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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번만 더 May 16. 2024

37. 울지 않았다

31일 차,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마지막 4.0km

9월 1일 금요일


생장을 떠날 때 둥글었던 달이, 이지러졌다 다시 차올라 빵빵해졌다. 한 달의 시간이 한바탕 꿈처럼 흘러갔고 드디어 산티아고에 입성하는 날이 다가왔다.


몬테 도 고소의 언덕을 내려가 다리를 건너고 어제 저녁을 먹었던 식당을 지났다.



아쉬움과 기쁨이 뒤섞인 복잡한 심경으로 조금 더 걸었고,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해가 붉게 돋아 올라왔다.



친구들이 인증샷을 남긴 Santiago de Compostela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한 시간 남짓이면  끝나버릴 4km의 아침길은 너무도 짧게만 느껴졌다.

오래된 도로의 돌바닥을 따라 고풍스러운 시가지에 들어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슬슬 대성당의 첨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였던 탓일 게다. 아니면 생각보다 성당이 덜 멋있게 생겨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종교인이 아니어서 감동이 덜하였던 것일지 모른다.


그도 아니라면 길을 걸어오는 동안 느껴온 감동이,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느낀 그것보다 더 컸기 때문일 게다. 아니면 이제 목적지가 사라져서 허탈한 마음이 들었던지.



나에게 입성일의 맑은 하늘은 허락되지 않았다. 새벽엔 맑았었는데 도착할 때쯤 구름이 잔뜩 모여들고 있었다.


한산한 광장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얼른 순례자 사무실로 내려갔다. 27번 대기 번호표가 주어졌다.



순례증과 거리 인증을 받고 기념품 몇 가지를 구입했다. 배낭에 붙이는 태극기 패치와 핀을 테레사와 까예에게 하나씩 줄 생각이다.



순례자 사무실 정원 밑에 내려가면 큰 락커가 있다. 2유로 동전을 하나 넣으면 사용 가능하고, 배낭 서너 개쯤 거뜬히 들어가니 친구들과 몰아서 보관하고 가볍게 다니도록 하자. 큰 백팩을 가지고 있으면 성당에 못 들어간다.


까페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까 사둔 기념품을 둘에게 건네었다. 내년에 배낭에 붙이고 생장으로 오라 하니 알겠다고 한다.


까페를 나와 올드 타운 거리를 거닐며 시간을 보냈다. 서점에 들러 파울루 코엘류의 연금술사 책을 선물하였고, 기념품 상점에 들러 까미노 기념 티셔츠를 선물로 받았다. 입지 말고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12시가 가까워 순례자 미사에 줄을 섰다.

아스토르가에서 만난 프랭크가 사제단에 있는 것을  본듯한데 외국 노인들은 수염을 텁수룩이 기르면 얼굴 분간이 잘 안 된다.


미사를 마치고 야고보 동상 백허그를 하니 모녀의 순례는 이제 끝이 났다. 둘은 집이 있는 살라망카로 돌아갈 시간이다.


자꾸 테레사가 구급낭, 침낭과 윈드 브레이커 등을 주려고 했다. 짐을 늘리지 않으려고 일부러 작은 가방을 가져왔는데 이러면 새 가방 사야 된다고 웃으며 거절했다. 잘 뒀다 내년 까미노에 꼭 쓰라고 덧붙였다.


까예와 테레사를 태우러 가족이 왔고, 몇 번이고 손을 흔들며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내일부턴 세탁기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날이 흐리고 곧 비가 올듯해 알베르게를 찾아들기로 했다. 누구는 광장에 누워 다른 동료들이 들어오는 걸 하루 종일 바라본다던데 비가 오면 불가능이다.

이동 중에 케빈과 조나 등 아는 얼굴 몇몇을 만났다. 내일 조나와 함께 데카트론에 가기로 했다.

몇은 피스테라 가는 길에 더 마주칠 법도 하다.



부엔 까미노 앱에 노란색으로 표시된 라 에스트레야 데 산티아고 호스텔에 왔다. 표시된 요금 13-25가 무슨 뜻인지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시즌에 따라 13-25가 된다고 하니, 이건 곧 아무 때나 25를 불러도 된단 뜻이다.

아무리 자릿값 10유로를 책정하려 해 봐도 알베르게의 위치는 어중간하다. 중심에서 아주 먼 것도 아니지만 성당에서 여기까지 걸어보면 전혀 가까운 느낌은 나지 않는다. 좀 더 보태 시내  중심가로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8유로짜리 산 라자로 알베르게에 들어간 조나의 말에 따르면 거기서 3일간 연박해도 된다고 한다.

시가지로 다시 나와 데카트론 시티를 들러보았다. 피스테라에서 헌 옷가지를 불살라 버리려면 새 옷 한 벌은 사 가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 매장은 규모가 작아 물건이 많이 없었고 그나마 있는 물건은 사이즈가 없었다.


큰 데카트론으로 나가기 위해 버스를 타려 했다. 그런데 도로 어디가 공사 중이라 정류장이 바뀌었다 하였고, 오스피탈레라의 성의 없는 안내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직접 버스정류장을 찾아서 시내를 돌아다녔지만 구글맵도 도움은 되지 않았다. 스페인어를 못하는 여행객으로서 산티아고의 시내버스를 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사실 순례가 다 끝난 마당에 누가 여기서 데카트론엘 가겠는가. 관심이 없는 게 당연하다.


비가 오기 시작했고 나는 거리의 우산 행렬에 녹아들었다. 여기선 더 이상 사람들이 판초우의를 입지 않았다.


저녁엔 페데와 마테오 안젤라 막스가 마지막으로 모일 모양이었다. 얘들이 아니었으면 오후에 바로 도시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저녁 8시,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내일은 맑아야 할 텐데.

7:20 ~ 8:20

몬테 도 고소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프랑스 길 편 연재를 마칩니다. 내일부터는 무시아 -피스테라 길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날그날 글을 쓴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단은 저녁에 쓰고 봅니다만, 그 후 며칠에 걸쳐 친구들에게 받은 사진과 영상을 추가하고, 마을 사이를 걷는 동안 어떻게 고칠까 생각하고, 다음 마을에 도착하면 짬을 내어 고치기도 보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계속 글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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