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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호 상하이 Feb 04. 2023

도시 봉쇄의 기록, 출판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멋졌는지 기억하고 싶어요.


새해의 2월이 되면 한 번 이상은 듣거나 하는 소리가 있다. 


"벌써 2월이야!"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새해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원대한 목표와 함께 요란을 떨며 시작한 그 희망찬 시기가 지나고 현실을 마주한 우리 모두의 소리다. 신년이라고 사람 몇 번 만나고, 설날에 가족들 얼굴 보고, 떡국 한 번 먹고 났을 뿐인데 벌써 2월이란다. 모두들 원대한 목표를 향해 잘 달려가고 계시는지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바다를 건너는 '해외' 여행이고 국제선을 이용하는 '해외여행'이다. INTERNATIONAL이다. 드디어 국가 '간' 이동을 감행했다. 3년 만이다. 혹여 이 무서운 역병에 걸리지는 않을까, 내가 걸려 퍼트리지는 않을까, 무엇보다 한국에 가면 중국에서 왔다고 어떤 푸대접을 받을까, 또 반대로 한국에서 중국에 올 때는 마침 벌어진 한국에서의 초특급 확산으로 한국에서 왔다고 또 어떤 푸대접을 받아내야 할까 하는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마지막 국제선을 탔던 2020년의 1월 이후 말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넓은 대륙에 사는 덕(?)에 비행기를 이용한 국내 여행을 종종 하긴 했지만, 나라가 달라지는 비행은 3년 만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더 이상 두렵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과, 이미 그 무시무시했던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 역병에 대한 면역을 보유하고 있다는 당당함이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좋고 좋으면서도 부끄러웠다. 어딜 가면 내가 '정상'이라는 표식을 그게 뭐든 뭐라도 내밀어야 할 것 같아 자꾸 신경이 쓰였다. 3년 간 깊게 몸에 박힌 '방역 습관'은 그렇게 쉽게 나의 마음이나 정신에서 떠나진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또 아무 생각 없이 언제 마스크를 썼냐는 듯, 언제 그런 병이 우리를 괴롭혔냐는 듯 예전처럼 자유로웠던 것이 일상이었던 듯 여행을 한다. 그러다 문득 어떤 가게의 아직 떼지 않은 '마스크를 꼭 착용해 주세요.' 안내 문구나 'QR코드'에 관한 안내 문구를 보면 순간 당황하다 웃음이 피식 난다. 더 이상 무용하고 무효한 공지사항이었다. 물론 개인의 선택에 따라 마스크를 계속 쓰고 다니는 사람도 꽤 있지만 오랜만에 나온 해외이고 모든 것이 이국적인 상황인지라 그 모습이 '코로나'라는 과거의 것과 연결되진 않는다. 



관광지로 경제가 돌아가는 한 동네에선 팬데믹의 여파를 곳곳에서 느꼈다. 문을 닫은 상점부터 대규모의 호텔, 공사를 하다 파산이 나서 철근이 그대로 드러난 채 녹슨 리조트 건물, 운영을 재개했지만 아직 어색하고 썰렁한 기운이 남은 호텔. 택시를 타면 기사님에게 이 나라와 이 동네의 지난 팬데믹의 시간을 묻는 게 부지기수였다. 


"관광객은 거의 없었어요. 많이 문을 닫았죠. 버틴 사람들은 버텼고 못 버틴 사람들은 못 버텼어요. 점점 나아지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 짧은 대화에 어찌 지난 시간의 고충이 다 담기겠는가. 각자가 버텨낸 만큼 우리는 느낄 수밖에. 그래도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이 기사님의 목소리에 묻어났고 덕분에 우리의 대화는 참 밝았다. 


그리고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모아 마지막 말을 덧붙인다.


"No more Covid!" 더 이상의 코로나는 안 돼요! 


나도 따라 외친다. 노모어코뷧! 바이러스에게 해야 하는 말인지, 나라 지도자들에게 해야 하는 말인지 이 외침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그렇게 우리는 어느 섬에서 노모어 코빗을 삼창 했다. 

