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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룡 Feb 20. 2021

과거를 바꿨더니 딸이 사라졌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폭풍의 시간> 리뷰


베라는 사랑하는 남편과 딸과 함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온다. 새로운 집 다락방에는 카메라가 연결된 낡은 텔레비전이 놓여 있었다. 폭풍우가 치는 어느 날 밤, 갑자기 텔레비전이 켜져서 다락방에 가 보니 카메라를 통해 25년 전 한 소년과 영상통화가 이어진다. 베라는 이 소년이 바로 25년 전 오늘 죽었다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년에게 절대 밖에 나가지 말라고 말한다.


그렇게 소년은 목숨을 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베라의 인생이 갑자기 달라졌다. 딸은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가 되었고, 남편 다비드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25년 전의 아이를 구한 것인데, 왜 베라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져버린 것일까?


베라는 자신의 딸과 그녀의 인생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본 리뷰는 영화 <폭풍의 시간>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타임머신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자.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어릴 적의 '나'를 죽인다. 그러면 현재의 '나'는 어떻게 될까?


1.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2. 현재의 '나'가 존재하므로 과거의 '나'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3. 현재의 '나'도 소멸한다.


최근에는 시간여행을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재 기술로는 시간여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간여행을 다루려면 상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데,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시간여행을 다루는 설정은 크게 위 3가지로 유형화할 수 있다.


1.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경우

다중우주론을 사용하여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주 속 무한한 세계 중 하나라는 설정이다. 이 경우 과거를 바꾼다고 해도 바뀐 과거가 평행우주로서 새롭게 존재할 뿐, 현재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타임 패러독스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가장 설득력 있는 설정이다. 하지만 충분한 설명을 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간여행이 주가 되는 작품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영화 <데자뷰(2006)>가 있으며,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도 이 설정을 사용했다.


2. 과거의 '나'를 죽이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다는 설정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나'가 존재하는 이상 어떤 노력을 해도 과거의 '나'를 죽이는 것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나'는 어릴 적 괴한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그 괴한이 미래의 나였다는 식으로 주로 묘사된다. 대표적으로 영화 <열한시>, <타임 크라임>, <타임 패러독스> 등이 있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다는 점에서 최근 개봉한 <테넷>도 여기에 속한다.


3. 현재의 '나'도 곧바로 소멸하는 경우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준다는 설정이다. 과거의 '나'를 죽이면 현재의 '나'는 과거의 그 시점에 이미 죽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기 좋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설정이다. 이 영화 <폭풍의 시간><어바웃 타임>을 비롯해서 한국 작품 <콜>, <시그널>, <더 폰>,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등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영화 <폭풍의 시간>은 과거를 바꿨더니 딸과 함께 본인의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진 베라가 자신의 딸을 되찾기 위한 이야기를 담은 타임워프 영화이다. <폭풍의 시간>은 위의 케이스 중 과거가 현재를 바꾼다는 세 번째 설정을 사용했다.



<폭풍의 시간>처럼 과거가 현재를 바꾼다는 설정을 사용한 영화는 너무도 많다. 이런 작품들을 보다 보면 오래전에 죽었던 사람이 갑자기 살아나고, 잃어버린 물건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는 등 극적인 효과를 많이 사용한다. 애초에 불가능한 시간여행을 소재로 했으므로 비현실성을 어느 정도 감수하고 보아야겠지만, 시간여행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장면은 너무하다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화 <콜>에서는 영숙이 20년 전 어린 서연에게 뜨거운 물을 부어 온 몸에 화상을 입게 하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몸에 화상 흉터만 생긴다. 사실 어릴 적 그런 일을 당했다면 현재와 바뀐 미래는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 흉터 혹은 트라우마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영화 <나비효과>에서는 이런 점을 통해 과거를 조금씩만 바꿔도 현재가 걷잡을 수 없이 바뀌어버린다는 내용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폭풍의 시간>은 시간여행을 훌륭하게 활용했다고 할 만하다. 주인공인 베라는 자신과 만난 적도 없는, 아무 상관없는 니코의 과거를 바꾸었으므로 자신의 현재에는 영향을 줄지 몰랐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어버리고, 다시 과거를 바꾸기 위해 니코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결국 함께 니코의 행방을 쫓던 형사가 지금의 니코이자 현재의 남편임을 알게 된다.


베라는 니코와 처음에는 전혀 상관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베라가 과거의 니코를 살려주면서부터 둘은 상관이 있는 사이가 되었다. 니코는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자 자신이 텔레비전 속에서 만난 베라에게 집착하며 계속해서 베라를 찾아다닌다. 그리고 수십 년 후 베라를 만나자 그의 감정은 사랑으로 바뀌었고 결국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이렇게 <폭풍의 시간>은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과거를 바꾸더라도 결국 자신의 미래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잘 표현했다.



다른 시간여행 관련 영화와 비교했을 때, <폭풍의 시간>도 영화 중반까지는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다른 작품들과 다른 점은 왜 현재가 바뀌었는지를 알 수 없고 그 이유를 찾는 것이 주된 내용인 것이었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여러 복선들이 퍼즐처럼 치밀하게 맞춰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독일 드라마 <다크>와 함께 스페인 영화 <폭풍의 시간>도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웰메이드 작품임을 보여주었다. 시간여행 관련 작품을 보면 미국에서는 <데자뷰(2006)>, <인터스텔라>처럼 과학을 통해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럽 작품들은 역시나 철학의 근원지답게 시간여행에 대해 깊은 철학적 사색을 보여 준다.




남편 니코에 대한 기억이 돌아왔을 때, 베라는 선택을 하여야 했다. 지금은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딸을 다시 살리면 니코와는 아무 사이가 아닌 것이 되고, 니코를 선택하면 다시는 딸을 볼 수 없었다.



바뀐 현실 속에서 딸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도 없고 베라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딸을 기억하지 못한다. 딸은 오로지 베라의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모두들 딸에 대한 기억은 가짜이고, 니코가 남편인 지금의 현실이 진짜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베라는 딸과 함께한 인생을 꿈이었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미쳐버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베라는 자신의 기억을 진짜 현실이라고 믿고 딸과의 인생을 선택하였다.


우리 뇌는 우리가 느끼는 경험을 진짜라고 믿어요
뇌는 환영을 현실인 양 이해하고 받아들이죠
현실이 그저 환영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누구나 하나쯤은 바꾸고 싶은 과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번쯤 시간여행을 하며 그 과거를 바꾸는 상상도 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과거를 바꾸면 현재가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과거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면, 지금 살고 있는 나의 현재는 <폭풍의 시간>의 베라처럼 누군가 목숨을 걸고 싸우며 얻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내 옆에 소중한 가족과, 지키고 싶은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면 과거를 바꾸려 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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