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으로써 연결되는 가상세계
‘목소리’로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것은 곧 귀와 입을 필요로 함을 뜻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스마트폰이 없으면 일상이 영위되지 않듯, 영화 속 현대인들에게도 ‘무선 이어폰’과 (폴더 형식의 손바닥보다 작으면서 카메라가 달려 있는) ‘디바이스’는 필수품이다.
바로 이 무선 이어폰을 껴야 비로소 사만다와의 소통이 시작된다. 이어폰을 끼는 순간 테오도르의 육체는 현실 세계에 있지만 ‘사만다와의 소통이 가능한 세계’에 접속되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어폰을 낀 채 말을 하면서 걸어 다니는 풍경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개봉 당시만 해도 이 장면이 꽤 새롭게 느껴졌으나 2020년이 된 지금은 전혀 낯설지 않다는 게 놀랍다. 이 역시 SF의 사고실험이 미래를 예측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디바이스의 카메라 렌즈는 사만다의 ‘눈’이 되어준다. 디바이스와 이어폰으로 사만다의 눈과 입, 귀가 탄생되며 이 세 가지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가 ‘교감’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하는 중요한 물리적 장치다. 문자로만 대화를 나누는 관계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주인공이 손편지를 대신 써줌으로 해서 연결되는 인간 간의 관계보다 사만다와 테오도르의 관계가 더 직접적이다). 이로서 사만다와 테오도르는 ‘같은 것’을 볼 수 있게 되고, 심지어 제3자가 둘의 대화에 참여하기도 한다.
회사의 동료 커플과 테오도르, 사만다가 커플 데이트를 하는 장면은 굉장히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두 명의 인간이 만나 각자의 인공지능 배우자와 함께 부부동반 데이트를 하는세상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또 이런 장면들은 방 안에 혼자 있는 어떤 사람이 인공지능으로 재탄생된 고대 철학자들과 소통하며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