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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너머 Oct 31. 2024

중소기업 1일 차

여기 사람 있어요.

 6년 전 겨울, 지금 회사에 장비설계직 주임으로 입사했다. 입사 첫날의 기억이 유튜브마냥 생생하다.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인천에서 안산으로 이사를 갔다. 회사에서 대중교통 20분 거리에 월세 방을 얻었다. 회사는 반월공단에 있었는데 거주지 근처와 대중교통과 반월공단에는 내가 그 때 까지 보았던 지역 중 외국인의 밀도가 가장 높게 느껴졌다. 서른이 넘도록 안산이라는 도시는 처음이었고 인천과는 다른 낯선 도시풍경탓에 조금 위축되었다.


 버스정류장에서 회사까지는 5분여를 도보로 이동해야했다. 누가 산업단지 아니랄까봐 멀리보이는 많은 공장 굴뚝에서 하얀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회사 옆건물에는 본드류를 제조하는 화학계 회사가 있었는데 그 덕분에 알싸한 본드냄새와 함께 회사 앞에 도착했다. 지난주 오후 면접보러 왔을 때랑은 무언가 다른느낌이어서 회사 간판을 다시 한 번 확인해봤다. '(주)0000' 틀림이 없었다. 오래되어 다소 허름해보이는 2층건물 옆에 조립식 건물이 엉성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기념으로 사진을 한방 찍고 연구동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 중간에 게시판이 있었는데 한쪽 귀퉁이가 물을먹어 누렇게 변색된 산업안전관련 포스터였다. '설계실' 이라고 쓰여져 있는 문을 열자 미화아주머니께서 계셨고 인사를 드리며 오늘 처음 입사한 건에 대해 잠시 스몰토크를 나누었다.

 "어려운 일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시겠어~"

라며 격려해주셨고 나도 그 말에

 "아닙니다. 어려운 일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하고 화답했다.

 먼저 내 자리를 살펴봤지만 내 자리가 없었다. '엥? 빈자리가 없네?' 어리둥절하여 몇 분간 서 있는 동안 정장에 넥타이 차림을 한 직원이 출근했다. 냅다 넘어지듯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아.. 예예 안녕하십니까..?"

 돌아오는 대답이 미적지근하다고 느끼는 찰나 그 분도 두리번 거리더니 내 옆에서 어리둥절하는게 아닌가. '뭐지'

알고 보니 그날 같이 입사한 입사동기 K과장님이었다. K과장님과 대강 통성명을 할 때쯤 9시가 다가오자 남은 시간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속도로 직원들이 출근했고 급기야 9시 정각에는 빛의 속도에 도달했다.


 모두가 출근함과 동시에 여기 저기 전화하고 업무하느라 바빴고, 자리없이 낙오된 두 사람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문쪽에서 가장 가까이 앉아있는 조금 덩치가 있는 팀원에게 먼저 말을 건 것은 K과장이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오늘 입사한 K과장입니다. 여기 주임님이랑 제 자리가 어디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 팀원은 "글쎄요..." 라고 말하며 자리를 휘휘 둘러보았다.

"뭐야, 자리를 안만들어놨네.. 일단 이따가 팀장님 오시면 말씀드릴테니까 여기 앉아들 계시면 됩니다."

하고 말을 마무리하며 한쪽 구석에 원형탁자가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팀원들은 한 마디 말도 없이 각자 할 일에 몰두했다. 흡연자만이 가끔식 자리에서 일어나 시간당 니코틴 할당량을 채우러 나갔다가 연기와함께 자리에 앉았다. 시간이 꽤흘렀지만 팀장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팀장님은 외근을 가신건가?' '아무도 말이 없는 것을 보니 일이 정말 많은가보다' '점심은 맛있을까?' '자취방에 가스불 켜놓고 나온거 같은데' '15년 전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잘 살고 계실까? '20년 전 변기통에 빠뜨린 다마고치는 어디로 갔을까?' '100년 전에 가솔린자동차보다 전기자동차가 먼저 출시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까?'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생각이 점점 예상치 못한대로 흘러가자 내가 졸고있음을 알게되었다. 말도없이 2시간 정도를 따뜻한 히터 앞 의자에 앉아있다가 그만 졸아버렸다. '입사 첫 날부터 졸다니..' 다행히 구석자리라 아무도 못본 것 같았고 옆을 힐끔 보니 K과장도 곧 전기자동차를 보러 갈 것 같았다.


 그대로 점심시간이 되었다. 식당은 건물 바깥으로 나가서 지하 던전같이 생긴 곳으로 들어가야했다. 회사 현관에서 경영지원팀 직원이 K과장과 나를 불러세워 세콤에 지문등록을 도와주었다. 점심은 별로였다. K과장과 나는 반나절만에 서로 의지하고 있었고 식사를 마치고는 본드냄새를 피해 산책을 했다. 어디서왔냐 뭐하다왔냐 결혼은했냐 뭐 그런 민감한 개인정보를 주고받으며 공단 BLOCK 한 바퀴를 돌았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팀장님이 출근을하셨다. 팀장님과는 대충 통성명만 하고 아까 처음에 자리를 물어봤던 덩치큰 팀원과 함께 즐겁고 신나는 부서소개 투어를 시작했다. 대표이사실부터 회사내 부서 여기저기로 1층 2층으로 동쪽으로 서쪽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각 부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길래? 처음엔 그런 생각을 했다. 대부분 직원들이 인사하는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각자 할 일에  몰두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악수따위는 사치였다. 날좀 반갑게 맞이해주세요. 나 진짜 열심히 할거에요.

 '그래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어디 한번 두고보자' 하고 약간은 삐뚤어진 마음으로 아까 걸어왔던 2층 복도를 되돌아 가는데 복도가 곧 무너져내릴 것 같이 기울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또, 화장실은 어떻고? 화장실이 정수리랑 천정이 닿도록 컴팩트하게 설계되어있었다. 대한민국 평균 남성의 키인 내가 고개를 옆으로 젖혀서 소변을 보아야했다. 고개를 젖히던지 아니면 윈드밀을 하던지 아무튼 새롭게 보아야했다.


 다 쓰러져 가는 건물과 인사에 인색한 직원들과 맛없는 지하던전과 본드냄새는 나에게 첫날부터 퇴사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심어주었다.


살려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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