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공허함과 외로움, 관계 결핍을 채워주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이 영화는 현대 SF가 갖고 있는 담론의 성격을 그대로 담고 있다. 수업에서 현대의 SF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와 거리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던지고 있고, 그것이 더 이상 미래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질문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SF는 ‘현실의 윤리적 문제를 살펴보는 픽션’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영화 <그녀>는 인간이 느끼는 관계 결핍을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이 해결해줄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기술이 실제로 구현되었을 때 그 관계는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최근에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이들이 오프라인 모임을 포기하고 강제적으로 ‘집콕’을 하게 된 사태를 두고 한 뉴스레터는 아래와 같은 한 문장으로 표현한 바 있다.
혼자 있고 싶지만 연결은 되고 싶어
영화 <그녀>는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워지고 VR로 성관계를 맺고 여행을 하는 세상이 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고독함을 느끼며 끊임없이 누군가와의 교감을 원할 뿐 아니라 완벽한 관계라는 이상을 좇는 존재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과학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손편지를 나누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감정을 학습하는 인공지능과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더라도 인간이 꿈꾸는 ‘완전하고 영원한 관계’라는 이상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우울증에 걸린 테오도르가 사만다와 교감을 통해 활력을 되찾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솔직하게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으며 진정으로 위로받는 장면들은 인공지능의 순기능적 측면을 보여준다.
부모를 일찍 잃어 고아가 된 아이에게 사만다와 같은 인공지능 부모가 함께해준다면 어떨까? ‘왕따’를 당한 청소년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학습 메이트로서 역할까지 해주는 인공지능이 있다면 어떨까?
여기서 멈추지 않고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관계 결핍, 관계로 인한 상처를 인공지능이 보듬어주는 기술의 역기능적 측면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관계가 현실에서 구현되었을 때 우리가 개발 당시 미처 예측하지 못한 ‘구멍’은 무엇일까? 이 관계에는 어떤 윤리가 필요할까?
영화 <그녀>는 인공지능과의 매칭으로 탄생된 얽히고설킨 그물망과 같은 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이 세상의 소통과 관계는 어떤 양상이 펼쳐질지, 거기에는 어떤 드라마가 생길지, 그런 사회에서는 어떤 것을 각오해야 하고 어떤 것을 대비해야 하는지,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무엇인지 등을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영화 <그녀>는 장르 SF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