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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Eponine Jan 18. 2022

10월을 위한 영화 31편 03

7일-11일: Goodbye My Love

가을은 유독 슬픈 사랑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반대로, 슬픈 이야기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을 고르라면 가을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슬프게 이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슬픔 속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나 너무 몰두하지는 말고 흘려보내자. 내 이야기는 아니니까. 소중한 내 마음에 남의 슬픔까지 가둬두는 누를 범하지는 말자.



사랑의 은하수 Somewhere in time, 1980


감독 자노 슈와르크 Jeannot Szwarc

각본 리처드 매터슨 Richard Matheson

출연 크리스토퍼 리브 Christopher Reeve, 제인 시무어 Jane Seymour, 크리스토퍼 플러머 Christopher Plummer, 테레사 라이트 Teresa Wright

1972년 5월, 밀필드 대학교. 리처드는 자신의 희곡을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린 후 친구들의 극찬을 듣고 있다. 객석 뒤쪽에는 노년의 한 여인이 조용히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에게 걸어가 그의 손에 회중시계를 쥐어주며 "나에게 돌아와요"라고 말한다. 그로부터 8년이 흐른 1980년 시카고. 리처드는 8년 전 대학교에서 올렸던 작품을 다른 무대에 올리며 성공했지만, 새로운 작품을 쓰지 못하고 있다. 새 작품을 쓰지 못하고 고민하던 그는 무작정 짐을 싸서 여행에 나선다. 그렇게 차를 타고 달리던 중 그랜드 호텔 사인을 발견하게 되고, 차를 돌려 그곳에서 하루를 묵기로 한다. 그리고 호텔 역사관에서 한 여인의 사진을 발견한다. 빨간 벽 한가운데에 놓인 사진 속의 여인에게 몹시도 마음이 흔들린 그는, 호텔 직원인 아서에게 그녀의 이름을 묻고, 그녀가 1900년대 초의 매우 유명한 연극배우인 엘리스 맥켄나이며, 1912년 이 호텔의 극장에서 공연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리처드는 그녀에 대한 호기심을 떨칠 수 없었고, 결국 호텔에 더 머무르며 인근 도서관에서 그녀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기로 한다. 그리고 바로 그녀가 8년 전 자신의 손에 회중시계를 쥐어주었던 그 노년의 여인임을 알게 된다. 


이 영화는 타임슬립이 가미된 로맨스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타임슬립 영화 치고는 매우 과학적이지 않다는 게 특징이다. 물론 타임슬립 영화들이 다 과학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영화들이 타임슬립의 원리를 뭔가 과학적으로 설명을 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영화의 타임슬립 방법은 매우 '환상'에 가깝다. 그러나 그러한 부분이 이 영화의 분위기를 느끼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두 사람이 처음 마주하는 장면이 이미 매우 환상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궁금해진다. 리처드가 호텔 역사관의 벽에 걸린 그녀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였을까, 아니면 엘리스가 그를 찾아와 시계를 건네주던 밤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엘리스의 매니저인 윌리엄이 두 사람의 만남을 예견했을 때였을까? 그렇게 시간의 어딘가에서 만나 사랑을 하던 두 사람은 잔인한 시간의 장난으로 영원히 멀어지고 만다. 처음 봤을 땐 정말 펑펑 울었는데, 다시 보니 어쩌면 해피엔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원 데이 One Day, 2011


