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이에서 사랑하는 사이로
2015년 11월, 그에게 대뜸 밥 먹자고 문자를 보냈던 그 날 이후로 벌써 4년 하고도 3개월이 흘렀다. 지금도 친구들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냐고, 자기였으면 절대 못했을 거라고 이야기하지만, 돌이켜봐도 난 그 날의 내가 참 대견스럽다. 그 날의 용기가 아니었으면 그 남자는 지금 내 옆에 없었을 수도 있으니까.
감탄할 줄 아는 사람
그를 알게 된 건 7년 전, 아는 언니가 만든 직장인 독서모임에서였다. 처음 만났을 땐, 그저 인상이 선해 보이는 아는 오빠에 불과했고, 둘 다 만나는 사람이 있었던 상태라 연애 상대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오랜 시간 함께 독서 모임을 하면서 이 사람에 대해 알게 된 건, 굉장히 사이가 좋은 따스한 가족 안에서 자라났다는 것, 그리고 남을 세심하게 잘 챙겨 준다는 것 정도?
"가장 존경하는 사람? 우리 아버지"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부모에게 불효를 한 적이 언제였냐는 질문에 "롯데시네마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일부러 나를 보러 영화관에 와서 반갑게 인사하시는 어머니한테, 바쁘니까 뒤에 가서 줄 서시라고 말했었어" 이야기를 하며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는 모습에, '아 이 사람, 나랑 엄청 다를 것 같다'라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독서모임을 하던 토요일, 그 날의 책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모임원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 15분, 유인경 기자님의 강연을 보게 됐다. '우리가 살아가며 태도라는 것이 중요하다, 'Surprise'가 그중의 하나다'라는 이야기였다. 인생을 살아가며 작은 일에도 감탄할 줄 아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무렵 내 인생은 감탄과는 거리가 먼, 먹구름이 가득 낀 잿빛 하늘 같았다. 삐그덕거리며 오랜 기간 유지해오던 힘든 연애를 끝냈고, 2년간 다닌 첫 회사에서도 엑셀 실력과 술배를 빼곤 남는 게 없는 것 같아 방황하고 있던 시기였다.
내 인생에서 어떻게 감탄을 되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기자님의 강연을 듣던 모임의 한 언니가 이야기했다.
"이거 완전 오빠 이야기네? 오빠, 우리가 무슨 이야기 할 때마다 놀라워하잖아."
그 순간, 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됐다.
오빠, 저 지금 사람 만나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마침 그 날로부터 일주일 뒤가 빼빼로데이! 독서모임을 하는 3년 내내, 모임 준비 이야기 이외에 사적인 대화를 단 한 번도 주고받지 않았기에, 갑자기 만나자고 연락을 하려니, 핑계가 필요했다.
나: 오빠, 혹시 다음 주 수요일 저녁에 시간 돼요?
오빠: 어? 시간은 되는데 왜?
나: 아, 생각해보니 우리 독서 모임 오랫동안 했는데 개별적으로 모임원들에 대해서 제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아서요. 지난주엔 A언니를 만났고, 이번 주는 오빠 차례예요. 저 지금 사람 만나기 프로젝트 중이에요.
오빠: 어어? 어... 그렇구나! 그래, 수요일에 보자!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핑계지만 이유가 중요한가, 일단 만나기로 했으니 그걸로 된 거지. 약속은 잡았으나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장장 네 시간에 걸쳐 빼빼로를 한 바구니 만든 것으로 모자라, 하필 그 날 오빠가 퇴근 직전에 회사에 일이 생겨 날을 다시 잡자는 걸 굳이 책 보면서 기다리겠다고 우기고 우겨, 5시간을 기다려 밤 11시에 만나자마자 빼빼로를 안겼으니. 나중에 그에게 그 날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물어보니, 그냥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적극적으로 행동을 하기 전에, 서로에게 마음이 있다는 작은 신호라도 오고 가는 게 일반적인데, 그러면 '얘가 나를 좋아하나?'라는 생각이라도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해볼 시간도 주지 않았으니 ‘이게 뭐지?'라는 당황스러움.
결과는 그를 ‘남편’이라 부르게 되었으니 해피엔딩. 어쩌면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살게 되었으니, 웃으며 그 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 날 이후로 그가 나를 부담스러워 피해 다녔다면, 생각날 때마다 이불킥하고 싶은 흑역사로 기록되었겠지. 누군가는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도,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보단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결혼하는 게 행복하다'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의 가장 큰 후회는 보통 고민만 하다가 실행하지 않은 일에서 온다고 하지 않나. 그 날의 용기가 없었다면, 우리의 두 번째 만남도, 3년 간의 연애도, 그리고 1년 간의 결혼생활도 없었을 거다. 그러니 우리, 오늘도 사랑 앞에서 용기를 내보자.
(참조: 뉴욕에서 진행된 '인생의 가장 큰 후회' 적기 프로젝트, 관련 기사 - Living with No Regrets Means Taking Action, 후회 없는 인생? 지금 행동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