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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룡 Jan 05. 2020

바나나는 노란색이 아니에요

당신은 정말 행복한가요?

바나나는 무슨 색인가요?


이렇게 물어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노란색이라고 답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곰곰이 생각해보고 흰색이라고 답하겠지만, 그런 사람에게도 처음으로 떠오른 색은 노란색일 것이다. 사람들이 바나나를 노란색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바나나 껍질이 노란색이기 때문이다.


사실 바나나는 흰색이다.


하지만 바나나우유, 바나나킥 등 바나나로 만든(또는 바나나 맛이 나는) 가공식품들은 대부분 노란색이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바나나맛 아이스크림을 주문해도 노란색 아이스크림이 나온다. 바나나가 실제로 흰색이므로 이러한 노란색 음식들은 모두 일부러 색소를 넣은 것이다. 딸기맛 음식에는 빨간색 색소를 넣는 것처럼, 우리가 먹는 많은 음식에는 색소가 들어가므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바나나맛 음식을 더 바나나답게 보이기 위해서 실제 바나나의 색도 아닌 '사람들이 바나나 색이라고 생각하는' 노란색 색소를 넣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행복한 '척'을 많이 한다. 남들이 좋다는 대학에 들어가고 남들이 좋다는 직장에 들어가려고 하며, 실제로 필요하지 않더라도 외제차를 구입하고 명품을 입고 다닌다. 반면 불행한 일들은 숨기고 아무도 모르게 하려고 한다. 실제로는 불행해도 남들 눈에는 행복해 보이려는 '쇼윈도 부부'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내가 취업을 준비할 때, S그룹의 한 회사와 지금 다니는 회사에 동시에 합격한 적이 있다.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S그룹의 회사가 몇 배는 더 큰 회사이고, 지금 다니는 회사는 이름을 말해도 어떤 회사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당시 나는 어떤 회사에 입사를 해야 할지 큰 고민에 빠졌다. 처음에는 업계 1위인 S그룹사에 입사하는 쪽으로 기울었으나, 직장생활을 해본 많은 지인들이 직원으로서 다니기에는 지금의 회사가 더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 주어 결국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였다.


이후에도 나는 한동안 S그룹사에 미련이 남았었다. 생각해보면 그토록 미련이 남았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다니는 회사가 S그룹사보다 훨씬 작은 회사이고, 다른 사람들이 나의 회사는 알아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바나나가 노란색 껍질을 가지고 있듯, 내가 원했던 것은 S그룹사와 내 이름이 같이 적혀 있는 명함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미련이 조금은 남아 있지만 당시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회사에 100%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 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회사'와 '직장으로서 좋은 회사'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와! 그 회사에 다닌다니 정말 대단하네. 부럽다."라고 말하는 회사보다는,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아주지 못해도 조직문화와 복지가 좋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회사가 훨씬 좋은 회사이다. '신이 숨겨둔 직장'이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자격증 공부를 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때에는 SNS에 접속하면 항상 우울해졌다. 주변 친구들은 다들 연애도 하고 화려한 관광지나 맛집에 가고 있는데 나 혼자 도서관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것 같아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SNS를 삭제하고 한동안 SNS에 접속하지 않기도 했다.


지금은 SNS에 종종 접속하긴 하지만, 항상 SNS에 올라온 모습들이 그들의 본모습은 아니라는 것을 주의하려고 노력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기쁜 일이 있는 반면 슬픈 일도 있고, 화려한 순간이 있는 반면 초라한 순간도 있다. 하지만 SNS에는 가장 기쁘고 화려한 순간만을 올린다. 사람들은 일 년 중 대부분의 날들이 힘들고 우울했어도 하루가 행복했다면 그 하루의 일상을 SNS에 올린다. 하지만 무심코 SNS를 보면 나만 빼고 주변의 모든 친구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만 같아 자존감이 낮아질 수도 있다.


우리는 원래 모두가 흰색인데, 다른 사람들의 노란 껍질을 보면서 "왜 나만 흰색일까."라고 생각하며 우울해하는 것이다.




얼마 전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라는 이름의 바나나우유가 출시되었다. 그동안 바나나우유는 노란색이었는데 실제로 바나나는 흰색이라는 것을 강조한 이름이다. 이 우유는 색소를 쓰지 않아 흰색 그대로이고, 그동안 색소를 사용해온 노란색 바나나우유를 저격하는 재미있는 네이밍이었다.


바나나는 흰색인데, 껍질이 노란색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노란 바나나'라는 고정관념이 생겨 버렸다. 그리고 이 고정관념에 충실히 답하고자 바나나맛 음료에는 노란 색소가 첨가된다. 이렇게 노란색이 된 바나나는 행복할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 다른 사람들이 내 행복의 순위를 매겨 주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노란색이 더 행복하다고 말해도, 나는 그냥 흰색인게 행복하다면 굳이 노란색이 될 필요는 없다.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도 바나나처럼 살고 있지는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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