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끝내주게 좋다! 마감이다! (+ 새 영화 소식)
2월이다.
벌써 2020년이 무려 두 달이 지나갔다.
투정 같은 지난 게시글을 뒤로 한달 반에 가까운 시간을 초고를 고치면서 보냈다.
어떤 날은 서글퍼서 울었고, 어떤 날은 나보다 나를 더 알아주는 독자를 만나 신이 나 떠들었다.
오늘은 생떼같은 시나리오를 보내놓고
빈 몸으로 글을 쓴다.
(사실 와인 마셔서 빈 몸은 아니다. 알콜로 차 있다)
허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테다. 이번 시나리오의 로그라인을 말해보자면, 대략 이런 것이다.
프랑스에서 우연히 수영(27, 감독지망생)을 만나 사랑에 빠진 진(26, 흑인 배우)은 학생 비자를 받아 한예종 연극원에 입학한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둘의 이야기를 졸업영화로 찍자 다짐하던 두 사람은 진이 넷플릭스 제작의 <해귀>, 12개월 180회차 10부작 단독 주연으로 발탁되면서 위기를 맞는다. 비자를 이유로 프로포즈를 받고야 만 수영. 과연 두 사람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릴 수 있을까?
수영이(감독)는 마이너스 통장으로만 1500, 고작 나이 스물여섯에 꿈 하나 좇은 대가로 참 큰 빚을 졌고, 그 후로는 사랑보다는 입봉을 찾는 인물이다. 동기에 비해 재능 없고, 나이마저 어린 자신이 졸업 작품을 찍고 난 뒤에 까맣게 잊혀질까봐 두 번째 작품을 찍지 못하는 겁많은 인물이고, 늘 자신을 응원하는 연인(진, 배우)에게서 힘을 얻으면서도, 연인이 “사랑해”가 아니라 다른 말로 마음을 전하면 그 마음을 온전히 듣지 못하는 어리석은 친구다.
“로미오와 줄리엣, 오델로와 데스데모나 시대의 사랑은 전쟁도 죽음도 불사했다 치자. 이 시대의 사랑은 보증금은 커녕 내 작은 슬럼프 하나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데 무슨 의미가 있어?”하던 수영이가 이 시대의 사랑은 무엇일까를 알아가는 스토리의 (성장 드라마 겸) 코미디 영환데, 참 주인공 나 같고 마음이 간다. 언제나 내 인생의 화두였던 사랑이 과연 이십대 후반을 사는 이 나이의 나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하면,
음... 대답이 쉬이 나오지 않는다.
언제든 탈 듯 뜨거워서 지나고 보니 내가 없었고, 언제는 사랑이 아닌 듯 미덥지근해 떠나고 나니 그 잔상이 오래 남아 참 아팠다. 그러면서도 하나 모르겠는것이 사랑이었는데.
다만 한 가지 내가 배워 온 것은, 이 시대의 사랑은 만남보다는 헤어짐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것. “어떻게 우리가 이 많은 사람들 중 만났을까?”를 신기해할 틈도 없이 헤어져, 서로의 소식을 너무 쉽게 잊을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찾게 되는 이 애정이 사랑이 아닐까 나는 감히 생각한다.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이야기의 화소에서 어떻게 내가 수영이 같은 찌질하고도 사랑스러운 영화감독 지망생을 만나 이 이야기를 써내고야 말았을까 잠깐 생각하다가 문득 웃는다. 둘의 만남부터 헤어짐 그 후까지가 담긴 졸업영화를 찍겠다는 수영이의 염원이 부디 누군가의 눈에 사랑스럽게 비춰지기를. 그리고 세상에 수많은 함께 가고 싶었으나 멀리 가버린 진들과 그 사람을 다시 찾고 싶은 수영이를 응원하며 이 시나리오 역시 꼭 누군가의 눈에 들기를 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지만
언제나 다시 채워지므로,
당신은 늘 편히 밀려와 쉬다 가기를.
PS 그리고 오늘 이태원에서 알아봐주신 서독제 관객님
너무 감사하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사실 좋은 티를 못 냈어요...
“그러니까 이거 감독님 본인이야기네요?
왜 이런 이야기를 썼냐?
이런 질문은 크게 의미가 없어 보이고
감독님 말따나, 돌멩이 하나 못 막아주고.
보증금 하나 마련해주지 못하는 사랑이야기를
지금 이 시대에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러니까요,
저도 그 이유가 궁금해요.
한번 뽑아주시면 제가 잘 이야기 해볼게요.
그 이유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