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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Jun 25. 2023

'체헐리즘'과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의 상관관계

불편함의 가치에 대하여

  

 나도 그랬다. 침대에 누워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한 쇼츠 영상을 2-3시간이고 봤었다. 

겨우 잠에 들었고 다음날 약속 장소에 가기 전에는 '네이버 지도'를 통해 최적 경로를 검색했다. 

그러나 그날의 기억은 그게 다였다. 바람은 어땠는지, 나뭇잎은 어땠는지, 온도는 어땠는지. 

내 기분과 그때의 나는 어땠는지 도통 생각해 봐도 아무런 기억이 없다.


머니투데이 스타벅스가서 "제일 안 팔리는 걸로 주세요" [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기자는 체헐리즘으로 이미 많이 알려져서 '유퀴즈 온 더 블록'에도 나온 요즘 보기 드문 '체험하는' 기자다. 이번에는 어떤 체험을 했나 살펴봤더니 유명하고 인기 많은 것과 남의 선택지, 알고리즘 추천을 벗어나 정말이지 그냥 아무거나 해봤다고 한다. 

그래서 제목이 스타벅스 가서 "제일 안 팔리는 걸로 주세요"다. 기사에도 적혀있지만 직원은 갸우뚱하며 흑당 시럽과 시나몬이 들어간 음료를 추천했단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가장자리에 관심을 불어넣겠다는 편집자주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애초에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분명 아니었다.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을 만들었고 마케팅은 그것에 맞춰 빠르게 대응해 왔다. 그렇다. 처음엔 그저 생활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함'이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구를 충족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 주객이 전도되었는지 사람들은 효율적인 방법을 경쟁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맛집은 리뷰를 타고 랭킹에 기록됐고 여행사는 호텔과 맛집을 연결한 UX, UI를 적용하고 자체 앱을 개발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간혹 '멍 때리기 대회'를 열기도 했지만 역부족이다. 


진작에 직장에서는 이러한 효율성의 강력함을 알아버린 탓에, 카톡의 1이 사라지지 않자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고 "왜 챗 GPT를 활용하여 스마트하게 일처리를 하지 못하냐"며 닦달했다. 기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외국 여행을 갔을 때 구글맵이 인도해 주는 맛집 탐방에 나도 한창 열을 올린 적이 있다. 그러나 코 박고 구글맵만 들여다보다 고개를 들어보니 해가 지고 있더랬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남들이 다 찾는 랜드마크는 "왜?"라는 물음표를 달기 시작했고 맘에 드는 풍경을 가진 도시에 숙박업소 한 곳을 정해 놓고 어슬렁 거리며 배회하는 여행을 즐긴다. 


불편함이란 무엇인가. 상담학 사전엔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고 거북하면서 조화롭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휠체어를 탄다. 이동하는 데 불편함이 따른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야 함은 당연하다.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고 거북하면서 조화롭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동권 보장 시위는 꽤 오래전부터 곪아왔던 이슈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리즘으로 얻는 편리함은 과연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고 거북하며 조화롭지 않은 상태'를 개선시키는 것일까.


나는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라는 에세이를 생각했다.


책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제목을 보자마자 웃음부터 '빵' 터졌다. 아마도 "시대상을 어쩜 이리도 잘 읽었을까"라는 생각이 바닥에 깔린 그들식 유머에 대한 대답이었을 테다. 과로와 번아웃, 그리고 회복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연 설명이 붙었다. 문학동네에서 작가 두 명이 주고받은 편지를 엮었단다. 펜팔이라니. 벌써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황선우 작가와 김혼비 작가는 1년간 10통씩의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씨"라는 호칭을 쓰는 점에서 굉장히 시적이라고 느꼈다. 작가들은 물론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호칭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책 속에 녹아있다. 


두 작가는 창작에 대한 고통도 나눈다. 한 사람은 새하얀 컴퓨터 화면에 막막함을 느끼고 리코더를 불고 다른 한 사람은 목탁을 두드린다. 참 재밌는 설정인데 이 또한 효율성과는 거리가 먼 짓이다. 

나는 두 사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작품소개 
우리는 각자 너무 열심히 살았다. 지금은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정신으로 몸과 마음을 돌봐야 할 때, 서로의 안녕을 물어야 할 때, 웃어야 할 때. 웃음에 일가견이 있는 두 작가가 농담처럼 펜팔을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는 이유는 퇴근하는 게 너무 좋아서 출근을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는 길지 않아 3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잠이 안 와 침대에 누워 쓸어 넘겼던 쇼츠 영상 3시간에 비할 수 없었다.

 우연히 얻게 된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불편함에 대한 생각의 차이. 

그 간극 어딘가에 남형도 기자가 촬영한 풀 한 포기처럼 존재한다.


양화대교 콘크리트 틈으로 쏙 자라 있던 들풀. 평온했던 여름 풍경. 누군가의 시선이 다 닿는 것만이 좋은 건 아닐 거라고./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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