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만난 말 제4화 | 뚜이부치对不起 몰라요?
“생각보다 뚜이부치对不起를 안 쓰지 않아?"
"맞아, 들어본 적이 없어"
"희한하네... 왜 미안하다고 안 하지..."
'안녕하세요'는 '니하오你好',
'감사합니다'는 '쎼쎼谢谢',
'미안합니다'는 '뚜이부치对不起'
중국에 오기 전 중국어를 전혀 모르던 시절에도 이 세 가지는 알고 있었다. 인사하고 감사를 표현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살이의 기본이니 우선 가장 많이 쓰지 않겠는가. 아무것도 모르고 중국으로 갈 때도 이 세 개의 총알 덕에 든든했다. 인사를 잘하고, 감사를 뱉고, 실례를 끼치면 바로 사과해야지. 그러면 뭐,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겠지.
그렇게 중국생활을 시작하고 오며 가며 주워듣기 생활이 한창이던 어느 날, 몇 안 되는 한국인 동료들과 수다를 떨다 갑자기 이 표현에 대한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생각보다 "뚜이부치"가 잘 안 들린다는 것. 그러고 보니 그랬다. 대륙에 와서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니하오'와 '쎼쎼'와 함께 외친 것이 바로 '뚜이부치'. 길 가다가 실수로 맞은편 사람의 어깨를 치면 지체 없이,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방향이 중복되는 걸 피하면서도 뚜이부치, 그런데 반대로 들은 적은 없었다. 내가 사과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사과를 안 하는지.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데, 이 나라 문화는 대체 뭐지.
"뚜이부치 대신, 부하오이쓰不好意思를 더 많이 쓰는 것 같아"
"부하오이스? 나도 들어봤어. 근데 미안하다는 상황에서 쓰는 게 맞나? 우리 집주인이 주말에 중추절이라고 월병 갖다 주시면서도 그렇게 말하던데, 그건 내가 고마운 상황이었는데..?"
"그러네.. 와이마이(배달)가 좀 늦었을 때 기사님이 부하오이쓰라고 하던데..."
"뭐지 대체 ㅋㅋ"
그렇게 그날의 대화는 결론을 맺지 못하고 끝이 났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시간에 쫓겨 속도를 내며 길을 걷다가 앞사람을 추월해야 하는 상황에서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 있었으니, 바로 "부하오이스". 언젠가부터 내 입에 장착된 그 표현은 필요할 때마다 튀어나와 줘서 구사할 수 있는 말은 몇 개 없어도 센스 있게 대화할 수 있는 외국인으로 만들어주었다. 마치, 중국어를 엄청 잘하는 것처럼 보이게...(실제는 그렇지 않은데) 그날따라 결론을 짓지 못한 그 대화가 떠올랐다. 뿌연 안갯속에 있는 것 같던 그 표현을 이제 몸으로 체득해서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문법을 설명은 할 줄 알아도, 쓸 줄은 모르던 이가, 이제는 설명은 못해도 적당한 때에 적당하게 쓸 줄 아는 서바이벌 중국어 생활자가 된 것에 대한 뿌듯함도 있었다.
교과서로 배우는 미안합니다의 '뚜이부치'는 한국어의 '미안합니다'만큼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중국 사람들이 사과를 잘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른 표현이 있다. '부하오이쓰不好意思[bùhǎoyì‧si]' 일상생활에서 한국어의 '미안합니다'와 같은 급으로 쓰이는 표현은 '부하오이쓰'다. 실례하고, 미안하고, 쑥스럽고, 안타깝고 등등 다양한 때 쓰는 일상의 매너 표현이다. 동료의 집에 월병을 갖다 주는 집주인도 '실례합니다'라는 의미로 인사말을 '부하오이스'로 건넸을 것이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더 공식적으로 많이 쓰이는 사과의 표현으로는 '바오치엔抱歉'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대륙의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에서 오배송이 오거나 환불해야 할 때 판매자와의 채팅 상담에서 자주 봤다.
뚜이부치对不起는 '책임'이 수반되는 정말 큰 잘못을 했을 때 쓴다. 직장에서 잘못했을 때 상사에게 뚜이부치 대신 부하오이스를 쓰면 적절하지 않아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될 것이다. 책임을 통감하는 미안한 상황, 그때 쓰는 말이 뚜이부치다. 한 번은 중국인은 사과하는 것을 체면이 깎인다 생각해서 사과의 표현인 '뚜이부치'를 잘 쓰지 않는다는 나름의 분석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럴 리가... 뭐, 분석의 옳고 그름은 판단할 수 없지만, 가벼운 미안함과 무거운 미안함이 구분되어 있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부하오이쓰는 정말 많이 들린다. 매너의 표현이자 언제 어디서나 먹히는 마법의 표현이다.
영어도 살펴보면 또 재미있다. '미안하다'로 쓰이는 대표적인 표현 I'm sorry는 일상생활에서 '안 됐다, 유감이다, 아이코'까지 아우르는 매너의 표현으로 쓰여 정말 쓰임이 다양하다. 다만, 상황이 바뀌면 돌변한다. 업무나 중요한 사안에서 'I'm sorry'라고 하는 순간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내가 처리하겠소'의 의미가 된다. 그래서 정말 업무 할 때는 조심해서 써야 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있는 한국어 문화권에서 자란 덕에 갈등 상황에서 사과부터 하고 분위기를 어루만진 뒤에 책임 소지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지라 'I'm sorry'부터 시전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만 영어로 업무를 볼 때는 그 말의 무게를 알기에 업무 상황에서는 꾹 참는 표현이기도 하다.
중국사람들이 미안하다고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로 배운 중국어가 충분치 못한 것이었다. 살면서 '뚜이부치'할 순간보다 '부하오이스'할 순간이 훨씬 많지 않은가. 중알못이 알아야 할 세 가지 표현은 이제 '니하오', '쎼쎼'와 '부하오이스'로 바꿔야 할 것 같다. 물론 뚜이부치 할 상황이 생기면 반드시 해야 하지만, 길에서 더 많이 만날 표현은 '부하오이스'일 것이다. 위 세 가지 표현만 상황에 맞게 잘해도 어글리 코리안을 넘어 센스 있는 한궈런(한국인 韩国人) 여행자가 될 것이다.
*중국에서 생활하며 만난 단어와 표현을 주관적으로 풀어 쓰는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상하이에서 만난 말 제1화 : 중국어로 말 뱉을 결심 https://brunch.co.kr/@nonghoshanghai/195
상하이에서 만난 말 제2화 : 중국에 오면 미녀가 되는 까닭 https://brunch.co.kr/@nonghoshanghai/207
상하이에서 만난 말 제3화 : 매실비가 내리는 중국의 장마 https://brunch.co.kr/@nonghoshanghai/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