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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특한 버라이어티 Mar 09. 2021

행복도 인식

러시아 재즈가수

길을 알고 걷는 것과 모르면서 걷는 것의 차이는 엄청날 것입니다.

길을 모르니 걷지도 더 이상 나아가지도 못했습니다.


먼저 그 길을 가본 사람들은

위빠사나고 염불선이고 좌선이고 절이고 다 필요 없었  말하지만 북인도 스피티 계곡 해발 5.000m 이상의 고산지대 산속 동굴에는 토굴을 지어놓고 오늘도 면벽수행을 하는 수행자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었다는. 인식에 있었다는 해답을 내릴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 길을 떠나본 자만이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롱 수행자는 그나마 매 순간 호흡을 가다듬고 자세를 바로 하며 오체투지를 하는 가운데 나를 바라다보는 방법들을 스스로 터득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체험도 가지각색이겠지만 현상을 쫓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시공간을 놓아버린 그러한 생각을 완전 놓아버린 선정의 자리.


그러나 그것이 전부.

참나, 즉 본래면목은 아니었습니다.


생각, 감정이 아닌 오온이 아닌 확연히 아닌 또 다른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

아.  그것까지는 알겠는데.





한방에 훅 갈뻔했다.


새벽 4시.

아침 수행을 하기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세면을 하러 화장실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전등의 스위치를 켜며 화장실의 문을 열고 맨발로 들어섰다.


칠흑과도 같은 어둠을 뚫고 천정에 붙어있던 전등의 불이 켜지며 슬리퍼를 찾으려 화장실의 바닥을 보는 순간, 오른발 바로 앞 10cm도 안 되는 거리 앞에  전갈 한 마리가  나의 발을 노려보며 꼬리를 바짝 치켜들고 있었다.


녀석도 잠을 자고 있었겠지.

컴컴했던 공간이 갑자기 시끄러워지고 훤해지고 눈앞에 뭐가 불쑥 튀어나오니  녀석도 놀랐겠지.


그런데 너보다는 내가 더 놀랬다.





하루의 일과처럼 늘 그러하듯이 사원 법당을 청소하고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데 법당 밖에서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청소를 하는 시간, 기도를 하는 시간 온전히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의자에 앉아 있던 그녀의 어머니는 법당에서 나오는 나를 보자 먼저 눈인사를 하며 나를 반기고는 옆에 앉아 있던 그녀의 오빠 손을 잡고 일어서며 자리를 비켜 준다.


나는 그녀의 곁에 앉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바나나를 사러 길을 나선

조기바라 로드 거리에서였다.


그날 이후로도 가끔씩 조기 바라 로드 거리를 가게 되면 그녀를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아마도 그 거리 어디쯤의 숙소에 그녀와 가족 일행이 묵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른 아침 매일 향하는 남걀 사원의 새벽 청소시간외는 문밖출입을 삼가며 하루 종일 숙소에서 오체투지를 해왔기 때문에 한동안 그녀를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그런 어느 날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름 아닌 남걀 사원 바로 앞에서...


그날도 예전과 다름없이 사원에 들러 청소를 하고 그리고 기도를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사원 앞에는 50년대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할 당시, 같이 망명을 했다는 어느 티베트 노부부가 녹말을 쑤어 만든 일종의 한국식 묵을 만들어 노상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묵집에 들러 허름한 의자에 앉아 묵 한 접시를 먹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길을 나설 때면 늘 오빠와 어머니와 함께  동행을 하였는데  그 묵집에 온 것이었다.


은연중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그녀에게 양보했으나 선글라스를 낀 그녀는 정중하게 사양을 했고 그서있는 상태에서 그녀는 그녀의 오빠와 같이 묵 한 접시를 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렇게 길거리에서 한 사람은 앉아서 또 한 사람은 서서 묵 한 접시를 먹으면서 우리는 잠시 얘기를 나누었었다.


영어를 꽤나 유창히 잘하는 그녀는 나의 발음으로 미루어 아시안 같다며 나의 국적을 물었었고 언제 다람살라를 왔는지, 언제까지 묵을 것인지, 또 이곳에서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등등 가벼운 신변 잡담을 서로 나누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약속은 하지 않았어도

사원에서 청소를 하는 시각에 맞춰 사원을  방문하는 그녀 가족 일행을  2-3일에

한 번씩은 마주치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가벼운 눈인사만을 주고받으며 헤어졌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새벽부터 내린 비는 다람살라에서 우기 때도 보기 힘들었던 무지개를 선사하여 주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사원에 들러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사원 바로 앞의 의자에 잠시 눈을 감고 앉아 있을 때였다.


그녀가 찾아왔다.

그녀는 바로 내 옆의 빈자리에 앉으며 내게 느닷없는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니?


갑작스러운 그녀의 질문에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지나온 나의 시간들을 되돌아보았다.

...

행복에 대한 우리들 관점은 무엇일까.

보편타당한 세상 속에서의 가치로 판단하는 행복?


당신이 지금 나에게 묻고 있는 그 행복은 도대체 어떠한 관점에서의 행복일까.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비 갠 오후 하늘에는

흰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세상 또한 나를 이 산속에 홀로 떼어 놓고 그저 말없이 그렇게 마구 달려가고 있는데...

이대로 여기 있다가는 도저히 손에 닿을 것 같지 않게 그렇게 멀리 저 멀리 그렇게 흘러만 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러나 삶의 기쁨과 만족을 외부의 상황에 의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느끼는 모든 감정은 순간적인 것. 

그러니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저 분별없이  바라보며 외부 환경에 의존하지 않는 삶의 기쁨과 만족을 구하려면 실재하는 것과 비실재하는 것에 대한 분별과 사유를 통해 완전 조복을 하고 내려놓고 내어 맡기는 것.

