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미신에 관하여
대통령 관저 후보지 선정에 답사를 했다던 이른바 '천공 의혹'의 경찰 수사 잠정 결론이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풍수전문가 백재권 씨를 천공으로 착각할 가능성이 있는지가 수사의 쟁점으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수사는 빠르면 이달 안에 마무리된다고 한다.
이 무슨 코미디 같은 일인가. 천공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제일 먼저 눈이 띄는 직함이 '대한민국 유튜버'이다. 스스로를 진공, 천공이라고 지칭한다고 한다. 아무튼 대한민국 대통령이 '천공'이라는 미신에 의존해서 국정을 운영한다는 국민적 의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결국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그런데 닮은 사람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풍수지리 전문가에게 조언을 받는 건 괜찮은 것인지 다른 쟁점으로 또 한 번 몸살을 앓고 있다.
사람들은 이성적인 사고로 사안을 결정하기 어려울 때 미신에 의존하기도 한다. 물론 국정운영은 공적인 영역이므로 다른 판단을 받아야 한다. 해당 사건은 별개로 차치하더라도 미신을 믿는 행위 자체는 사적인 영역이다. 많은 사람들은 재미로 타로카드나 사주팔자를 보고 더러는 진지하게 무당을 찾아가기도 한다.
나는 미신에 대하여 생각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미신(迷信, superstition)이란 과학적 관점에서 헛된 것으로 여겨지는 믿음이나 신앙이다. 마음이 무엇에 끌려서 잘못 믿는 것 또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는 것에 대한 맹신(盲信)을 의미한다. 현재 이런 것은 미신 혹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실제로 믿거나 종교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미신을 배척하기만 하는 태도가 나의 가치관 형성에 도움을 주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퀘스천 마크가 붙는다.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이성적인 사고만이 유효한 것인지 의문이다. 미래의 일들은 애초에 이성적인 사고로 예견할 수 없다. 최대한 맞추어 전략을 마련할 수는 있겠지만 정서적인 불안감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일 때가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정서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받고자 점술가를 찾기도 한다. 애초에 결함이 있는 답에 대하여 논리적 근거를 대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신에 의존해 결정을 내리는 행위는 옳다고 볼 수 있는가. 그것에도 경계를 늦출 수는 없다. 미신은 믿음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미신의 또 다른 이름으로 징크스, 징조, 해몽, 대운 등 수많은 단어들을 만들어 냈고 이는 자신들에게 닥친 일을 이해해 보려는 본능적인 인간의 습성에서 비롯되었다. 이동진 평론가는 인류의 패턴과 질서를 발견하려는 습성이 미신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나는 오래전 보았던 영화 <곡성>을 떠올렸다.
포스터 중앙에 이런 카피가 있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라고.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그 꺼림칙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영화에 대한 리뷰를 찾아봐도 각각 다른 해석이다. 나는 기억을 살려 영화의 줄거리를 가늠해 보려고 해도 누가 범인이고 누가 조력자인지 알 수 없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 사건. 경찰은 치정사건으로 잠정 결론을 낸다. 원인으로 다량의 환각 버섯 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조사됐지만 주인공 종구의 시선으로 볼 때에는 이상한 징조들이 계속해서 펼쳐지고 그 단서들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플롯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종구의 결정은 내가 보기에도 일견 타당했다.
정신이 나간듯한 여자가 등장하기도 하며 고라니를 뜯어먹고 있는 외지인을 목격하기도 한다. 때 맞춰 딸 효진에게 이상 증상이 나타나며 끝내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가기도 한다. 종구는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지 끝없는 시험대에 놓이게 되고 끝내는 패배 한다.
오래된 영화이지만 아직도 명장면과 명대사가 여러 콘텐츠에 인용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을 관통하는 중심 메시지가 존재했기 때문인데, 그것은 믿음의 문제와 닿아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우리가 미신이 필요할 때의 나약해지는 습성을 이해하면서도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도 함께 한다. 믿음은 주로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단어이지만 미신과는 한 끗 차이다.
"뭣이 중헌데"라는 말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