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급 공무원이다. 찢어지게 가난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부자가 될 수도 없는 직업이다. 교사라는 길을 선택하면서 돈과 관련한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예를 들자면 내 집 마련 같은 일들. 그래도 차곡차곡 돈을 모으면 40대쯤에는 거실이 있는 전셋집 정도는 얻을 수 있을 테다.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니 그저 퇴근 후 풋살 한 판에 신나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인생이 그러하듯 내 삶 역시 생뚱맞은 방향으로 튀었다. 베트남에 살게 되었고, 꽤나 부유한 편이 되었다. 널찍한 투룸에서 혼자 산다. 아파트에는 헬스장과 수영장이 있으며 창문 너머로 강이 내려다 보인다. 밤이면 반짝반짝 빛나는 도시의 야경은 낭만 가득하다.
세상 일은 정말 알 수가 없구나! 그래서 인생이 재밌는 법이지. 집을 계약하고도 한동안 믿기지 않았다. 내 집(월세긴 하다)을 둘러보며 황홀함에 몸부림쳤다. 수영을 하며 도시를 내려다보고, 가정부를 부르고... 부자 놀이는 해도 해도 질리지가 않았다. 초밥을 먹으러 가지 전까지는 그랬다.
초밥을 먹으러 가지 말았어야 한다. 대부분의 음식이 맛난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형편없는 음식이 초밥이었다. 이름이 ‘초’ 밥인데 왜 회에다 쌀밥을 얹어놓는단 말인가. 이럴 거면 집에서 회 썰어다 밥이랑 비벼 먹지. 먹질 못하니 그리움은 집착으로 변했다. 수소문 끝에 초밥이 맛있다는 한 식당을 찾아 저녁을 먹으러 갔다.
지도에서 알려준 지름길을 따라가니 ‘s’ 아파트를 지나가게 됐다. 사실 지름길이 아니더라도 ‘s’ 아파트를 지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할 수밖에 없듯 ‘s’ 아파트의 영역을 지나지 않고는 아무 곳도 갈 수가 없었다.
희게 빛나는 ‘s’ 아파트는 5성급 호텔 저리 가라였다. 풋살장이 몇 개 들어설 수도 있을 크기의 공원 겸 산책로가 대로처럼 펼쳐져 있었다. 아파트 로비마다 증권사 사무실에서나 봤던 거대한 조형물들이 위용을 뽐냈다. 아파트 안의 마사지샵이며 네일숍, 포케 집이 보였다.
처음에는 부자들의 삶에 순수하게 경탄했다. 하지만 걸을수록 자꾸만 마음이 묘해졌다. 나는 이런 곳에서 못 사나? 계산해 보니 매 끼니를 계란에 밥만 비벼 먹으며 살면 가능했다. 아, 여기서도 나는 부자는 못 되는구나.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초밥집 맛도 그저 그랬다.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예상치 못해서 인생이 즐겁다는 말 취소. 침울하게 돌아와 아파트를 보니 벽에 페인트도 군데군데 벗겨지고 구려 보였다. 부처님은 참 똑똑한 사람이다. 집은 그대로 이건만 속세의 욕심을 버리지 못해 스스로 불행을 가져왔구나! 마구니가 낀 게지.
일부러 ‘s’ 아파트를 지나갈 일을 만들지 않고 있다(초밥이 별로여서 다행이다). 아직은 비교의 눈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도 집에만 있다 보니 다시 내 집이 정겹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얼른 성숙함을 갖춰 무언가를 오롯이 사랑하는 어른이 되기를. 기왕이면 베트남에서 이 수련을 끝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