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말해도 괜찮음을 배워가는 봄
큰일이다. 일이고 뭐고
그냥 다 내려놓고 싶어
힘이 든다는 걸 인정하기 싫지만,
힘들다.
프리랜서 햇수 4년 차. 그동안 금전적으로, 사람으로, 환경으로 수 없이 힘든 일이 많았다. 힘든 걸 다 징징거리자면 이 지면 스크롤이 어디까지 짧아질지 예상이 안될 정도. 하지만 여러 우여곡절과 어려움이 있었어도.. 나는 이 일을 정말 좋아했(었)다.
좋은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돈 이상의 좋은 가치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로컬 사업과 기획일도 너무 재밌고, 동네 어르신과 청년들을 만나는 일도 다 좋았다. 글을 쓰고 고치는 일도 힘들었지만 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컸다. 일을 사랑하는 마음과 실력이 비례하지 않아서, 짝사랑같이 느껴질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귀찮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이 힘들다고 느껴지고, 마음이 지칠 때마다 '이럴 때가 아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더 열심히 달려야 한다. 앞서 간 사람들을 따라잡으려면 멀었다' 생각했다. 실제로 20대 후반까지 계속 공부를 했던지라 일을 시작했을 때, 내 주변 친구들은 이미 'n연차 아무개 대리'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매해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있었고, 개중엔 내놓고 말하고 싶은 것들도 있었지만 연말이 되면 늘 맘에 차지 않았다. 성적표 보듯 한 해를 돌아보다, 한숨을 푹 쉬고 다음 해를 기약하기 바빴다. 갈 길이 너무 멀어 보였기 때문에 나의 성취나 성실을 치하해 줄 틈이 없었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그리고 작년 연말, 기어코 병이 들었다. 길을 걷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조금만 슬픈 것들을 보면 버스 안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필요 이상의) 눈물이 솟구쳤다. 감정이 내 마음처럼 통제되지 않았다. 처음엔 집에 일이 있었으니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만, 이런 현상은 그치지 않고 내 안에 오래 머물렀다. 살면서 단순하고 긍정적인 편이라 생각해 왔는데, 이렇게 긴 부정과 슬픔은 처음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우울의 터널을 계속 걷는 느낌. 타인이 돈을 주고 맡긴 글쓰기나 업무는 피해 주기 싫은 맘에 어떻게든 해냈지만, 스스로 해내기로 한 홈페이지 콘텐츠는 시작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현재도 못 하고 있다.) 브런치나 인스타그램 글쓰기도 어려워졌다. 얼굴 위로는 물이 마를 새 없었지만, 마음은 갈수록 메말랐다. 마음의 열정과 창작의 샘 같은 것이 얼굴 위로 다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이런 내 모습이 낯설고 싫어서 탈피하고자 일본 출장을 기획해 갔는데, 그 길 위에서도 나는 매일 울었다.
도쿄 길거리에 수많은 일본인, 한국인, 외국인들이 우는 나를 쳐다보며 지나쳤다.
은행잎이 그림처럼 흩날리던
시부야-요요기를 지나치며 엉엉 울다
결국 그 길 위에서 상담 예약을 했다.
그래서, 지금은 상담 5회를 거친 상태. 나는 나의 어려움을 좀 더 객관적으로 확인했고, 앞서 밝힌 나의 먹고사는 방식이 꽤나 가학적인 형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지로에 들어가면 소득 상관없이, 조건 없이 청년심리상담 10회를 90%지원 받을 수 있는 지원사업이 있습니다. 힘들다면 지금 바로 '복지로'에 들어가 보세요!>
1) 남에게 굉장히 후한 편인데, 스스로 굉장히 박하다.
2) 상황 안에서 비교적 여러 정보를 읽는 편(=눈치 많이 봄)
->MMPI검사와 TCI검사에 나왔다. TCI는 기질검사로 성격과 별개로 타고난 기질을 알 수 있다.
3) 인지적 인간.
-> 말할 때,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생각한다'는
단어를 가장 많이 쓴다고 했다.
4) 일단 참는 유형
-> 눈치봄+스스로 박함+참음 = 어휴
등등
상담 1회 차부터 3회 차까진 그냥 내내 울었던 것 같다. 말하다가도 눈물이 치밀어서 선생님이 계속 물을 떠다 주셨다. 말하면서 우는 나 자신이 치욕스러워 계속 눈물을 꾹꾹 누르며 말을 했는데, 선생님이 그런 나를 보다 처음으로 함께 눈시울을 붉히셨다.
"그냥 막 울어봐요. 왜 이렇게 못 울어요?"
"선생님 저 한두 번밖에 안 봤는데, 이렇게 우는 게 죄송스러워요. 민망하고요. 통제 안 되는 게 낯설어요."
"좀 통제 안되면 어때서요. 통제 안되면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막 울기도 하고, 화도 내고 그렇게 살아요. 욕이라도 해봐요."
"그러게요."
"다인씨는 쉽게 사는 방식을 배우지 않으면,
계속 이럴 것 같아요. 근데 그러면 너무 힘들잖아요.
앞으로 살 날이 훨씬 길 텐데.."
욕이라도 해보라는 선생님말을 들으며 어느 정도 욕을 해야 곤란하지 않을지를 고민하는 내가 어이없었다. 선생님 말씀처럼 이렇게 남은 생을 살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하나 방법을 찾아갔다.
1) 집의 일과 나를 분리하기 위해 분가하기
-> 계속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지금의 나는 나 하나만 온전히 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취를 준비하고 있다. 가계약이 끝난 상태. 제발 차질 없이 다음 달엔 이사를 마쳤으면.
2) 괜찮다고 말해도 괜찮다고 진짜 믿어 의심치 않기
-> 스스로 괜찮다는 말을 하는 게 두려웠다. 자기 연민이지 않을까 끊임없이 의심하곤 했다. 힘들고 지친다는 생각이 들어 머릿속이 후끈해지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하는 생각을 찬물 붓듯 바로 끼얹었다. 자기 연민하는 순간 도태될 거라는 극단적인 믿음이 저변에 있었던 것 같다. 살다 보면 힘든 게 사실 더 자연스러운 마음이고, 설사 자기 연민이라 해도 뭐 어떤가. 가끔은 자기 연민도 나쁘지 않다.
3) 죄책감 없는 휴식 시간 갖기
-> 여행을 해도, 쉬어도 되는 하루가 와도 무언가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가끔은 딱 반나절이라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나를 위한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래도 괜찮잖아.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꼭! 우리 오늘부터, 아니 지금부터 생각해 봅시다.
나 자신을 '나의 베스트프렌드'라고 생각해 보기.
베스트프렌드가 힘들다는 카톡을 보내온다면 나는 어떤 답장을 할까?
지금 떠오른 그 대답을 나에게도 해주면 된다.
진심을 담은 그 메시지가 가끔은 모두에게 필요하다
너무 오랜만에 하는 기록. 마음이 힘들다는 고백을 적어 내리는 게 '프리랜서의 일의 기록'인 이 페이지에 불필요하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도 한 번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냈다.
일을 하다 보면 힘든 게 너무 당연한 것이니,
그런 맘이 드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죄책감 가지지 말자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힘들어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