감독 로너 세르피히 Lone Scherfig

각본 데이비드 니콜스 David Nicholls

출연 앤 해서웨이 Anne Hathaway, 짐 스터지스 Jim Sturgess, 패트리샤 클락슨 Patricia Clarkson


1988년 7월 15일. 대학교 졸업식 날, 밤새 졸업을 축하하며 에든버러의 온 구석을 돌아다니던 무리는 새벽이 되어서야 헤어지고, 그 가운데 엠마와 덱스터는 어색하게 남겨진다. 엠마와 구면인지 조차 모르는 덱스터, 그리고 덱스터와의 일화를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엠마. 두 사람은 얼결에 엠마의 집에서 하룻밤을 같이 지내고, 친구가 된다. 1년 후, 엠마는 런던으로 이사를 오고, 덱스터는 그녀의 이사를 도와준다. 또다시 일 년 후, 런던에 자리를 잡은 엠마는 멕시칸 식당에서 일을 시작하고, 덱스터는 파리에서 시간을 보내며 영어를 가르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엠마는 글쓰기를 포기한 채 선생님이 되고, 덱스터는 TV 쇼 프로그램의 사회자로 명성을 얻지만 술과 마약에 찌들어 산다. 매해의 7월 15일, 두 사람은 그렇게 때로는 가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친구 같은 관계를 이어간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엠마와 부잣집 아들 인기남 덱스터가 우연히 친구가 된다. 그리고 18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찾고, 때로는 우정과 사랑의 경계선에서 부유하기도 하다 '사랑'이라는 이름에 정착한다. 그러나 이제야 서로를 찾은 두 사람에게 더 이상의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이제 해피엔딩이겠구나, 생각하다 아주 세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그래서 머리가 멍한 상태로 결말을 맞아야 하는 영화이다. 겉돌지 말고 처음부터 진지하게 사랑하면 되었을 걸, 이라는 아쉬움이 터져 나오기도 하지만, 친구로든 연인으로든 어찌 되었든 그들이 함께 쌓아온 18년이라는 시간 자체가 소중한 것이고, 그 시간으로 인해서 마지막의 그들이 만들어진 것이기에 세월을 아쉬워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영화 초반 등장하는 에든버러의 공간들이 왠지 영화의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울린다.


이프 온리 If Only, 2004


감독 길 정거 Gil Junger

각본 크리스티나 웰시 Christina Welsh

출연 제니퍼 러브 휴잇 Jennifer Love Hewitt, 폴 니콜스 Paul Nicholls, 톰 윌킨슨 Tom Wilkinson, 루시 대븐포트 Lucy Davenport

아침부터 사랑이 넘치는 이안과 사만사의 집. 그러나 사만사가 오하이오에서 열리는 엄마의 결혼식에 같이 가자고 하자 이안은 바쁘다는 핑계를 댄다. 게다가 그가 저녁에 있을 사만사의 졸업 연주회까지 잊은 걸 알자 그녀는 매우 서운해한다. 사실 이안은 무얼 선물하면 그녀가 좋아할까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날 저녁, 사만사의 연주회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탄 이안은 택시 기사에게 자신의 마음을 터놓는다. 사만사를 너무 사랑하지만 어떻게 그녀를 행복하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런 그에게 택시기사는, 그녀가 곁에 있음을 감사하며 살라고 한다. 연주회 후 사만사와 함께 식당에 간 이안. 그러나 두 사람의 대화는 묘하게 엇갈리고, 늘 이안의 삶에서 2순위이기만 했던 것이 몹시 속상했던 사만사는 더 이상 못하겠다며 나가버린다. 그리고 그런 사만사를 따라 나간 이안은, 그녀가 탄 택시에 탈 것인지 말 것인지 망설이기만 한다. 택시는 이내 그를 두고 출발하고, 출발한 택시를 쫓던 이안은 자신의 눈앞에서 그녀가 탄 택시가 다른 차와 부딪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안은 그렇게 사만사를 잃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어제와 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늘 함께 있기에, 이안에게 사만사는 늘 '다음'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야 다음이 없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최선을 다하여 사랑하지 않음에 대한 벌과 같은 영화랄까? 어딘가 뻔한 것 같고, 이후의 이야기들이 대략 예측이 되면서도 막상 마지막에는 눈물이 터지고야 마는 그런 영화이기도 하다.


