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
말하고 싶은 말 1,
나는 햄릿의 처음을 떠올린다.
자주 그랬다.
연극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를 말하고 싶은데, 우선 다른 얘기부터 시작함.
작고하신 연극평론가 한상철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검색해 보니 어떤 시공간, 즉 작은 우주의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숫자가 나타났다. 1935 - 2009, 한 사람의 생과 멸은 이렇게 숫자로 기록되어 남는다.
한상철 선생님을 만나는 첫 수업시간, 소포클래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이야기하셨다. 희곡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들여 메모한 낡은 노트를 펼치시며 ’이건 내가 이 강의를 위해 준비한 것인데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기억에 남는 희곡은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 셰익스피어의 <햄릿>, <리어 왕>.
한 학기를 잘 들었다고 생각하는데 기억에 남아있는 작품이 이 정도라니, 아쉽습니다, 선생님! 나는 당시에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던 것일까?
햄릿 (신정옥 번역, 전예원 세계문학선 301, 1989년 발행)을 다시 펼쳤는데 ’1997년 8월 23일 석이가‘라는 메모가 보인다. <극단 작은신화, 고전 넘나들기 그 첫 번째 프로젝트>, <햄릿>(반무섭 연출)을 여해문화공간에서 막을 올렸었고, 서른세 살이던 나는 햄릿을 맡았었다.
제1장 엘시노어 궁전
”엘시노어 성의 망대에는 어둠이 죽음처럼 고였다. 찬바람이 불 때마다 온몸의 살갗이 선뜩거렸다. 차디찬 달빛이 서리만큼이나 하얗게 쏟아지는 으스스한 이 희곡의 맨 처음...“ (작품해설 신정옥)
희곡 <햄릿>의 첫 대사는 이러하다.
바나도 : 누구냐?
프랜시스코 : 넌 누구냐?
<누구냐 넌?>이란 말은 이후에 영화 <올드보이>에서 빛나는 대사이기도 했지만, 그러나,
오늘의 질문, <넌 어떻게 죽을 거야?>
”오늘 뭘 할 거야? “라고 물으니까, ”넌 어떻게 죽을 거야?“라고 알아듣는 순간이 찾아왔다. 어떻게 살 거야! 어떻게 죽을 거야! 순식간에 혼돈이 온다. 인물들의 대화는 수직으로 흐른다. 넌 누구냐? 를 설명하고 싶었는데 갑작스럽다.
연극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에서 초반 대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영어가 등장한다.
작가는 가히 천재적으로 암시를 심었다.
요시오 : What do you to die? 우리말로 말해봐.
토 루 : ... 죽기 위해 무엇을 할 거예요?
요시오는 이어서 말한다.
아니야. 사실 이게 “What do you do today?”거든. 영국인은 “데이”를 “다이”라고 말해. 그래서 ’today‘는 ’to die‘란 말이야. 나도 처음에는 놀랐어. 갑자기 “너 어떻게 죽을 거야?”라고 물으니까. 근데 사실은 “너는 오늘 뭐 할 거야?”였다는 거지. 웃기지 않냐?
요시오는 현재를 떠나 멀리까지 가기 위해서 ’영어공부‘를 시작했을 거다. 타쿠지가 영어 좀 배우라고 했기 때문에. 그리고 영어회화 공부하다가 피식 웃었을 거다.
살고 죽는 이야기가 이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살아가는 사람들이 죽음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곧 죽어가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살기 위해 무엇을 하는 일은, 우리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와 맞닿아 있다는 의미인가?
이 연극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상처를 끌어안고 있다. 만남이 문득 어색하다. 어딘가 모가 나 있고 좀처럼 무뎌지지 않는다. 그래서 재밌다.
엘시노어 성 망루에서 바나도가 햄릿에게 묻던 말, ‘너는 누구냐?’를 지나왔더니 21세기의 연극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에서 다시 묻고 있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또 무엇을 할 것이며, ‘너는 어떻게 죽을 것이냐?’라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잠시 미루어 두기로 하고, 이제 다시 아침이 밝았으니까 또 하루를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살아내야만 한다.
저기 저 벽 뒤에서 어머니가 홀로 부스스 일어나신다. 노래를 시작하신다. 오늘의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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