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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룡 Dec 29. 2019

아빠와 둘이서 해외여행을?

3박 4일간의 북경 투어, 그 여행의 진짜 의미


대체 왜 아빠랑 둘이?


지난 10월, 나는 아빠와 둘이서 북경으로 3박 4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다녀온다고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에게 말하면 모두가 의아해했다. 아빠와 아들 둘이서 떠나는 여행이라니? 흔치는 않은 조합이었다.


나는 올해 초에 결혼을 한, 소위 말하는 새신랑이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긴 했지만, 지금 이 시기에 여행을 떠난다면 아내와 둘만의 여행을 한 번 더 떠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기였다.


사실, 이 여행은 아빠를 위한 것이었다.


아빠는 환갑이 넘도록 현재까지 해외를 나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가장 멀리 떠나본 여행이 제주도로 떠난 신혼여행이었다. 처음에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시대여서, 그 뒤에는 두 아들을 키우느라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나중에는 IMF 등으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서. 결국 아빠는 한 번도 해외여행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직장을 가지고 부모님의 황혼 여행을 보내드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지만, 엄마는 집안의 이런 풍파를 오랫동안 겪으며 공황 증세가 생겨 비행기를 타는 것이 어려워진 뒤였다.


아빠는 계속해서 엄마에게 가까운 곳이라도 해외여행을 가자고 이야기를 했지만, 엄마는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다고 말할 뿐이었다. 아빠 스스로도 엄마가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은 것에는 본인 책임도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더 이상 강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엄마도 아빠도 안타깝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나에게는 그뿐이었다. 직장을 갖고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나는 곧바로 혼자서 여행을 다녀왔고, 기회만 있으면 다른 친구와든 혼자서든 또다시 여행을 떠날 궁리도 하였지만 여기에 아빠는 없었다.


그리고 올해 초 나는 한 여자의 남편이 되었다. 아내와 함께 발리에서 함께한 신혼여행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나는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아내에게 조만간 또 둘만의 여행을 다녀오자고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한 번은 시부모님과 가깝게 지내기를 좋아하는 아내가 엄마아빠(아내의 시부모님)와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은 어떻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엄마의 사정을 말해 주었다.


"그럼 아버님과 둘이서라도 다녀오는 건 어때?"


아내의 생각은 나보다 훨씬 깊었다. 나는 나중에 자녀가 생기면 여행을 자유롭게 다니지 못할 테니 그전에 둘이서 여행을 많이 다녀오자는 생각이었는데, 반대로 아내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느라 해외로 여행을 한 번도 다녀오지 못한 아빠에게 여행을 선물해주자는 생각이었다.


나는 왜 한 번도 그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까..

아빠는 건축을 전공해서 텔레비전에서 만리장성이나 유럽의 건축물이 나오면 항상 감탄하면서 집중해서 보곤 하였다. 나는 곧바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둘이서 만리장성을 보러 가자고 하였다.



아빠와 함께한 3박 4일


나도 여행 경험이 많지 않았기에 자유여행으로 가기는 두려웠고, 여행사를 통해 3박 4일 북경 패키지여행을 예약하였다. 여행이 결정되자 한동안 아빠의 모습은 매일매일이 소풍 가기 전 날의 초등학생 같았다. 곧바로 여권사진을 찍더니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만들면서 하루하루 기뻐하고 또 신기해했다. 스마트폰을 잘 다루지 못하는 아빠이지만 내가 여행 일정표를 링크로 보내주니 열심히 스마트폰으로 일정을 검색해보곤 했다.


그렇게 아빠와 북경으로 여행을 떠났다.


비행기에서는 일부러 아빠에게 창가 쪽 좌석을 드렸다. 아빠는 비행기는 타보았지만 창가에는 처음 앉아본다고 하였다. 마침 날씨가 맑아 비행기가 이륙하자 창문 밖에는 인천 앞바다의 넓은 광경이 펼쳐졌고, 아빠는 어린아이 같이 신기해하였다. 왜 진작 이렇게 해드리지 못했을까.. 기쁜 한편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패키지여행의 일행은 총 16명이었다. 50~60대의 부부 단위가 대부분이었고, 가족 단위의 일행도 있었다. 아빠와 둘이 온 내가 가장 독특한 조합이었고, 모두가 아빠를 모시고 온 나보고 대단하다고 말해 주어 아빠는 여행 내내 으쓱해하였다.


