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쥐 Jul 05. 2023

대기업에서 역제안이 왔다

떨어진 줄 알았는데, 다시 찾아온 기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역제안


몇 개월 전, 어떤 프리랜서 사이트에 올라온 글감이 하나 있었다. 내가 잘 쓸 수 있을 것 같던 글감이 올라왔길래 지원(간단 작업이력을 첨부한 지원 레터를 보냄)을 했었다.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연락이 없길래, '내가 되지 않았구나..' 생각하며 그냥 잊었다. 


사실 한 두 번 거절당한 상황이면 큰 실망을 했을 수도 있지만, 거절이라면 수차례 경험한 뒤여서 그냥 그러려니 생각했다. 더욱이 클라이언트가 대기업이라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탐낼만한 프로젝트였다. (대기업 클라이언트=포폴에 넣기 좋음, 돈을 많이 줌


올해 상반기가 거의 끝나갈 그 무렵, 나는 이 거절과 별개로 조직에 들어가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프리워커로서의 삶이 3년째- 좋은 점들이 많았지만 모든 일에는 명암이 존재하듯, 어려운 일도 많았다. 혼자 프로젝트 오퍼를 하거나 영업을 하는 일이 지칠 때도 많았고, 혼자 할 수 있는 프로젝트 크기의 한계도 느껴졌다. 고정적인 급여와 큰 조직에서 오는 인맥과 경험을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갔다. 프리워커와 회사원사이에서 줄다리기하듯 고민을 하다, 점점 회사원 생활을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에 무게가 실렸다. 


그래, 회사 생활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

80% 정도 마음을 굳히고 평생 처음 써보는 낯선 이력서와 씨름하던 어느 날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보이면 안 될 글이 대부분이라 거의 모자이크 ㅠㅠ 



내용 사진을 올렸지만 너무 다 모자이크 투성이라 아래 다시 축약하여 올려보자면 대강 이런 내용이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기업***담당자 ***입니다. 

작가님께 연락드리는 건 처음인 듯한데요. 작가님 프로필을 보고, 저희가 제작하고자 하는 콘텐츠와 잘 맞으실 것 같아 연락드립니다. 제작 요청드리고자 하는 콘텐츠와 관련하여, 설명 먼저 간단히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본 제작사항"
<플랫폼>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플랫폼>을 알리기 위해 이러저러한 콘텐츠를 기획했습니다. 
이 콘텐츠를 통해 **서비스를 인지하고 **서비스를 이용 유도 하고 싶습니다. 

"제작 관련사항"
-타깃에 대한 내용
-어떤 형식의 콘텐츠 인지 
-원고료 이야기

"토픽 아웃라인"
~로 시작해서 ~ 이야기가 나오고~ 이 이야기가 꼭 나와야 하고
~이렇게 끝났으면 좋겠어요. 


처음 이 메일을 봤을 때 바로 든 생각은 

"어? 나 이거 지원한 적 없는데???"였다. 정말로 나는 이 콘텐츠에 지원한 적이 없었다. 


기억을 몇 초간 더듬어 생각하다 '떨어졌던 예전 지원레터'가 생각났다. 그때 떨어졌던 그 대기업! 

그곳의 다른 콘텐츠였다. 말로만 듣던 역제안, 이렇게 내게도 온 것이다. 하필이면 회사에 가기로 마음을 굳히고, 이력서를 쓰던 그날.  


여기까지 파악이 된 후 두 번째 든 생각, 아니 결정은 당장 GO! 였다. 그날은 하루 꼬박 이력서가 담긴 모니터 속 깜빡이는 커서를 노려보며 신중히 단어 몇 개를 배열한 일이 다였다. A라는 단어를 B단어 앞에 뒀다가 한 시간 뒤, 뒤에 다시 두고 또 노려보는 일을 반복(결국 A단어는 처음의 자리로 다시 가게 된다. 아- 이 지리멸렬한 이력서 쓰기) 한마디로 너무너무 지루했다는 말이다. 예전부터 해보고 싶던 큰 곳의 콘텐츠였고, 떨어졌을 때도 예상은 했지만 못내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콘텐츠 담당자가 되지 못했음에도 내 이력서를 버리시지 않고, 다시 그 많은 이력서 풀 속에서 나를 건져내 준 담당자분에게 너무나 고마운 생각이 밀려왔다. 


거기다 마감 기한 일주일. 까짓 거 이력서 뿌리기 일주일 지연되는 게 뭐 어떠한가? (못 먹어도 GO!!)

어떤 장소가 꼭 들어가야 하는 콘텐츠라 집에서 편도 두 시간 거리의 여행길이 옵션인 글감이었지만 그래도 재밌는 주제라 싫지 않았다. 


첫 번째는 당시 너무 지루했다는 것, 두 번째는 재밌는 일이었다는 것(물론 원고료도 재밌었다), 마지막으로 이력서를 쓸 때도 대기업 외주 일이 하나 들어가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마무리 펀치로 결정. 

이 결정이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콘텐츠 납품하기 대작전


6일 동안 다른 프로젝트도 병행하며 편도 네 시간 거리를 가서 취재를 하고, 첫 대기업 원고를 쓴다는 일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현장에 간 날에도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같은 곳을 다양하게 찍고, 이런저런 버전의 사진을 준비했다. 글 원고도 중요하지만 괜찮은 사진이 중요한 플랫폼이었기 때문에 갖은 애를 썼다. (전문 사진작가가 아니니, 애썼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강조되는 오브젝트를 강조하기 위해 포토샵까지 열어서 톤을 수정하기도 했다. 덕분에 그래도 만족스러운 사진을 첨부할 수 있었다. 


사진이 이러하니 글을 쓸 때는 정말 머리가 아팠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니 글이 더 나오지 않았다. 초고조차 속도가 안 나와서 점점 마음이 초조해졌다. 결국 원고 메일을 보내는 날 하루 꼬박 밤을 새워서 초고를 쓰고, 검수를 반복했다. 초고를 고치고 또 고치고... 그날은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졸리지도 않았던 것 같다. 

원고를 납품하면 담당자가 윤문과 검수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고칠 게 많이 없도록 하고 싶었다. 맞춤법은 물론이고 문장 경제성, 복문 고치기, 조사 줄이기 등 내 안의 체크리스트를 통과한 원고. '이만하면 여한이 없다, 최선을 다했다'하는 마음이 든 이른 아침, 메일을 전송했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원고 납품하던 날


좋은 원고..라고 하셨다.. 흑_흑




보내진 원고는 다행히 크게 고치는 일 없이 잘 통과 됐다. 사진도 꽤 많은 양이 첨부되어 사진비용까지 넉넉하게 더해진 원고비를 받게 됐다. (아직 입금 전) 회사에 가게 될지 아닐지 사실 앞으로의 일도 아직 모르겠지만 

좋은 클라이언트와 거래 하나를 하게 되어 일단 너무 기쁘다. 


프리워커로서의 기록+1 



오늘의 인사이트,


되든 안되든 문을 두드리기. 지금 당장 열리지 않아도 언젠가 갑자기 열리기도 하더라. 

매거진의 이전글 브랜딩 모임을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