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학습될 수 있는가
여전히 기계와는 진정한 교감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영화 <그녀>가 대단한 점은 나 또한 갖고 있던 그러한 굳건한 신념을 완전히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영화 줄거리에 대해 들었을 때만 해도 인공지능과의 교감과 사랑은 절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심지어 그것과 가족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영화 속 운영체제는 ‘감정’을 학습하는 프로그램이다. 심리학에서도 감정은 학습 가능하며 발달단계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감정을 학습한다는 것 또한 가능한 전제이며, 천문학적 데이터를 통해 귀납적으로 학습한 감정을 가진 인공체제의 언어는 인간이 가진 그것보다 더 섬세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테오도르에 대해 충분히 학습한 사만다로의 위로가 더 진심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사만다는 테오도르가 어떤 감정일 때 ‘특정 숨소리’를 내는지까지 학습한다. 인간관계에서는 아주 오랜 시간 깊은 관계를 맺어야만 겨우 알아챌 수 있는 단서를, 사만다는 단시간에 학습해버린다. 인공지능의 감정은 진짜가 아니기에 교감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관객이더라도 테오도르의 아주 작은 감정 단서까지 알아채고 위로하는 사만다를 보며 인공지능과의 교감도 가능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이 영화가 장르 SF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