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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Sep 18. 2023

고백하자면, 매일 아동학대중입니다

숨쉬듯 하는 편입니다

초등교사임을 밝히고 글을 쓰고 있다. 올해 교권과 관련해 수많은 사건이 터진 뒤로 브런치에 글을 올릴 수 없었다. 사연은 이랬다.


- 써오던 교직 에세이(아이들과의 소소 유쾌한 일화)를 그대로 쓴다면: 시국에 맞지 않음

- 다른 내용 에세이를 쓴다면: 회피임

- 안 쓴다면: 게으르고 끈기 없는 작가라는 인상을 줌



그나마 마지막이 나았다. 본인이 겪었던 민원을 써보라는 조언도 있긴 했다. 그러나 내 입장만 일방적으로 늘어놓는 게 치사한 것 같기도 하고 타인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을 무려 기록물로 남기기가 조심스러웠다. 차라리 작심삼일 인간 취급을 받기로 하고(요새 MZ가 이렇죠 뭐) 소설을 열심히 썼다. 덕분에 장편소설 1부 초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유익한 동시에 괴로운 시간이었다.




학교에서 생기는 이런저런 흥미로운 에피소드들, 삶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에세이를 끄적이고픈 욕구가 올라왔다. 그때마다 열심히 눌러줬더니 많은 것들이 쌓이고 쌓였다. 타고나기를 분노도 말도 에너지도 많게 태어났다. 여기에 집회에서 자유발언을 하시는 선생님들의 절절한 이야기까지 듣다 보니 대책 없는 용기가 자꾸만 싹텄다. 결국 글쟁이는 한글 프로그램을 열고야 만다. 침묵은 금이라는데 내가 그래서 가난한 것이다. 




현재 사태에 대한 평범한 초등교사의 입장을 밝혀보려고 한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이다.



     






근무하던 초등학교 교실에서 자살한 신규 선생님의 소식(일명 서이초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가 생생하다. 단톡방에 올라온 뉴스 기사를 클릭하던 시점에 무릎을 덮고 있던 이불은 여름용 냉감 소재였으며, 방바닥에 15도쯤 기울어 널브러진 물건은 약봉투 이면지였다는 것까지 고스란히 떠오를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괴롭고 도망치고 싶은 이런 감정, 다들 겪고 있지 않나.



다음날 서이초에 방문했을 때 ‘외계인이 뇌파를 조종한다’는 엉뚱한 발상이 떠올랐다. 아니라면 들어오는 사람마다 눈물을 그렇게나 줄줄 흘리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왜 이렇게도 흐느끼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왜 죽었는지 너무도 알겠어서 슬픈 거구나. 학부모의 전화가 주는 부담감, 제대로 된 지도를 할 수 없는 환경이 주는 무기력감이 마음에 어떤 멍을 남기는지 경험했기에 생판 모르는 동료의 죽음이 이리도 서글프구나.



그래도 나는 입을 열기에 애매한 처지였다. 지인들만 해도 나보다 힘든 환경에 놓인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전화로 다짜고짜 욕을 퍼붓는 학부모에게(개인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발령 첫날부터 30분간 사과를 해야 했던 대학시절 룸메이트, 1교시 시작 전 교실 복도에 나타나 깽판을 부리는 부부를 상대해야 했던 부장님(그 반 아이들은 한동안 불안해했다)... 다들 여러 방면으로 고생 중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상당히 평범했다. 무례할 때도 있으나 인간은 원래 모난 구석이 있다는 말로 퉁칠 수 있을 수준의 아이들, 학부모와 지내고 있었다. 아동학대 신고도 아직 당한 적이 없다. 그런 판단에 말을 아끼는 나에게 눈치 없는 몇몇 친구들은 ‘그래, 너는 잘할 것 같았어.’ 같은 식의 말을 던졌다. 본인들은 칭찬이라고 여겼겠지만 내게는 스트레스에 불을 붙이는 행동이었다. 모든 것이 운일뿐인데, 사실 나는 숨 쉬듯 아동학대를 하고 있는데 무슨 속 편한 소리인가.



말 안 듣는 아이에게 ‘그럴 거면 집에 가라’고 하기도 했고 ‘00아, 책 펴라’ 같은 공개 훈계를 자주 한다. 학부모가 정서적 학대로 고소할 수 있는 사안이다. 방학식날이면 아이들과 포옹, 하이파이브, 악수 중 하나를 고르게 해서 신체접촉이 있는 작별인사를 하는데 이 경우 성추행으로 신고가 가능하다. 교육감이 괜히 나 같은 교사를 예비살인자라고 지칭한 게 아니다. ‘에이, 설마’라는 반응은 제발 집어치우길. 당신마저 미워지려고 하니까.


(“교사는 예비 살인자”라는 윤건영 충북교육감)

https://m.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307262140015  



             

하필 집회는 매주 오후 2~4시에 있었다. 9차까지의 집회를 거치며 피부는 점점 검어졌고 선캡, 방석 등등 챙기는 물건이 늘어났다. 발언을 들을 때마다 울분이 차오르는 현상만큼은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외계인이 뇌파를 조종하는 게 확실하다).



마이크를 잡은 발언자들은 선생님, 보고 계시죠? 하며 서이초, 호원초, 신목초, 관평초, 용산초, 봉화초... 그 밖의 돌아가신 100명의 선생님들을 부르짖곤 했다. 그런 건 믿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토요일마다 국회 아스팔트로 향한다. 이유는 하나다. 살아있는 옆 사람은 지켜야 하니까. 학부모들의 전화 폭격을 받고 소리 없이 눈물을 쏟던 후배와 우리 아이는 미필적 고의이니 (친구 발에 가위를 던졌다는 사실은 인정하나)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며 학교에 찾아오는 학부모를 상대해야 했던 동기는 무사하길 바라니까.





우리가 살았으면 좋겠다. 목숨만 붙어있는 식으로 말고. 교사답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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