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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특한 버라이어티 Feb 28. 2021

나를 만나는 사유의 시작

탐욕의 애브라카다브라 그 마법의 주문

새벽에 일어나면 세면과 함께 가벼운 명상을 하고 문을 나선다.

늘 해오던 습관대로 남걀 사원의 앞, 좌판대에서 2루피 (40원) 하는 빵 하나, 그리고 3루피의 짜이 한잔으로 시작하는 다람살라의 아침식사를 마치고 달라이 라마의 사원으로 들어선다.


다람살라로 돌아와서도 굳이 입을 열 일이 없었다.

거창하게 묵언이라 할 것 까지는 없겠으나 청전 스님과 식사를 하는 시간이 아니라면 대화를 나눌 대상도 없었다.

자연히 침묵과 사유를 하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소박하면서도 스스로 몸과 마음을 맑히려 애를 쓰는 생활.

그런 생활이 다람살라에서는 가능했다.

이보다 더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오직 자신들이 인지할 수 있는 수준의 경계에서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 공부가 없으니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없었다.

내 공부가 없으니 그저 내가 아닌 에고에 의해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고 스스로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의 고요를 유지하려는 노력에만 집중했다.

그저 다른 사람이나 나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인해 나의 감정을 흐트러뜨리는 감정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의 평온을 유지한다는 것.

이런 것들이 히말라야 다람살라에서는 가능했다.

그러나 이같이 마음의 평온을 유지한다는 것은 세속의 걱정이나 스트레스가 없는 히말라야에서 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에서도 그대로 이어져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주어지는 외부환경이 시시각각 온갖 자극적인 조건들과 요인들로 가득 찬 곳.

오늘도 사람들의 이성과 감각을 마비시키는 쾌락과 탐욕의 애브라카다브라, 마법의 주문이  하루 종일 반복 재생되어 흘러나오고 있는 세상 속에서는?


감정도, 생각도,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도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데 저잣거리에서는 무명에 쌓여 내 안의 에고에 의해, 집착에 의해,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으로 인해 루틴처럼 반복하며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분별망상을 하게 된다.

그대는 가능한가?

이 세상 속에서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며

자신의 삶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그 모든 경험들을 아무런 분별없이 그저 바라만 본다는 것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분별의 범주인지 국어 대백과 사전과 불교사전을 찾아보았다.

그마저도 분별이었다.

이 글을 쓰는 것도 분별이다.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인지라 살며 살아가며
세상 속에서 하루에도 여러 차례 사람의 신경을 건드리는 일이 생기지만 감정은 내가 아니다. 생각은 내가 아니다 흘려보내며 그런 부정적 감정이 올라올 때 그저 화가 일어나는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며 흘려보냅니다.
아니 생각이,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그저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반응하지 말자하여 반응이 안 되는 것이 아니니 그저 알아차린 후,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려 애를 씁니다.

불현듯 마주치게 되는 불편한 상황 속에서 그저 저항 없이 흘려보내는 것.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하루 24시간.
외부환경이 온갖 자극적인 조건들과 요인들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예고도 없이 불쑥 튀어 들어오는 그런 난감한 상황들을 마주하며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 애를 쓰고는 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이지만 모든 스트레스란 결국은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모든 불만족스러운 조건과 상황 속에서 나 스스로 반응하는 방식의 표현일 뿐이니...


그렇다면 그런 불만족스러운 조건과 상황들은 누가 마주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나는 누구입니까?


감정은 내가 아니기에 생각은 내가 아니기에 그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평온을 유지하려 애를 씁니다.
세상이라는 것이 결국 인식되는 것일 뿐이라면.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오는 것 또한 마주하고 바라보고 흘려보냅니다.

놓아버리려 합니다.

내려놓으려 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화려한 도시 속 추한 정글의 링에서 오늘도 애브라카다브라.

유혹의 주문이 밤낮없이 주야장천 나의, 그대들의 뇌파를 흔들고 있으니.

어떻게 알아차리며 어떻게 그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며 오는 것은 오게 하며 가는 것은 가게 하는 Let it  be,  so be it 할 것인지.

애브라, 애브라카다브라!


그러나 화려한 도시도 분별, 추한 정글도 분별.

Let it  be도 분별,  so be it도 분별, 그리고 애브라카다도 분별.



아!

생각, 감정, 오온이 아닌 확연히 아닌 또 다른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

, 알고는 있는데 왜 그 자리에서 어떤 이는 한 번에 너와 내가 다름이 없음을 깨치고 어떤 이는 그 자리까지만 알고 더 이상의 진전이 없는 것인가요.





진전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 나는 누구인가.



바람이 부니 나뭇가지가 흔들리는구나.

육조 혜능은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대 마음이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이 무슨 소리인지.

그리고 그뜻을 알기위해 수없이 지난한 밤들언제까지 불면하며 지새워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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