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장래 Dec 17. 2023

이것은 어른의 똥 이야기

“그러니까, 이 선생님이랑 박 선생님이랑 불륜인데 교실에서 섹스하다가 걸렸다고?”


이 문장을 보고 도파민이 솟아 글을 클릭했다면 당신은 전형적인 어른이다. 바람, 출생의 비밀, 고부갈등 같은 단어들은 기묘한 힘이 있다. 우리가 뻔하다고 욕하면서도 막장 드라마를 챙겨보는 이유다.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도(명심하자. ‘저’학년이다. 그보다 나이가 많은 아이에게 썼다가는 한심하다는 시선만 받을 확률이 높다) 불륜처럼 무조건적으로 먹히는 키워드가 하나 있다. 똥이다.




똥.

대뜸 한 글자만 뱉어도 아이들은 킬킬댄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 순수함을 잃은 어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아무튼 교사 입장에서는 좋다. 집중력이 짧은 학생들에게 수업 예시로 써먹기에 이만한 소재가 없다.


(자,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에서 중심 문장을 찾아볼까? 오늘 화장실에 갔다가 변기에서 똥을 보았습니다.... 아, 선생님!!!!)


                 





그렇게나 동심을 흥분시키던 똥은 일정 시기가 들어서면서부터 숨겨야 할 무언가로 변모했다. 모든 사람이 똥을 싸고 방귀를 뀌겠지만 교양 있는 시민의 입장에서 그런 단어는 입에조차 올리지 않아야 마땅했다.


그런 마당에 집이 아닌 곳에서 큰 일을 보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수련회를 가서 2박 3일간 어떻게든 참다가 집에 도착하면 긴장이 풀리며 똥을 쏟아내는 경험이 나에게만 있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 안의 똥을 외면하며 살아가던 낭랑 18세의 어느 날이었다. 주말에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엉덩이 안쪽 느낌이 심상치가 않았다. 18년간 대변 배출을 해온 베테랑으로서 이미 항문까지 똥이 내려왔으며 괄약근에 조금만 힘을 주면 시원하게 똥이 나올 상태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집에 가 똥을 싸고 오거나 변의를 참으며 공부해야 할 터였다. 둘 다 싫었다. 집은 너무도 멀었고 그렇다고 똥을 참으면서 공부하자니 효율이 낮을 것 같았다. 결국 인생 처음으로 공공장소에서의 배출을 결심하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 후 화장실에 들어가 배출을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옆 칸에 누가 들어오는 게 아닌가. 망했음을 직감했다. 이미 냄새도 났을 터라 아닌 척하고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똥을 끊기도 애매했다. 우는 심정으로 우선 배출에 집중했다.



어라.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옆 칸에서도 풍덩,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아니 너도? 우리는 번갈아가며 똥덩이를 변기에 빠뜨렸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누군가와 똥으로 하모니를 만들어내기는 처음이었다. 그건 굉장히... 따스한 경험이었다.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어디서나 똥을 잘 싸는 사람이 되었다.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똥밍아웃을 한 김에 조금 더 내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FK CUP에 출전하던 날이었다. FK CUP은 풋살협회 주관으로 진행하는 국내 풋살대회 중 가장 공식적인 경기다. 한마디로 나 같은 애송이가 나갈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둘도 없을 기회라 좋기는 한데... 민폐가 되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과 부담으로 대장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장실에는 시합을 앞둔 선수들이 잔뜩 줄 서 있었다. 소변만큼 빠르게 대변 처리를 할 수 있는 축복받은 직장을 가진 터라 시간적 민폐는 아니겠지만 문제는 후각적 민폐였다. 지금처럼 속앓이 후 결과물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경우 냄새가 고약했다. 그렇다고 안 쌀 수는 없으니 이번에도 딱히 선택지는 없었다. 미안합니다 여러분. 속으로 사과하며 화장실 문을 열었다.



오우. 변기에서는 악취가 가득했다. 이미 누군가 볼일을 한바탕 본 게 분명했다. 알싸한 냄새가 저마다 묘하게 다른 것이 한두 명의 흔적이 아니었다. 그렇다. 다들 배를 붙잡고 이곳에 와 긴장을 한바탕 풀고 간 것이다. 나만 떨리는 게 아니구나. 냄새로 이를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희한하게도 타인의 똥은 보통 심적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구나, 나만 촌스럽게 긴장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위안이 됐다. 아이들이 똥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도 이래서일까? 얼굴도 성격도 다르지만 우린 모두 똥을 싸지! 하며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혹시 개들이 서로의 똥꼬 냄새를 맡는 것도 그런 이유에설까? 똥은 생각보다 위대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보장된 행복은 없으므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