이른바 허용 내지는 수용이라는 것.


그러나 수도 없이 떨어지고 깨지며 스스로 아상을 깨부수기 전에는 조복이 안 되는 것임을.


문득 생각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 욕구나 욕망이 없었다.

단 한 번이라도 내게 주어진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내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아 삶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이 확립도 안되었을 때 약물에 중독되어 혼자서 웅크리고만 있었다.


“물질은 행복의 원천으로서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내재적 능력이 없다”는 리처드 기어의 말마따나 그즈음 나는 2 루피 하는 밀가루 빵 1개와 3 루피 하는 짜이 한잔으로 아침식사를 하면서 결코 물질적 소유와 비례하지 않는 행복이 있는 이곳 다람살라에서의 생활에 차츰 적응을 해 가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면 된 것일까?

비교하지 않고서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마음의 평화까지는 몰랐어도 천성 탓인지 남을 부러워하지도 남과 비교하는 삶을 살아오지도 않았다. 삶에 대한 미련도 없었고 두렵지도 않았지만 한 번의 시도 후에는 그만큼 의지가 강하지도 않았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감정이 미쳐 널뛰는 에고에 평생을 그렇게 휘둘리며 살아왔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사유의 시간들이었다.


내 삶의 바닥은 언제였을까.

아직까지도 살아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계속 바닥인 것 같은 느낌.

이것이 끝인가 보다 싶으면 어느새 그보다 더한 바닥이 나타나고...

안타까운 것은 삶에 대한 뚜렷한 목표의식이 없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도 삶은 계속해서 내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그 무렵, 절을 하면서 나의 내면을 바라보게 되었다.

선생님 말씀처럼 세상이 신기루인데 환영 속에서 나 아닌 나를 끄집어내어 내면의 아이라는 또 다른 환상 속, 분별 망상을 만들어 치료를 한다.

내면 아이라는 것도 그저 하나의 방편.  실재하지도 않는 것을 굳이 만들어 환상 속에서 치료를 하고 있다.

어쨌거나 그 아이라는 것도 또 다른 나의 모습.


지금까지 미처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인지하지 못했던 또 다른 나의 모습.

지금 내가 처한 고통만이 가득한 이 현실 앞에서 내게 주어진 삶에 대해 그저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하며 철저히 외면을 해왔던 나의 모습.


그리고 그런 시선으로만 받아들였던 세상에 대한 가치관이 그대로 투영되며 내 안의 내면 속에 각인이 되어 더 이상의 자각과 성찰 없이 내적 성장을 멈춘 채로 지금껏 세상과 대면을 해 오고 있었다.


그렇게 형성이 되어버린 잘못된 성격은 나의 내면의 또 다른 잠재의식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올바른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편협된 시선으로만 바라보며 눈앞에 펼쳐진 삶에 대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반응을 하고 있었다.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었다.

내가 불평을 해야 할 곳은 세상이 아니었다.

삶에 대한 나의 태도를 바꾸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나의 지나온 시간들을 일일이 그녀에게 모두 다 이야기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의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성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족하였다.

그 시간,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지나온 나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졌고 온전히 깨어 있는 마음으로 그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어느 누구도 내게 그런 자각을 하게끔 일깨워준 사람이 없었다.

주변에 귀 기울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살아가면서 이렇게 온전히 깨어있는 마음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어본 적이 근래에 없었던 것 같았다.


온전히 깨어있는 마음으로 그녀와 나눈 행복에 대한 고찰.

다만 그것으로 족함이었다.




다음 날 오후,

그녀가 다시 나를 찾아와 주었다.


하루의 일과처럼 늘 그러하듯이 사원 법당을 청소하고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데 법당 밖에서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청소를 하는 시간, 기도를 하는 시간 온전히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의자에 앉아 있던 그녀의 어머니는 법당에서 나오는 나를 보자 먼저 눈인사를 하며 나를 반기고는, 옆에 앉아 있던 그녀의 오빠 손을 잡고 일어서며 자리를 비켜 준다.


나는 그녀의 곁에 앉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녀는 길을 나설 때면 늘 손을 잡고 같이 따라나서는 어머니한테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한다.

무슨 사연이 있어 날마다 사원 바닥을 닦고 있는지.


"나는 내일 러시아로 돌아가"


“언제까지 네가 이곳에서 기도생활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도 무사히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건넨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그녀의 음악 CD를 내게 선물했다.

 

그녀는 러시아의 시각장애인 재즈 싱어 Margarita Petrova 였다.

그녀의 오빠 역시 그녀와 같이 재즈 그룹에서 활동을 하는 시각장애인 연주자였다.

항상 검은색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던 그 두 남매 시각장애인,

그리고 그 둘의 손을 이끌고 이곳 다람살라까지 찾아온 그 남매의 어머니.


그녀는 내게 그녀의 음악 CD를 건네주고

기다리던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렇게 사원을 떠나갔다.


러시아의 재즈 싱어.

그녀가 태어나면서부터 시각장애인으로 생을 시작했는지,

아니면 불의의 사고로 출생 이후에 시각장애인이 된 것인지 그 자세한 연유는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사원을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그녀와 내가 같이 앉아있던 이 자그마한 벤치를 아직도 감싸고 있는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Margarita.

함께 했던 그 시간이,

그리고 이제 그대는 떠나갔지만 아직도 그대의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이 자그마한 벤치에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나는 행복하다.


행복에 대한 관념이 떠오르고 있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네가

일으킨 생각이다.

그 생각은 지금 어느 자리에서 떠오르는 것인가.


행복도 인식.

내가 인식을 거두어 내면 행복은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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