 

노모어 코비드를 삼창한 날의 노을 


상하이의 많은 한국인들이 춘절, 설날, 방학, 휴가를 이용해 3년 간 보지 못한 가족들을 만나러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중국과 한국이 현재 감정 방역 중이라 비자로 입국 검사로 누가 누가 더 치사한가 내기하고 있는 상황에 글로벌 지구촌 시대를 선도한 사람들은 가족을 만나는 인생의 기본적인 권리를 위해 두 나라의 방역 공지에 귀 기울이며 평소보다 거금을 지불하고 다녀온다. 일본이 비자를 풀었다. 마침 오늘 입춘이라고 한다. 절기상 봄이 왔다. 그리고 내일은 정월 대보름이다. 소원은 분명하다. 현대인의 달력으로 정식 봄이 시작되는 3월이 되면 꽃이 핀다는 소식과 함께 더 이상 감정 방역이 무용해지게 해 주세요 하는 것이 내일 보름달에 빌 소원 제목이다. 


'저도 엄마 아빠 만나러 훌쩍 다녀오고 싶어요. 달님'



여행 중 짐정리를 하다 혹시 몰라 가져온 자가키트와 마스크 한 꾸러미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2020년 이전처럼 여행을 하면서 정말 기쁘지만 또 정말 이상했다. 작년 봄에 우리가 겪은 도시 봉쇄가 마치 꿈을 꾼듯하다. 마침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인기에 더해 봉쇄 기간의 기록을 '나의 봉쇄일지'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흔적이 없었다면 꿈을 꿨다 해도 모를 일이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지인은 가족들에게 봉쇄 때 이야기를 하다 울컥했지만 또 지난 일이라 본인조차도 그랬었나 싶었더랬다. 무엇보다 직접 겪지 않은 분들에게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가 난감하더라고, 아무튼 시간은 소중하니 다 잊고 즐겁게 지내고 왔다는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그래 그게 맞다고 했다. 어차피 지난 일이고 앞으로가 중요하다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외치던 '동타이칭링 动态清零 제로 코로나'도 신문에서도 뉴스에서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고 매일을 예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문득 나는 봉쇄의 기록을 출판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쩌면 아무도 관심 없을 2022년 상하이 도시 봉쇄 이야기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잊고 싶은 이야기 일거다. 그래서 조심스럽다. 게다가 내 삶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야기가 모두를 대표할 수 있을 리 만무하기에 놓친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대로 잊히기엔 우리의 이야기가 무겁고 밝다. 우리가 얼마나 멋졌는지 기억하고 싶다. 도시 봉쇄라는 현대 인류 역사상 전무하고 후무해야 할 일이 벌어졌고 그 안에서 우리는 또 서로 돕고 나누며 답을 찾기 위해 애썼다. 적어도 그 이야기만큼은 기록되어 널리 알려져야 한다.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미국 속담에 그런 말이 있다. 인생이 당신에게 레몬을 주면 레몬에이드를 만들라고. 도시 봉쇄라는 레몬을 받아 레몬에이드를 만든, 아니 비싼 마가리따를 만든 우리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그렇게 퍼내고 퍼내져 또 휘발되고, 새로운 이야기가 23년을 채웠으면 한다. 그렇게 삶이 순환되면 좋겠다. 단순한 도시 봉쇄에 대한 하소연이 아닌, 도시 봉쇄로 일상이 차단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답을 찾아 일상을 이어간 이들의 이야기다. 봉쇄로 아픔을 겪으신 분들에겐 위로와 공감이 되어 트라우마가 아닌 바르고 자연스러운 잊힘이 되길 바라고, 봉쇄를 겪어내며 삶에 대한 힘을 얻으신 분들에겐 계속해서 나아갈 힘이 되길 바란다. 봉쇄의 고난은 기억에 잊어도 우리가 얼마나 멋있었는지는 기록으로 남겨 기억하고 싶다. 책 내자는 출판사는 없지만, 헤르만 헤세도 자가 출판을 했는데, 나라고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할쏘냐. 귀인들과 함께 출판이라는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봉쇄도 겪었는데 뭔들 못하겠는가! 커밍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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