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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호 상하이 Apr 15. 2024

중국 시장에 가는 이유

금사과와 금대파 없는 시장


배달의 민족은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배달의 빠르기와 활성화로 레벨을 따지자면 중국, 아니 상하이는 정말 금메달감이다. 손만 까딱하면 집앞까지 20분 내로 뭐든 배송비도 받지 않고 갖다 주는 편리한 라이프를 만끽한다. 그래도 짬을 내어 종종 굳이 일부러 시장에 간다. 불편함이 주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



조금 이른 시간에 가면 부지런히 하루를 위한 식재료를 구매하는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는데 꼼꼼하게 청경채며 콩깍지며 하나하나 신중히 고르는 모습에 나도 따라 심혈을 기울여 먹고 싶은 야채와 과일을 고른다. 이곳의 어르신들에게 아침 장보기는 일과의 시작이다. 딱 하루동안 먹을 찬거리와 재료만 사가는데 신선한 재료로 끼니를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도 자기만의 속도로 장을 보신다. 그냥 집에서 배달시키시면 편하실텐데 라고 오지랖 넓은 생각을 하다가도 이 루틴이 할머니의 일과에서 가장 중요하고 삶의 활력소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삶을 대하는 깊이 있는 인생의 지혜에 머리가 숙여진다. 모든 것의 기준이 편리함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함께 상하이에 온 직장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처음엔 중국 집 냉장고가 작아서 불편했는데, 오히려 작으니까 그날그날 신선한 재료를 사고, 쟁여두지 않아서 더 건강한 것 같아.’ 선배의 인사이트에 나도 크게 동감했다. 편리가 최우선이어야 할 때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걸 중국 냉장고를 보며 상기시키고, 귀찮아하는 몸을 일으켜 장을 보러 간다. 배달은 정말 급할 때만. 게다가 필요한 만큼 무게를 재서 가격을 책정하는 시스템이라 원하는 만큼 살 수 있고, 장바구니 챙겨가면 대형마트에선 어쩔 수 없는 불필요한 플라스틱이나 비닐 쓰레기와도 만나지 않아도 되니 마음 편한 쇼핑을 즐길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요런 시장이나 마켓에서만 받을 수 있는 프리미엄 서비스가 있으니 바로 계산을 하고 나면 푹 찔러 넣어주는 쪽파 한 뭉치. 약방의 감초처럼 요긴하게 쓰이는 쪽파까지 담아 양손 가득 쫄래 쫄래 귀가하는 길, 앞서 가는 할머니의 바퀴 달린 장바구니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아침 시장 장보기로 행복한 하루가 시작되었으니, 시장이라는 곳이 이 얼마나 가성비 넘치는 곳인가.

사과가 참 싸고, 아직도 딸기를 맘껏 먹을 수 있고, 신기한 과일이 보이면 얼마든 먹을 수 있는 이 생활이 새삼 감사하면서도, 금사과니 대파니 대부분 뉴스로 접하는 나의 나라 생각이 들어 괜히 마음 한 켠이 묵직하다.가깝지만 먼 곳에 있는 딸의 안부가 궁금하실 부모님에게 ‘(잘 지내고 있어요.) 사과 많이 먹고 딸기가 많아 잼도 했어’라며 딸기로 만든 산도 사진과 함께 카톡 하나 남기면 비로서 어느 날의 중국 시장 방문이 종료된다.



시장은 물건 구매 그 이상의 기능을 지닌 곳이다. 타인의 삶을 보게 하고, 내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기술의 발전이 아무리 빠르고 거대해도, 기술을 도구일 뿐, 삶의 본질의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다. 시장에서 얻응 수 있는 것은 비단 사과와 대파만이 아니다. 인생

선배들의 뒷모습, 이웃이라는 공동체, 순환이라는 자연의 이치… 거창하게 명분을 붙여본다. 아무튼 나는 시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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