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장래 Nov 27. 2023

보장된 행복은 없으므로

인생은 게임처럼 굴러가지 않으니까요

오전 7시 42분, 목표는 단 하나다. 148번 버스에서 기사님 뒷자리 차지하기. 웬만하면 그 자리여야 한다. 그만큼 깔끔하게 하루의 시작을 보장하는 곳이 없었다. 옆 사람 없이 편히 기댄 채 창문을 여닫을 수 있으며 내부 TV에 유혹당하지 않는 자리. 출입문과도 거리가 멀어 잠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자리다.




쪽잠의 위대함을 신봉하는 사람으로서 20분을 잘 수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였다. 그날도 버스가 멈추는 속도를 계산해 헐레벌떡 줄을 서 1등으로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기사님 뒷자리’를 얻어냈으니 이제 됐다. 오늘 하루의 시작도 성공적이리라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내 발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트에서 올라오는 토사물 냄새가 코끝을 톡톡 건드렸다. 어라, 기사님 뒷자리가 짱인데.












세상에 절대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면서도 모른다. 문장 자체는 쉽게 받아들이지만 삶에 적용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로또만 당첨되면 인생은 행복으로 넘칠 것만 같다. 연인과 헤어진 지 일주일 차, 이대로 가슴이 찢겨 과다출혈할 것만 같다는 생각은 진심이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당시 나는 더더욱 극단적이며 맹목적이었다.




불안감에 빠져 허우적대던 스물세 살이었다. 이 짓을 일 년 더 했다가는 정신병에 걸리리라 직감했다. 초등 임용고시의 결과는 둘 중 하나였다. 떨어지거나 붙거나. 멋진 직장인이 되거나 인생의 낙오자로 전락하거나. 내게는 두 문장이 같은 의미로 느껴졌다.




반드시 붙어야만 한다,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누군가는 밤을 하도 새운 바람에 응급실에 실려 갔다. 와중에 교육과정을 통으로 외워버리는 괴물 같은 기억력의 소유자는 모두를 좌절케 했다. 노력도 재능도 애매했던 나로서는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눈물이 나는데 울고 있기에는 바빠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중얼중얼 교육과정을 외던 그 시절은 언제 회상해도 안쓰럽다.




매일 잠을 4시간씩 자다 보니 신체적으로도 부서져 갈 때쯤 정 교수님의 수업이 있었다. 강의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철학적인 내용이었다. 교수님께서는 소크라테스에 빙의하사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희는 지금 행복하느냐.”

“아니요, 불행합니다.”

“무엇이 너희를 불행하게 만들었느냐.”

“임용고시 때문입니다.”

“정말 시험 때문일까. 임용고시만 합격하면 인생이 행복해질 것 같으냐.”



네. 맥락 파악도 못하고 냉큼 대답해 버렸다. 인생에 관해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으셨을 교수님은 날카로운 눈길로 내 얼굴을 살피셨다. 얘가 반항을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꾸지람을 해야 교수로서의 교양과 위엄을 겸비하며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일까. 이내 진심 어린 내 표정을 보고는 피식 웃고 넘어가셨다. 임용고시만 합격하면 불행이라는 게 있을 리가 없어. 인생에 힘들 일이 뭐가 있어. 진짜로 그렇게 믿었었다.



나는 그해 임용고시에 합격했고, 가끔은 기쁘고 때로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




       





인생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다소 둔하게 배워가는 중이다. 너무 멀리 발령이 난 탓에 출퇴근이 힘들었으나 덕분에 학부모 민원이 적은 학군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족저근막염 때문에 축구를 줄이게 됐지만 재활 겸 시작한 수영의 매력에 빠질 수 있었다. 남자친구와 이별 한지 세 달쯤 지나니 정신이 차려지며 그 친구와 헤어진 게 얼마나 다행인지 깨달았다.




인생은 게임 퀘스트처럼 보상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목표를 달성한다고 예상한 결과가 따라오는 경우가 도리어 적었다. 이것만 해내면 되는데, 그러면 진짜 행복하게만 살아갈 텐데. 착각에 빠질 때마다 그날의 철학 수업을 떠올린다. 서늘한 가을바람에 낙엽 부스러기가 매캐하게 일던 교대 운동장, 그것만 해내면 행복할 것 같으냐는 교수님의 물음이 울려오고, 합격만 하면 불행은 없을 거라 단언하던 당시의 무지 어린 믿음을 되돌아본다.




11월, 수능이 있는 달이다. 이제는 어떤 과목이 있으며 상대평가인지 어쩐 지도 잘 모르지만 절박한 수험생의 마음만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너희도 이것만 해내면 인생의 승패가 갈린다고 여기고 있을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이 말이 단순히 중2병 감성문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나보단 빨랐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고백하자면, 매일 아동학대중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