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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의 앞과 뒤로 입체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학습과 성장은 정답이 아닌 최적의 게임이고, 인지와 통찰의 싸움입니다.

수많은 교육현장에서, 강사에게 모든 걸 맡기고 책임을 전가하고 손를 놓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우리는 좋은 강의를 제공했는데, 너희는 왜 그러니’ 라고 볼멘소리를 하죠. 강의를, 학습을 설계하는 것과 동치로 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대부분의 현실에서는, 이와같이 사전에 시뮬레이션하지 않고, 강의를 블록형태로 끼우기만 하고, 관리를 빙자한 방치를 합니다. 그리고는 잘되면 우리의 공, 잘되지 않으면 강사의 잘못으로 표현합니다. 강의가 잘 스며들 수 있도록, 잘 소화될 수 있도록 하는 전방위적 플레이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학습과 성장에 대한 자가적인 기준이 없고, 이를 바탕으로 한 운영적 시뮬레이션이 또 없는데다가, 조율과 믹싱을 해낼 수 있는 경험적 자산도 없습니다. 강의는 있지만 학습은 없고, 전달은 있지만 성장은 없으며, 열심은 있지만 효과는 없는 기이하고 요상한 교육현장이 됩니다. 기대했던 이상과는 점점 멀어지죠. 이런 문제가 반복된다면, 강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강의를 포함한 전반적인 프로세스와 효과를 작동시키기 위한 메커니즘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학습과 성장의 요소 중 하나로 강의가 있는 것이고, 그걸 잘 마주하고 소화할 수 있도록 중개하고 조율하는 역할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강의를 포함한 전반적인 학습에 대한, 그리고 성장의 메타적인 측면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선제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강의를 한 축으로 놓고 그걸 어떻게 지탱하고 지지하고, 때로는 틀어야 할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강의자에게는 현장의 상황을, 학습자에게는 강사의 전문성을 교차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계획된 성장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어떤 지표와 현상이 나타날 때, 그 앞뒤와 전반적인 퍼널을 살펴보고 가장 치명적인 요소부터 건드리는 것처럼, 학습의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포츠에서 골을 넣기 위헤 빌드업을 촘촘히 쌓는 것처럼, 교육현장에서도 건강하고 자연스럽고 반복가능한 성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앞과 뒤를 살펴보고, 입체적으로 접근해서 치명타를 해결하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런 접근을 설계적 어프로치, 반응적 운영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때로는 타겟이 아닌, 타겟의 루트를 뚫거나 변방에서 내부로 들어와야만 합니다. 전방위적 센싱을 기반으로 요혈을 뚫어내야만 합니다. 적시에 뚫어내지 않으면 망하고 맙니다. 학습과 성장은 정답이 아닌 최적의 게임이고, 인지와 통찰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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