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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창업 Feb 22. 2021

매일 마주치는 퇴사 현장

우리는 매일 퇴사 한다.

회사 1층 라운지를 카페로 만들어 놓고 직원의 복지를 위해 신경을 많이 쓰는 것처럼 대외적으로 보이고 싶던 나의 전 직장은 아침마다 1층이 북새통 이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회사가 직원을 위해 저렴하게 제공하는 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아이러니 한 것은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마련한 공간에서 직원들은 모두 회사 욕을 한다는 것이다. 상사의 눈을 피해 요리 조리 모여 앉아서 아침 마다 나에게 떨어진 업무의 불합리함과 상사의 공정하지 못한 태도, 그리고 옆 팀의 싸이코 팀장 욕까지 마무리가 되면 이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재미있는 건 우리의 상사들이라고 해서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지 않은 건 아니다. 높은 분들은 높은 분들끼리 그렇게 삼삼오오 시작되는 매일의 아침 풍경이다. 


한잔을 해야 할 건수들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우리는 각자 회사라는 타이틀을 떼고 보면 성격이 비슷하거나 취미가 같다거나 좋아하는 이상형이 일치하는 것도 아닌데 같은 회사를 다니고 팀워크를 맞춘다는 이유로 전우라도 된 듯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미션을 왠지 잘 마치고 옆 팀 싸이코 팀장에게 보란 듯이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아침에 못다한 이야기를 삼겹살 연기를 맡아가며 저녁에 복습을 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메뉴는 퇴사이다. “나는 언제까지만 회사를 다니겠어” 혹은 “더러워서 때려 치자!” 감정이 격한 날은 격하게 기분이 좋은 날은 순화되어 나오는 표현이지만 누구나 가슴 한 켠에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 늘 사직서를 품고 애를 낳으면, 애가 유치원에 가면, 애가 초등학교에 가면 이라는 유예 기간을 줘 가면서 나를 달래기도 하고 상황을 합리화 시키기도 했다. 누구나 언젠가 한 번은 퇴사한다. 잠시의 휴지기를 갖고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할 수도 있지만 더 이상 고용되지 못하는 영원한 퇴사의 순간 역시 누구에게나 온다. 


최근에 전 직장 임원의 퇴사 소식을 들었다. 퇴사 라기 보다는 은퇴에 어울리는 표현이 맞겠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한 직장에서 그렇게 오래 근속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라고 반문을 제기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자발적 퇴사자 보다는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길게 근속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근속을 응원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퇴사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권고사직 같은 형태의 퇴사가 젊은 층까지 내려 왔다. 재직 중인 사람들의 근속을 보장할 수도 없다. 우리는 매일 퇴사의 현장에 있다. 영원한 퇴사의 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공포감을 느낄 수도 있는 이 단어에 굳이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퇴사라는 것은 영원히 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사회 속의 한 집단에서 나를 도려내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언젠가 퇴사라는 순간을 마주 한다. 남자라면 누구나 언젠가 군대에 가고 여자라면 누구나 언젠가 출산을 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확률만큼 높은 것처럼 그냥 누구나 언젠가 마주할 퇴사라는 순간에 겁을 먹지도, 뿌리치지도 말았으면 한다. 들어갈 땐 용을 쓰고 들어가더니 나올 땐 또 겁을 먹으면서 나오는 것이 재밌다. 내 발로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나온다는 것은 새로운 문이 열리는 것이기도 하며 누구에게나 한번 오는 순간이니 자연스럽게 나와 마주하자. 어떤 퇴사의 순간을 맞이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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