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4 인천독립영화제 GV <보호자> 많이 보러오셔요.
좋은 날이다. 사무실 배정을 받았고, 마음에 든다. 좋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위로가 필요한 날이 있다. 하루가 너무 버거울 떄, 내가 다 소진되어 버린 것 같을때, 오늘 하루 만큼은 더이상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무리일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고 돌아와서 아직 남은 일들을 바라볼때.
고기가 필요하다. 보쌈을 시켜 놓고 글을 쓴다. 인천 독립영화제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 08/14일 드디어 2020년의 첫 영화제 소식을 알린다. <보호자>라는 단편으로 관객들을 만나게 되었다. ‘딸의 유방암 투병 사실을 딸의 여자친구에게서 듣게 된 명숙(50세)’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 입으로 다 컸다고 말하는 29세의 딸과, 내 손으로 너를 다 키웠노라고 말하는 50세의 어머니를 담았다.
‘엄마’로 불린 세월이 명숙으로 불린 세월보다 많은 그녀의 삶에서 딸 희우가 빠져나가려는 그 순간. 그 순간을 다루는 작품이다. 재작년, 처음으로 부모님의 슬하를 떠나 독립을 시작한 내가 했던 수많은 실수들을 다 담아보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20분이 짧았다. 다들 처음으로 내 공간, 내 집, 내 것이 생겼을때, 더는 그 내 것이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 아닐때 어떠셨는지 궁금하다.
낯선 기분이고, 왠지 자랑하고 싶은 기분. 뿌듯하면서도 소중하고, 왠지 이 삶의 주인이 이제야 내 것인것 같았다. 그래서 더 쉽게 말했던 것 같다. 어차피 내 삶인데, 조금은 내 멋대로 해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지금에와서는 후회보다는 두번 생각한다. 물론 어린 나는 다시 돌아가도 그런 결정을 하겠고, 그 선택들이 최선이었을테고, 결국 그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테지만 두번 생각해보면 더 좋을 일들은 분명했다.
분명 <k대_oo닮음_93년생.avi>의 발칙함을 상상하시며 보실 관객들은 조금 아쉬우실 수 있겠다. 영화가 잔잔하다. 둘의 갈등은 희우의 ‘가슴 제거(유방암 수술)’을 두고 벌어질 뿐, 여타의 퀴어 영화처럼 부모와 자식간의 엄청난 다툼이랄 것도 없고, 큰 소리 한번 지르지 않는다. (한 번 나오나..?)
사실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이미 서른이 다 된 딸에게 너의 삶이 이러하다 저러하다 가르치는 부모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전 세대와는 달리 부모가 더는 자식의 사랑에 옳다 그르다 말하기 어려운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식의 이야기가 되었을때 말하기 어려운 것들. 내게는 삶의 전부와 같았던 ‘어머니’로서의 삶이 내 자식에게는 이어지지 않을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딸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여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렸다.
서른이 다가올수록, 나를 낳았을 때의 내 어머니의 나이에 가까워지다 못해 해가 넘어갈수록, 엄마와 산 세월은 늘어가는데, 당최 속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 어머니도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도 괜찮으시다면 소풍가는 기분으로 가볍게 보러오시라. 눈물 쏙 빼드린다는 말은 못하겠고, 그저 엄마가 보고 싶은 하루도 있으면 좋지 않은가.
P.S, 이번 영화에서 가장 자신이 없었던 부분은 '내가 감히 내 어머니의 마음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였다. 그 어설픈 짐작을 이렇게나 풍성히 채워주신 전영 배우님께 감사드린다. 덕분에 영화를 마치고 나서 내 어머니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의 코멘트를 어머니가 해주셨다. 네가 나를 이렇게 보는구나? 하셔서 뜨끔했고 오래 대화를 나눴다) 감독에게 배우복이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쁘고도 드문 일인데, 매번 이렇게나 훌륭한 배우들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여기다가 이렇게 적어놓은것은 비밀이다. 지브이때 사실 브런치 한다고 말씀드릴거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