아빠에게 조금이라도 편한 여행을 선물해주고 싶었고, 중국의 값싼 숙소는 지저분한 곳이 많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에 여행상품 중에서도 비교적 고급형 상품으로 예약하였다. 그러다 보니 숙소는 한국에서도 평소에 가기 힘든 메리어트 호텔이었다. 평생 이런 고급스러운 곳에서 숙박해본 적이 없는 아빠는 이 또한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이런 낭만적인 곳을 아내와 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행지에서는 모두가 낭만에 취해 낯선 이성에게도 쉽게 마음을 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은 가족에게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한국에서는 아빠와 단둘이 술 마시는 것은 어색해서 상상도 못 할 일인데, 북경의 특급호텔에 둘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맥주를 사다가 건배를 하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이때 3박 4일간 아빠와 나눈 대화는 아마 최근 3~4년간 나눈 대화보다도 많지 않았을까 싶다.


북경의 메리어트 호텔


하지만 패키지여행이라고 해도, 해외여행이 처음인 아빠와 둘이 여행하는 것은 어려운 점도 많았다. 평소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던 아빠는 특급호텔의 순백색 침대를 오히려 낯설어했고,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김치가 없다고 한식을 그리워하기도 하였다.


패키지의 다른 일행들은 여행을 일상처럼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아빠에게는 북경 여행이 일생일대의 경험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북경 여행 정도면 주말을 즐기는 정도의 가벼운 여행이기도 했다. 한 번은 식사 자리에서 한 남자가 본인의 수많은 여행담을 자랑하듯 늘어놓고 나서, 아빠를 보고 이전에 또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가 보았냐고 물어보았다. 해외여행이 처음인 아빠는 순간 당황하였다. 내가 중간에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지만, 아빠는 여행 경험이 많은 그 남자를 보고 위축되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그리고 북경의 관광지는 예상한 것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다. 붐비는 정도가 서울의 명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정도였다. 여행사에서 온 그룹마다 가이드가 깃발을 들고 있었기에, 만리장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는 마치 광화문의 집회 현장 같은 모습이 펼쳐졌다.


하지만 평생 한국 바깥의 세상을 보지 못한 아빠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수십 년간 보고 싶었던 만리장성을 보면서는 감탄과 경이로 가득 차서 행복한 표정이었다. 나도 중국에 처음 와 보았기 때문에 여행 자체도 새롭고 즐거웠으나, 그보다는 행복해하는 아빠를 보는 것이 더욱 뿌듯하였다.


집회 현장이 아닌, 만리장성 입구에서의 여행객들 모습
만리장성 팔달령에 도착한 모습



여행의 진짜 의미


2019년 베스트셀러 도서 1위는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으로부터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김영하 작가가 수많은 여행을 하면서 느낀 여행의 아홉 가지 이유를 풀어쓴 책이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지만, 여행을 함께한 동행으로부터 느끼는 의미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는 것이 의외였다.


나는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다녀온 해외여행들은 모두 동행한 사람이 달랐다. 수학여행으로, 혼자서, 여러 친구들과, 아내와.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다녀온 모든 여행은 그 느낌과 추억이 모두 다른데, 그 다름은 여행지가 달라서보다는 함께한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꿈꾸지만, 사실 여행은 힘들다. 많은 돈과 많은 시간, 그리고 많은 체력이 필요하다. 아빠와 보낸 여행 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가이드가 있었지만 공항에서의 체크인과 탑승수속 등은 모두 내가 도와주어야 했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온 아빠를 위한 또 한 명의 인솔자가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난생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하며 행복해하는 아빠를 보면 나의 힘든 것은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내가 지금껏 갔던 여행들을 회상해보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나씩은 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는 멀라이언 파크가 떠오르듯, 보통은 그곳의 대표적인 명소가 떠오른다. 이번 북경 여행도 회상해보면 만리장성, 자금성, 용경협 등의 명소들이 생각난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대표적으로 하나의 이미지를 기억한다면 이런 명소들이 아닌,  명소들을 보면서 행복해하던 아빠의 얼굴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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