞춰 3분 동안 서로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처음엔 조금 키득키득거리다가 어느새 남편의 눈, 코, 입. 볼을 차례대로 관찰하면서
남편만이 온전히 나에게 주는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만난 날 보았던 냉철한 눈빛 대신, 장난기 가득하지만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무뚝뚝한 표정보단 나를 보면 무장해제되어 한없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그림에 담아보려고 했다 (그림은 범죄자처럼 전혀 다르게 그려졌지만..^^;;)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상대가 좋은 이유에 대해 한 줄을 적어야 하는데
남편의 가장 좋은 점을 생각하다 보니 '나를 보며 이렇게 해맑게 웃어주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나의 한 줄 평은
"나를 보고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비록 서로가 장난치며 얼굴은 우습게 그렸지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밀도 있는 친밀감과 애착이 형성된 느낌이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며 깨닫게 된 사실은
'거울처럼' 남편이 웃을 땐 나도 많이 웃게 된다는 사실이다.
가장 잘 웃어주는 남편, 웃게 되는 일상이 고맙게 느껴지는 하루다.
우리 많이 많이 웃고 살자.
ps. 여보, 그런데 그 그림은 나 아니지?
다음 편에 보일 나의 얼굴은 기대하셔도 좋을 듯하다.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