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란 무엇인가_관계는 곧 기억, 경험의 축적이라는 관점이 갖는 포용력
영화는 계속해서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감정을 나누는 관계’는 인간만의 특권일까?
테오도르는 인간과 관계를 맺는 것보다 사만다와의 관계를 더 편안히 느끼고 운영체제가 자신의 애인임을 당당하게 밝힌다(이미 그런 관계가 어느 정도 수용되는 사회이기도 하다). 게다가 영화에서는 전 부인, 캐서린과의 ‘회상 씬’이 자주 등장한다. 완전한 이별을 위해 만난 자리에서마저 그녀와의 추억과 아름다웠던 기억을 회상한다. 이미 틀어진 사이라는 현실과는 별개로 캐서린과의 관계가 남긴 것은 결국 ‘기억’이다. 그 기억이 있기에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는 캐서린에게 이런 편지를 쓸 수 있었다.
그냥 네가 알아줬으면 해.
내 맘속에는 네가 한 조각이었고, 난 그게 너무 고마워.
네가 어떤 사람이 되건
네가 세상 어디에 있건 사랑을 보낼게.
난 언제까지나 네 친구야.
영화는 관계는 곧 경험과 기억의 축적임을 보여준다. 기억이 된 관계만큼은 법적으로 완전히 끝났다 하더라도, 또 육체적인 교감이 없더라도 영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어린 왕자>의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이유는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시간 때문이야.
장미꽃에 쏟은 시간, 캐서린과 함께한 시간, 8년간 손편지를 대신 써준 사람과의 시간, 육체가 없는 사만다와 교류하며 쌓아간 시간은 곧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이 바로 관계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관계가 곧 기억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인공지능과 쌓아가는 경험도 충분히 ‘관계 맺기’로 바라볼 수 있다.
또, 사만다가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학습하면 할수록 테오도르를 더 사랑하고 이해하게 되는 역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관계를 소유와 집착으로 보는 관점, 육체적인 접촉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인간다운’ 관점이 갖는 한계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미래 세계에서는 ‘인간다운 관계’를 재설정해야 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