스타 탄생 A Star is Born, 1937


감독 윌리엄 A. 웰먼 William A. Wellman

각본 도로시 파커 Dorothy Parker, 앨런 캠벨 Alan Campbell, 로버트 카슨 Robert Carson

출연 재닛 게이너 Janet Gaynor, 프레드릭 마치 Fredric March

영화를 너무나 사랑하고, 언젠가는 영화배우가 되길 꿈꾸는 시골 처녀 에스더. 식구들은 그녀가 헛된 꿈을 꾸고 있다고 조롱하지만, 그녀의 할머니만큼은 그녀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격려하고 그동안 모아둔 돈을 주며 할리우드로 떠나라고 한다. 그렇게 할리우드에 입성한 에스더는 스타가 될 확률이 백만분의 일 밖에 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얼마 후 그녀는 하숙집에 새로 들어온 조감독 대니를 만나게 되고, 대니와 함께 공연장에 갔다가 대배우 노먼 메인을 보게 된다. 영화에서의 멋진 모습과는 달리 술에 취한 채 난동을 부리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실망한다. 얼마 후 대니는 에스더에게 영화감독 파티의 웨이터 자리를 구해주고, 그녀는 파티에서 노먼 메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 이후 노먼은 자신의 제작자인 올리버에게 그녀의 테스트를 부탁하고, 그녀는 결국 영화사와 계약을 하게 된다. '비키 레스터'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된 에스더는 노먼 메인이 주연하는 영화의 여주인공 자리에 들어가게 되고, 영화 개봉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변해버린다. 스타로서의 명성과 노먼 메인의 아내라는 두 가지를 손에 쥐게 된 것이다.


'A Star is born'은 떠오르는 신성과 저버린 스타가 기쁨과 고통 사이에서 사랑하고 힘들어하고 슬퍼하는 이야기이다. 특히 이 작품은 동명으로 개봉한 4편의 영화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다.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 네 명의 배우, 프레드릭 마치, 제임스 메이슨,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브래들리 쿠퍼 중 가장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배우가 바로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 프레드릭 마치이다. 그가 연기한 노먼 메인은 과격함과 부드러움, 진지함과 유머러스함, 우울함과 즐거움 사이를 적절하게 유영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후반부의 슬픔이 더 와닿는 것 같다. 그래서 매번 볼 때마다 눈물이 나기도 하고.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 상대의 모든 것을 받아내고 위로하기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매우 복잡하고 외로운 존재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니 더 슬퍼지기도 한다.




스타 이즈 본 A Star is Born, 2018


감독 브래들리 쿠퍼 Bradley Cooper

각본 브래들리 쿠퍼 Bradley Cooper, 에릭 로스 Eric Roth, 윌 페터스 Will Fetters

출연 브래들리 쿠퍼 Bradley Cooper, 레이디 가가 Lady Gaga, 샘 엘리엇 Sam Elliott, 앤소니 라모스 Anthony Ramos

유명 가수 잭슨 메인은 투어 공연을 왔다가 인근 바에 들리고, 그곳에서 'La Vie en Rose'를 부르는 앨리 보고 반한다. 두 사람은 공연 후 함께 술을 마시러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잭은 앨리가 가수를 꿈꾸지만, 외적인 이유로 인해 좌절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다음날, 잭은 앨리를 자신의 공연에 초대하려 사람을 보내지만, 앨리는 출근을 핑계를 이를 거절한다. 그러나 그녀가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곳의 관리자가 괴팍하게 굴자, 이내 친구와 함께 그곳을 나와 잭이 보낸 전용기를 타고 그의 공연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잭은 그녀가 이전에 들려주었던 곡을 편곡해서 연주하고, 그녀를 무대 위로 불러 함께 노래한다. 이후 두 사람은 더 가까워지고, 앨리는 잭의 투어를 함께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다. 


37년도 영화와는 주인공의 직업도, 이름도, 분위기도, 시대도 달라졌지만, 신기하게도 이 진부한 이야기에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모든 게 달라졌지만, 그 이야기가 가지는 마음을 흔들고 감정을 뒤섞는 여전한 힘을 경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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