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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May 20. 2023

숨쉬기조차 못하는 어른이지만

매주 화목 수영을 다닌 지도 10개월째다. 물속에서 누릴 수 있는 특유의 자유로움이 좋다. 파랑으로 가득한 풀장에 들어가 있으면 눈이 밝아지는 기분이다. 여기까지가 일인칭 시점이다. 밖에서 보면 호흡 곤란으로 헐떡거리고 있는 젊은 애가 하나 있을 뿐이다.




갓난아기도 숨은 혼자 잘만 쉰다. 숨쉬기 운동이라는 말이 괜히 농담으로 쓰이는 게 아니다. 수영장에 가면 숨 하나 제대로 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다. 대체 숨을 얼마만큼 들이마셔야 하며, 내뱉는 건 신체 어느 부위를 어떤 세기로 해야 한단 말인가. 하나도 모르겠다. 0세부터 다시 살아 봐야 할 판국이다.




처음에는 언젠가 자연스럽게 깨달음을 얻으리라 낙관했다. 그러나 물속에서 정신을 잃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생명의 위기를 몇 번 느낀 뒤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거만할 정도로 자신감이 가득 배어 있는 목소리의 남자 유튜버는 숨을 입으로 마신 뒤 코로 내뱉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죽을 것 같은 느낌을 견디며 코로 공기를 뿜어내는 연습을 시작했다.

같은 시간대의 수영 좀 하는 회원님들에게도 비결을 물었다. 답은 제각각이었다. 반장님은 깊은 호흡을 네다섯 번씩 하며 몸을 이완시킨 뒤 마지막 숨을 크게 들이마시라고 했다. 1-1번 아저씨는 숨을 조금씩 뱉는 게 비결이라고 말했다. 강사님은 중간에 물을 조금 먹으란다. 그 말대로라면 심호흡 네다섯 번을 한 뒤 입으로 크게 숨을 들이켜고 코로 숨을 야금야금 뱉어내면서 물도 좀 마셔야 한다. 음,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가는 느낌이다.











나는 기본적인 일들에 기본적으로 미숙했다. 서 있는 자세부터가 엉성했다. 거북목에 O자 다리 증상이 있으니 이는 객관적으로 사실이다. 엄마에게 어렸을 적부터 꾸준하게 잔소리를 들었으나 서로 의만 상하고 별 효과는 없었다. 앉아 있는 자세도 바르진 않다. 어깨가 굽으며 목이 앞으로 나오는데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시절에 목이 아파서 크게 고생한 바 있다. 지금은 학생들에게 훈계를 늘어놓을 때 생생한 예시가 되는 것에 위안을 삼고 있다. 선생님 목 나온 거 보이지, 이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자세 똑바로 해.




이쯤 되면 내가 걷고 뛰기도 더럽게 못한다는 사실을 짐작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다리가 아프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그럴 때마다 머쓱하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무게중심이 위로 쏠렸고 자세가 엉거주춤하다. 바른 보행 자세란 발뒤꿈치로 지면을 딛으면서 엄지발가락 끝으로 지면을 미는 것이다. 좔좔 읊을 수 있지만 30년 가까이 살아 놓고도 실천이 안 된다. 돌아버릴 노릇이다.




숨쉬기, 앉기, 서기, 걷기...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자연스럽게 할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개가 꼬리 흔들기를 따로 연습한다거나 고양이가 골골대는 자세가 이상해서 교정받는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우울한 날에는 이런 사실들을 자각하면 안 된다. 그런 날이면 환생 과정에서 오류가 있어서 감히 적성에도 안 맞는 인간으로 태어나버린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흡족하지는 않지만 나는 대부분의 날들을 씩씩하게 보낸다. 반푼이 인간이지만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사진에 찍힌 내가 목을 잔뜩 내밀고 있어 속이야 상하지만 어쨌든 큰 문제는 없다. 매주 화목 레인에 선다. 접영 25m 왕복 후 굽은 어깨를 한 채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제법 멍청해 보인다. 뭐 어떤가. 살아서 수영을 하고 있는 게 중요하지. 오늘도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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