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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룡 Jun 21. 2020

포장마차 떡볶이에서 차돌박이 떡볶이까지

우리家한식 - 2020 한식문화 공모전

초등학생이던 시절, 학교 앞에는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주 고객이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인지 떡 한 개에 백 원, 오뎅 한 개에 백 원, 이런 식으로 낱개로 판매를 하였다. 단돈 백 원으로 떡 한 개를 사 먹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에 하교 시간에는 항상 학생들이 북적북적했다.


어릴 적 우리 집이 그다지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학교에 갈 때면 엄마는 꼭 내 가방 속에 백 원짜리 동전 몇 개라도 넣어주곤 하였다. 삼백 원만 있어도 하교 길에 들러서 떡 두 개와 오뎅 한 개를 사 먹을 수 있었고, 천 원짜리를 가지고 있는 날은 원 없이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동전이 있을 때마다 이렇게 하교 길에 포장마차에 들러 떡볶이와 오뎅 국물을 호호 불어가며 먹던 것이 당시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포장마차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그 포장마차는 사라졌고, 지금과 같이 1인분에 2~3천 원씩 하는 떡볶이집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프랜차이즈형 떡볶이 전문점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물론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는 지금도 있지만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고, 한두 개씩 소소하게 사 먹던 옛 추억은 다시 느낄 수가 없게 되었다.


이 무렵 나의 부모님도 한 프랜차이즈 떡볶이 가게를 운영하였다. 항상 퇴근할 때마다 남은 떡볶이 1~2분씩을 포장해 왔기 때문에, 몇 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떡볶이를 원 없이 먹어볼 수 있었다. 중독성 있는 매콤한 맛 덕분인지 거의 매일같이 떡볶이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집안 형편이 풍족하지 않아도 밤마다 엄마 아빠가 퇴근할 때를 기다렸다가 떡볶이를 먹는 것이 소소한 행복이었다.


당시 엄마와 아빠에게 떡볶이는 어떤 의미였을까? 직장인이 되어 당시를 되돌아보면, 일주일에 하루씩만 쉬어가며 밤 10시가 되어서야 퇴근하던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1인분에 3천 원씩 하는 떡볶이를 팔면 고작 몇백 원이 남고, 그 몇백 원이 쌓여 우리 식구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우리 식구에게 떡볶이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서민의 애환이 가득 담긴 음식이었다.




최근에는 떡볶이 가게들이 한 번 더 변모하고 있다. 물론 기존의 프랜차이즈 떡볶이 가게들도 과거의 포장마차와 비교하면 많이 고급화되긴 했지만 일반 분식집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최근에는 넓고 고급스러운 매장에서 무한리필로 먹을 수 있는 떡볶이나, 차돌박이와 같은 각종 토핑이 올라가는 즉석떡볶이 등 다양한 프리미엄 떡볶이 가게들이 등장하고 있다.



프리미엄 떡볶이 가게가 처음 등장했을 때 나는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 떡볶이는 어릴 적 백 원짜리 동전 하나만 가져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을 주는 동심의 음식이었고, 나중에는 부모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정(情)의 음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항상 떡볶이를 서민 음식으로 생각했고, 떡볶이라고 하면 포장마차에서 먹는 떡볶이가 가장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프리미엄 떡볶이 가게에서 떡볶이를 먹으면 물론 분위기도 좋고 맛도 있겠지만, 과거의 포장마차 떡볶이에서 느낄 수 있는 푸근한 정은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웠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떡볶이를 대표적인 서민 음식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떡볶이의 역사를 보면 사람들의 이런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 떡볶이도 알고 보면 한국의 전통 음식에서 유래된 한식이다. 지금과 같은 고추장 떡볶이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조선 시대 궁중에서 간장에 떡과 고기, 야채를 버무려 먹던 것이 지금의 떡볶이로 발전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궁중 떡볶이가 현재의 떡볶이의 기원이고, 한 때는 궁에서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러한 떡볶이가 이제는 대표적인 서민 음식으로 굳어진 것은 신기한 일이다. 생각해보면 떡볶이뿐만 아니라 김치찌개, 비빔밥, 청국장, 부침개 등 대표적인 한식들은 한국인들에게 그다지 고급 음식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 소개팅 등 각종 모임에서 고급스러운 음식점을 간다면 대부분 한식집이 아니라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나 일식집을 찾는다.


최근에는 프리미엄 떡볶이 가게들이 베트남, 싱가포르 등 외국으로도 진출하고 있다. 우리가 양식이나 일식을 고급 음식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외국인들에게도 떡볶이는 비교적 고급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프리미엄 떡볶이 가게들이 생기는 것은 한식이 그만큼 높게 평가받고 있다는 좋은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떡볶이가 하나의 고급 음식으로 자리 잡는다고 해도 나는 예전과 같은 포장마차 떡볶이가 계속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오뎅 국물을 먹으며, 어릴 적 학교 앞에서의 추억과 부모님의 사랑을 다시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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