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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Jul 27. 2023

When they go low, wo go high

감히 이런 글 써도 괜찮을까요

방학을 시작했다. 계획대로라면 조조영화를 보고 도서관에 들러 읽고 싶었던 책을 빌려왔어야 했다. 그러나 점심때가 지나도록 멍하니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스마트폰 중독이 이렇게 무섭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분노와 무기력감이 뒤범벅되어서, 동료가 죽었는데 방학을 누려도 되나 죄책감이 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교대에서 신입생이던 해, 정부는 임용고시 TO로 900명을 불렀다. 임용고시를 볼 우리 학교 학생이 300여 명인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선언이었다. 이듬해 800명을 뽑는다고 했을 때 불안한 목소리들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정부가 바보도 아니고 이유가 있으리라 믿었다. 순진하고도 멍청한 생각이었다. 다음 해 정부는 100명을 선발하겠고 발표했다. 6월에 이뤄진 일방적 통보였다(시험은 11월이다).     



교대는 국립대학이다. 교대생은 오로지 교육을 위해 나라에서 양성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교대를 나오면 초등교사가 되었다. 그때까지 그래왔고 우리 모두 그런 줄로 알고 교사의 꿈을 품으며 이 학교에 왔다. 그러나 돌변한 정부는 너희 셋 중 한 명만 교사가 될 수 있다고, 물론 재수생과 타교대생을 합치면 더 힘들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공지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아이들이 아홉 토막으로 줄었나? 이럴 거면 왜 두 해 동안 그렇게나 많은 수의 교사를 뽑은 건데? 어떤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교육청 앞에 가서 시위도 하고 학생 대표들이 정식으로 입장 표명도 했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했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찾아온 학생 대표들을 잠깐 기다리라며 앉혀놓고 비상구 계단으로 몰래 도망갔다던 조 교육감의 행동이 정부가 우리를 어떤 자세로 대하는지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달리 할 줄 아는 것도 없어서 결국 징징대면서 임용고시를 준비할 주제에 성가시게 하는 존재들에 불과했다. 정부는 언제든 말을 바꿔서 나를 버릴 수 있다. 그 사건을 통해 체득한 깨달음이었다.


(9월에 나오는 TO 발표에서 300명으로 결정되긴 했다. 그러나 딱히 시위 때문이라기보다 아홉 토막 충격요법을 쓴 다음 선심 쓰듯 원래 계획했던 300명을 불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서이초등학교 신규교사 자살 사건이 터졌다. 직접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내 후배였다. 소식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평소에 느끼던 분노, 무망감, 불안들이 후배를 죽였구나.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운이 좋게 악성민원 보호자를 만나지 않아 상대적으로 버틸 만했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어딘가의 평행세계에서는 자살한 사람이 나였으리라. 그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이었다.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한 다음날 서이초를 방문했다. 사람 키보다 살짝 큰 국화 화환들이 양쪽으로 끝없이 늘어서 있어 국화 밭을 걷는 느낌이었다. 다들 행렬을 맞춰 침묵하며 걸었다. 다들 침묵하며 눈시울만 붉히고 있어서 더 가슴이 아팠다. 3시까지는 그랬다.



3시쯤 되었을 때 황토색 양복바지를 입은 키 큰 남자가 경찰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하더니 정문을 봉쇄했다. 학교 안으로 조문객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학교에서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꽃만 놓고 가겠다는 말에는 답을 안 했다. 그렇게 어리둥절한 1시간이 지났다.



“제발 들여보내주세요.”

“추모만 하고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더위에 지치고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진절머리가 난 조문 인파들 사이에서 들여보내달라는 절규가 터져 나왔다. 그게 끝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울면서 들여보내 달라고 하면 경찰들이 감동받아서 문이라도 열어준답니까. 이게 뭐야. 너무 답답했다. 힘으로 밀고 들어오면 금방 뚫릴 텐데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이미 학교 안에 들어와 있던 나로서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선생님들이 흐느끼며 문 열어달라고 외치는 걸 보고만 있어야 했다. 또다시 분노와 절망감에 휩싸이는 순간이었다.





갑갑한 마음에 친구에게 호소했다. 야, 이거 그냥 밀고 들어오면 되는데 서서 뭐 하는 거냐. 우리 쪽수가 얼만데. 친구가 답했다. 그렇게 들어오고 나면 그다음은? 뉴스에 교사들이 경찰이랑 실랑이했다는 내용이 실리면 뭐가 좋은데? 굉장히 짜증 났지만 친구 말이 맞았다. 실제로 열어달라고 ‘소리를 쳤다’는 이유로 교사를 비난하는 인터넷 댓글이 꽤 있었다. 그날 혈기 넘치게 경찰을 밀기라도 했으면 나 때문에 선생님 전체가 욕을 먹었을 것이다. 아찔하다.



나라는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내가 대통령이었으면 북한의 도발에 당장 넘어가고 일본이나 중국이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하면 무역 중지를 감행해서 나라를 말아먹었을 것이다(아무도 안 시켜줘서 다행이다). 윤봉길은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스님 의병은 타락한 성직자가 아니라지만 정의를 위해 폭력도 불사하는 시대는 지났다.



여론, 노동자는 무식한데 착해야 하고 피해자는 초췌한 몰골을 해야만 편을 들어주는, 내리막길에 서서는 중립기어를 박았다며 뿌듯해하는 그놈의 여론을 위해서는 어디까지 온순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한 순간이라도 그들의 이분법적 사고에 들어맞지 않는 일을 하거나 흥미로운 사건이 새로 터지면 관심을 끌 그들인데 의미가 있기나 할 걸까. 하지만 여론이 없다면 정부는 귀를 기울인다는 시늉조차 하지 않을 테다. 너무 어렵다. 나이를 더 먹어도 계속 무지하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모든 교사들의 소원대로 아동학대‘법’이 개정되려면 법이 바뀌는 일이기에 12월은 되어야 결판이 날 것이다. 이마저도 관심이 식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정부가 외면해 버리면 약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이미 배운 바 있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분하지만 성질머리대로 행동하는 게 답은 아니라는 교훈을 이번에 배웠다. 우선 토요 집회에 얌전하게 참석해야겠다. 속 터지더라도 그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면. 후, 간디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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