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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룡 Feb 01. 2020

이직할 건 아니지만 그 회사는 어떤가요?

나의 직장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

나는 소위 말하는 '프로이직러'와는 거리가 멀다. 보험계리사로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나는 올해로 직장생활 4년차에 접어들었다. 이전에 다른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한 적은 있지만, 정직원으로서는 지금의 회사가 첫 직장이다.


처음에는 기회만 있으면 이직을 하겠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이직을 고려할 정도로 지금 다니는 직장에 큰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직장생활을 한 회사에서만 하다 보니 다른 더 좋은 회사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다른 회사는 분위기가 어떻고 급여가 어떤지, 다른 회사에 비해 우리 회사는 얼마나 좋은 회사인지가 늘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금융권 이직정보를 나누는 오픈카톡방을 발견하였다. 들어가 보니 금융권 직장으로 이직을 하고자 하는 사람 수백 명이 모여 있었다. 어떤 회사가 좋고 나쁘다는 이야기, 혹은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대한 불만 등, 익명이기 때문에 더욱더 솔직하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카톡방에 들어가 있으니 편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이직정보를 찾아보지 않아도, 가끔씩 카톡에 뜨는 대화를 보다가 관심 있는 회사의 정보가 나올 때 눈여겨보기만 하면 됐다. 처음에는 '좋은 직장'의 정보를 주로 보면서 저 회사는 어떨지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카톡방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이직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이 카톡방에는 현재 다니는 직장에 불만이 있는 사람이 많았다. 카톡방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지금 다니는 회사에 대한 불만과 푸념으로 바뀌어 갔다. 소위 '워너비'라고 하는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도 이 카톡방에서는 의외로 많은 불만을 털어놓고 있었다.


익명으로 대화중인 이직정보 카톡방의 모습


몇 달간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직장에 대한 불만들을 듣다 보니 점차 나의 생각도 변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직정보를 찾고자 들어간 카톡방이지만, 어떤 직장이든 모든 직원들을 만족시키는 곳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의 직장에 불만이 있는 것처럼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내가 저 회사로 이직을 한다고 해도 저 사람처럼 불만을 털어놓으면서 또다시 이직정보를 찾고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점차 나는 이직에 대한 생각을 접게 되었다. 물론 헤드헌터가 좋은 조건으로 나에게 연락해 온다면 모르는 일이겠지만, 우선은 지금 나의 직장에 충실하기로 하였다.


나에게 더 이상 이직정보 카톡방은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카톡방에서 나가기 버튼을 누르기가 싫었다. 나는 여전히 카톡방을 종종 들여다보았다. 이직할 생각을 접었는데도 회사 일이 힘들 때일수록 카톡방에 더 자주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내가 이 카톡방을 나갈 수 없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이직 생각을 접은 지금, 나는 '좋은 직장'이 아닌 '나쁜 직장'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좋은 직장'을 찾고자 들어간 카톡방이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직장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불만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이것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직을 포기한 그 순간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 이왕이면 내가 다니는 회사가 최고의 직장이길 바랐다. 이것은 가질 수 없는 직장이라면 차라리 나쁜 회사였으면 좋겠다는, 인간의 간사한 마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평생 이 직장을 다녀야 하는 나에게 너무도 슬픈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나의 직장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피곤한 출근길에서,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앞으로도 나는 카톡방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의 불만을 들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의 직장을 좀 더 사랑하면서 견딜 것이다.



"우리 회사가 저 회사보다는 돈을 많이 주네!"

"저기에 비하면 우리가 야근도 덜 하는데?"

"그래도 우리는 저기처럼 지방 순환을 안 하니까 얼마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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