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의 재테크에 관하여
국회의원의 비트코인 투자 기사를 처음 봤을 땐 이유 모를 상실감이 들었지만 파장이 이렇게나 길게 이어지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김남국 의원은 탈당 후 오랜 잠적 끝에 나타나 허위 의혹을 보도한 언론들을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같은 당 내에선 윤리위의 중징계를 피해 갈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불법성 여부를 떠나 상임위논란까지 이어지며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여당의 비판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요는 이렇다.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이 되었지만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사위에 몸담는 건 옳지 않다는 지적에 황급히 상임위를 교육위로 옮겼더랬다. 그러자 여당에선 "학생들이 뭘 보고 배우겠냐"면서 "갈수록 태산"이라는 비판이 연달아 나온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가는 곳마다 폐허다.
애초에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라는 시각도 있었다. 한 사람의 재테크 자유가 이렇게까지 지난한 과정을 겪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회의원이라는 이유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입법, 이해충돌 가능성이 높아서? 평소 이미지와 달라서? 아마 단편적인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투자와 재테크에 열을 올리는 요즘 사람들은 유튜브의 '파이어족'을 꿈꾸며 관련한 인플루언서를 추종한 지 오래다. 집값 폭등과 취업난으로 결혼은 커녕 연애도 포기한다는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이길 수 없는 판"이라며 화조차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른들은 예전보다 살기 좋아진 세상에 왜들 그렇게 힘들게 사는지 모르겠다며 "우리 땐 단칸방에서 신혼살림 시작했어" 라며 위로 아닌 위로에 나섰지만 세대 간의 벽은 더욱 공고해질 뿐이다. 결국 외로워진 그들은 토요일 저녁 8시가 되기 전 로또를 산다.
나는 장류진의 소설 '달까지 가자'를 생각했다.
처음엔 제목만 봐선 낭만적인 꿈에 관한 이야기를 SF로 풀어냈나 싶었다.
아주 아닌 건 아니지만.
보기 좋게 예상을 빗나간 스토리는,
문학평론가의 말로 간추리자면 <흙수저 직장 여성 3인의 비트코인 열차 탑승기>다.
“이런 식의 박음질이 더는 지겨웠다. 나는 그냥 부스터 같은 걸 달아서 한 번에 치솟고 싶었다. 점프하고 싶었다. 뛰어오르고 싶었다. 그야말로 고공 행진이라는 걸 해보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한 번도 없던 일이었고, 상상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기대조차 염원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지금, 그것이 내 눈앞에 번쩍이며 펼쳐져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달까지 가자"이다. 실제로 이더리움 투자자들 사이에선 'to the moon'이라는 은어, 가상화폐를 묵혀두면 결국 달까지 오른다는 염원을 외친다고 한다. 고공행진. 그들의 염원이 너무나도 절실한 나머지 비트코인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어렵게 들어온 회사에도 계급이 존재해서 친해질 수밖에 없는 3명의 돈독한 우정도 볼만하다.
지난 몇 년간 깨닫게 된 것 중에 하나는 같은 회사에 다녀도, 비슷한 월급을 받아도, 결코 같은 세계를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이에는 투명한 선과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었다. 일터에서 일 이야기만 할 수는 없었다.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만나 걸어오면서, 매일 점심 먹을 때, 또 저녁 먹을 때, 거길 오가는 길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로비에서, 회식과 워크숍 술자리에서, 그리고 거길 향하는 버스 안에서...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싫어도 나눌 수밖에 없었다. 나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하나하나 캐치해서 추측하고 재배열하고 그 아래에 내 자리를 만들었다.
"우리 같은 얘들은 어쩔 수가 없어"
우리, 같은, 얘들. 난 은상 언니가 '우리 같은 얘들'이라는 세 어절을 말할 때, 이상하게 마음이 쓰리면서도 좋았다.
셋은 제주로 여행을 가기로 하고 공항에서 마주한다. 비트코인으로 어느정도 돈을 모은 은상의 오리지널 트렁크와 지송의 싸구려 트렁크. 지송의 싸구려 트렁크가 망가지면서 안에 있는 소지품들이 모조리 튀어나오고, 은상이 그 짐들을 자신의 트렁크로 수습하게 되는데. 아주 짧은 에피소드와 풍경을 그리지만 다해는 곧 은상의 트렁크에 대한 예찬. 이윽고 돈에 대한 욕망이 흘러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언니의 모든 동작에서 스르륵, 소리가 나는 것만 같았다. 트렁크를 자기 쪽으로 당길 때에도 스르륵. 바닥에 눕힐 때에도 스르륵. 숫자 키를 위아래로 돌려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손동작에서도, 번호를 맞춘 뒤 양옆의 버클을 풀고 활짝 열어젖힐 때에도, 스르륵, 스르르륵. 모든 게 유려하고 우아했다. 스르륵, 그건 시원스럽다는 소리, 거침이 없다는 소리, 자연스럽다는 소리였다. 힘을 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된다는 뜻, 의지만 있다면 물 흐르듯 그쪽으로 간다는 뜻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주인공으로 그려지는 다해의 고민은 제일 먼저 코인에 올라탄 은상과 뒤늦게 욕구를 인정한 지송 사이에서 현재의 우리와 비슷한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할까, 말까" "많이 넣을걸" "괜히 넣었어"를 반복하는 치열한 수싸움.
내심 그런 걱정도 했다. 이런 이야기, 그러니까..... 분수에 맞지 않는 걸 욕망하고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대개 욕심부리다가 큰코다치고 괘씸죄로 천벌을 받으면서 끝나버리고 마니까. 이욕을 추종한죄, 주제넘게 재물을 탐한 죄, 분별없이 반짝거리고 빛나는 것들 쫓은 죄.
다행이 셋은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지만 "비트코인으로 투자 대박 나세요"가 이 책의 주제가 아님은 너무도 당연해서 웃프다. 국회의원의 비트코인 투자가 이다지도 지난한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단상. 소설 속 주인공의 치열함에 잠깐이라도 몰입 해 본다면 모르긴 몰라도 어림짐작은 된다.
유쾌하게 그렸으니 망정이지, 웃고 말자 하고 지니칠 뉴스는 아닌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