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 제주 여행을 시작하며

프롤로그 - 코로나와 함께 한 1년

by 조이홍

처음에는 별거 아니려니 했다. 며칠 이러다 말겠지 싶었다. 공식적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 나온 게 2020년 1월 20일이었다. 이후 한 달여간 확진자는 하루에 한두 명에 불과했다.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언론에서도 가끔 단신으로만 뉴스를 전했다. 일상은 언제나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평범했다. 마침 봄꽃 소식에 맞춰 제주도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그간 대부분 제주 여행은 여름에 떠났다. 한두 차례 가을의 제주를 만나기도 했지만, 봄과 겨울의 제주는 아직 탐구해야 할 미지의 세계였다. 사실 매해 봄 제주로 출장 갔더랬다. 일부러 출장 핑계를 만든 건 아니었지만 5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그때 처음 제주의 벚꽃을 보았다.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제주는 가장 먼저 벚꽃을 피웠다. 개화시기에 맞춰 '왕벚꽃축제'도 열렸다. 팝콘처럼 터진 제주의 벚꽃은 유난히 희고 탐스러웠다. 겨우내 땅속 깊숙이 잠들었던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고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는 봄의 제주는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시원한 바다에 몸을 맡기는 여름과는 다른 묘미가 있었다. 생기 넘치는 봄의 제주를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꼭 한 번 보여주고 싶었다.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제주 한달살이 할 때 계획했다가 미처 가지 못했던 다랑쉬 오름과 용눈이 오름도 오르고, 장장 10km에 걸쳐 유채꽃과 벚꽃이 흐드러지게 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꼽힌 '녹산로'도 걷고 싶었다. 제주 해안선을 따라 자전거 여행도 해보고 싶었다. 봄의 제주가 나를 욕심쟁이로 만들었지만 그 욕심이 부끄럽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아 매일 밤 검색했다. 여행자에게는 준비하는 과정 역시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코로나 상황이 점점 심상치 않았다. 하루 확진자가 점점 늘더니 급기야 900명에 이르렀다. 감기처럼 가볍게 지나갈 줄 알았던 코로나가 우리 삶 한가운데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속보로 특집으로 코로나발 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왔다. 첫 사망자도 나왔다. 마치 인류 최후의 날이 눈앞에 닥친 것 같았다. 불안감이 공포로 바뀌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빠르게 번지는 낯선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소한 방역지침이 시행되었다. 아이들 개학이 한두 주 연기되더니 급기야 등교 대신 비대면 수업을 진행했다. 회사들도 빠르게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코로나로 10년이 앞당겨졌다는 '언택트 시대'는 혼돈 그 자체였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으니까.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같으리라는 믿음은 신기루처럼 눈앞에서 사라졌다.


바뀐 일상은 모두에게 낯설었지만, 우리 가족 특유의 명랑함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매일 다니던 수영장을 더는 갈 수 없게 된 아이들과 틈나는 대로 동네 뒷산을 올랐다. 극장에 가지 못하는 대신 주말이면 거실에 캠핑용 스크린과 빔프로젝터를 설치해 가족 영화관도 차렸다. 때론 김치볶음밥, 때론 피자와 팝콘을 먹으며 좋아하는 영화를 마음껏 보았다. 부루마블로 세계 도시들을 정복하고, 할리갈리와 치킨차차, 고스트 헌터 같은 보드게임으로 치열한 승부의 세계를 경험했다. 평소처럼 자유롭게 외출할 수 없어 답답했지만, 그런대로 참을만했다. 게다가 아직 제주 여행이라는 희망의 불씨도 품고 있으니 버틸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불씨가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는 것을.


목을 쭉 빼고 기다리던 제주 출발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텔레비전을 통해 충격적인 뉴스를 보았다. 우리 가족이 그토록 걷고 싶었던 녹산로의 유채꽃길이 사라졌다는 보도였다. 코로나 시대에 관광객의 이목을 사로잡는 유채꽃을 가만 둘 수 없었나 보다. 축구장 13개 크기라는 유채꽃밭은 4대의 트랙터가 온종일 갈아엎어야 할 만큼 넓었다. 봄 나비가 훨훨 날아다녀야 할 꽃밭에 뿌연 흙먼지만 가득했다. 트랙터 아래로 짓이겨지는 유채꽃들은 비명을 질렀다. 저 유채꽃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 유채꽃밭을 갈아엎기로 한 마을 주민의 마음 역시 편하지만은 않았을 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코로나 청정지역이던 제주에 관광객과 함께 전염병이 올까 두려웠을 마을 주민의 고심에 찬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을 주민도 유채꽃도 안쓰러웠다. 아름다운 녹산로를 걷는 것 말고도 가보고 싶은 곳,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았지만,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끝에 제주 여행을 포기하기로 했다. 집에 머무르기로 했다. 우리의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으로 이어지길 바라지 않았다.


제주에 닿을 수 없다는 걸 깨닫자 그리움은 더욱 커졌다. 인간은 가질 수 없는 것을 더 원하는 법이니까. 봄의 제주는 만개한 벚꽃들로 아찔하다. 꽃망울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큼지막하다.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터진 팝콘을 그대로 닮았다.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서 본, 여의도 윤중로에서 본, 설악산 입구 벚꽃 터널에서 본 벚꽃 모두 감탄사가 절로 나왔지만, 꽃망울만 보면 제주의 그것을 벚꽃의 여왕이라고 부를 만했다. 유채꽃은 또 어떤가? 제주에서 유채꽃은 기름을 얻기 위한 유료 작물로 처음 재배되었다. 추위와 습기에 강하고 빨리 자라는 습성이 있어 척박한 섬의 토양과 잘 맞았다. 유채꽃은 고된 삶을 살았던 제주의 아픈 기억이기도 한 셈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지천으로 핀 유채꽃이 제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되었다. 봄이면 상춘객을 불러 모으는 대표적인 관광상품이 되었다. 한 해에도 몇 번씩 20년 넘게 제주를 찾았으니 그 풍경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만개한 유채꽃을 보면 눈 내리는 날 마실 나온 동네 개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좋아 어쩔 줄 모른다. 올봄 꼭 걸어보리라 다짐했던 제주의 꽃길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가지 못하니 그 어느 때보다 더 간절히 제주에 가고 싶었다. 그 순간 생각 하나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우리 가족처럼 제주로 떠나지 못하고 스스로 고립된 여행자들을 위로해 줄 방법이 없을까?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들과 제주를 향한 그리움을 공유할 방법이 없을까? 이런 질문에서 '랜선으로 떠나는 제주 여행'을 구상하게 되었다. 마침 제주 한달살이 하면서 찍었던 예쁜 사진들과 공부했던 책들도 있어 시도해볼 만했다. 사실 한달살이가 끝난 후 그 경험을 책으로 내보려고 써놓은 초고도 있어 새로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도 적었다. 물론 그중 일부를 <탐라유람기>라는 브런치북으로 만들어 이곳에 소개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독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은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 글을 통해 나 자신부터 위로받고 싶었다.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되지만, 그 대상이 동경하는 제주이니 더할 나위 없었다. <랜선 제주 여행 - 익숙한 제주, 낯설게 즐기기>는 제주에 닿을 수 없는 여행자를 위한 애절한 연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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