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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옥산 Jun 02. 2020

그는 왜 더 이상 울지 않게 되었을까

2018년의 일기

나의 나이
다섯 살, 아버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열네 살, 아버지와 30년을 넘게 함께한 벗이 세상을 떠났다.
스물하나, 아버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스물둘, 아버지의 둘째 형이 세상을 떠났다.

내가 열네 살 때의 아버지는 숨죽여 우셨다. 나도 동이 트는 새벽녘의 그날, 가로등 불빛 아래 아버지 따라 몰래 울었다. 그때의 감각은 마치 허전함을 에워싸는 기분이었다. 그저 평소처럼 덧없이 웃으시는 이현 아저씨를 보지 못해서,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열네 살의 나는 그저 그 정도의 울음뿐이었다. 아버지의 슬픔을 헤아리기엔 한 없이도 어린 열네 살의 나였다.

아버지는 그 이후 누군가의 죽음에 속울음을 쌓게 되었다.
검정 복장의 옷을 입고 무거운 얼굴로 현관문을 들어올 때면 곁의 마지막을 자연스레 알았다. 눈가가 붉다거나 목소리가 잠겼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발걸음부터 공허한 눈빛은 그날 밤 아버지의 술잔에 조용히 함께하게 했다. 그 공허는 마치 주변을 잃어가기 시작한 시점부터 습관이 된 것 같았다.


2017년의 늦여름, 아버지의 탁상은 술잔과 갈색 서류봉투 위에 ‘어머니 그동안 여덟 남매 키우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현희 올림’이라고 휘갈겨 쓴 짧은 편지만이 남았다. 결국 전해지지 못한 채 그 편지가 에워싼 빈 공간은 3일간, 가족들의 울음소리로 채워졌고 아버지는 그때도 울음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결국 2010년을 기점으로 아버지의 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다음 해, 형이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는 장례식에서 이상하리만치 하루 종일 웃으며 지냈다. 조문객이 비는 틈이면 나에게 “내 가는 날도 울지 말고 웃어야 돼. 그래야 돼.”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며 조금 오버스러운 행동도 서슴지 않곤 했다.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면서도 마치 잔칫집스러운 분위기를 주도하며 아버지는 내게 8년 전의 아버지와 달라진 모습을 보게 했다. 아버지는 그동안의 시간을 겹겹이 소화해내며 버틸 수 있는 ‘나름의’ 조문을 한 것이지만 나는 그 복잡한 감정을 소화해내기까지 아직 많이 어렸다. 과연 그런 담담함을 얻기까지 1965년부터 시작된 그의 일생에 얼마나 많은 죽음을 마주해야만 했을까. 그 의연함이 있기까지 죽음은 얼마나 그를 어른으로 만들었을까.

마지막 화장터에 갔던 날, 형의 관을 내리치며 “형, 잘 가! 고생했어.” 하곤 미소 짓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 환한 모습 뒤에 자리하는 큰 속울음이, 몇 달 뒤 아버지의 탁상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형의 사진들이, 끝끝내 이 글을 쓰게 했다. 오랜 마음 한구석에 쌓여있던 이끼 때가 한순간에 씻겨 내려가며 울렁이는 것처럼 요동쳤다. 그 울렁임은 결국 나를 무너트렸다.

아버지는 왜 더 이상 울지 않게 되었을까.

무엇이 그토록 그를 어른으로 만들었을까.

어른이기 위해 그는 얼마나 수많은 이별을 맞이해야만 했을까.

나도 언젠가 마주해야만 하는 그 시간이, 그 순간이 나는 아직 많이 무섭다.


나는 영원히 어른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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