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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 May 05. 2021

대한민국 최남단, 날씨의 최전방

제주 예찬

 그다지 성실하지 않은 학생이었던 학부 시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졸업여행이다. 비행기 한번 타 보지 못한 나의 첫 하늘 길 여행은 제주도였다. 지금에야 제주를 고향 가듯 옆 동네 놀러가듯 간다지만 그때만 해도 내게 비행기를 타고 가야하는 섬은 심리적으로 멀기만 했다.


 처음 타게 된 비행기도 신기했다. 구름 위를 날아 신나게 놀고 신나게 달려갔던 곳이 있다. 기상청의 소속인 ‘국가태풍센터’다. 당시만 해도 태풍센터는 2008년에 갓 개소한, 태풍을 정면에서 맞는 제주에 자리를 잡은 기상청의 큰 기관 중 하나였다. 대기환경학과의 대부분은 기상청 예보관이라는 직업을 한번이라도 꿈꿔 봤던 사람들이다. 이제 곧 졸업을 앞둔 초보 기상학자들에게 태풍센터의 현직자들은 멀고도 높게만 보였다. 근무하고 계시던 몇몇 분은 학교의 선배님이셨기에, 언젠가 이곳에서 일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키웠다. 학교에서는 학부생들의 기관 견학기회를 종종 만들어 주곤 했고 서울의 기상청을 견학한 후 처음 가보는 기관이기도 했다.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던 10년 전의 졸업여행. 그곳에 있는 여러 기관들은 기상청이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음을 깨우쳐 주는 곳이기도 했다. 기상청에 입사하고 나서도 종종 제주 여행을 갈 때 마다 제주에 있는 동료들과 한 번 쯤 마주칠 기회가 있었다. 의외로 제주도에 위치해 있는 기관이 다양해서 그곳에 터를 잡은 이들도 타지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한라산의 영향으로 섬의 동서남북 날씨가 각각 특징이 있는 것과 동시에, 한반도 남쪽에서 오는 모든 기상현상을 처음 마주하는 곳이다. 더 남쪽으로는 이어도가 있긴 하지만, 사람들과 직접 마주치는 것은 제주도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좁은 면적임에도 여러 기상기관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주 곳곳에 있는 기상관측시설과 기관들의 숫자를 보면 사람들이 조금 놀랄지도 모르겠다. 대표적인 곳은 제주의 날씨를 책임지는 제주지방기상청과 예보국 소속으로 태풍에 대한 분석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국가태풍센터이다.     


 제주지방기상청은 무려 1923년 제주측후소(기후를 측정하는 곳이라는 의미지만 기상현상 전반을 관측하는 관측소의 역할을 했다.)로 신설되었다. 오래된 여느 기관이 그렇듯 일제 강점기에 일본과 가까운 거점으로서, 그리고 일본과 한국 사이의 날씨를 관측하는 곳으로 사용되다가 독립을 하며 국립중앙관상대에 소속되게 되었다. 2015년까지는 성산과 고산, 서귀포에 각각 기상대를 두고 있기도 했다. 지금은 각각 기상서비스센터로 작은 기관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업무는 제주지방기상청으로 통합하고 있다.


 제주도의 위치적 중요성 때문인지 제주에는 두 개의 레이더 관측소가 있다. 하늘로 레이더 전파를 발사해 강수에코를 측정하고 남쪽에서 다가오는 에코를 기민하게 탐지하는 레이더들은 기상예보관들에게 꼭 필요한 장비 중 하나다. 기상청뿐만 아니라 환경부, 국방부, 공항 등 여러 기관에서 자체적인 레이더를 설치하고 있기도 하다. 용도도 다양해서 기상청의 레이더나 환경부의 레이더는 기상관측용이 많지만 공항은 접근하는 비행기를 관측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고 국방부는 자체 용도에 따라 주로 관측하는 내용을 바꾸기도 한다. 제주도에 설치된 레이더는 둘 다 기상청 소속으로 고산과 성산에서 한라산의 서쪽과 동쪽 기상을 24시간 감시한다.


 레이더라는 중요 장비 때문인지 두 곳 모두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고, 오션뷰는 기본 옵션이다. 주변보다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해서 장애물이 없어야 레이더 장비를 더욱 알차게 사용할 수 있는데 성산 레이더는 성산지역의 평탄한 지형 상 높은 곳을 찾기 힘들어 대신 레이더 탑을 높게 세웠다. 고산기상대는 인적이 드문 수월봉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수월봉 전망대 바로 근처에 있는데 이곳은 제주 사람들도 인정하는 노을의 명소다. 주변에는 지질탐방로도 있고 해안도로를 타고 내려가는 길목이라 관광객도 자주 찾는다. 아마 제주에 위치한 기상기관 중 꼭 하나를 들러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고산기상서비스센터로 향할 것이다.


 제주지방기상청이 기상청의 대표적인 업무를 하는 기반 기관이라면, 더 전문적인 업무를 하는 기관들도 있다. 앞서 소개했던 국가태풍센터와 더불어 국립기상과학원 또한 제주에 터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기상과학원은 기상청 내에서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한다. 위험기상을 예측하는 모델을 응용하는 법이나 새로운 관측 방법을 연구한다. 기상 항공기를 가지고 관측을 한 자료를 분석하는 역할도 과학원에 있다. 재해를 유발할 수 있는 기상현상에 대한 연구를 실무에서 하기 힘들때, 혹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할 때 기상청 직원들은 과학원에 문의를 하기도 한다.

 

 이렇듯 다양한 기관이 있어서 기상청 사람들이라면 연고가 없더라도 제주에 근무하는 경우가 있다. 불편할 때도 있고 멋질 때도 있는 다양한 매력을 가진 제주에 사람들은 늘 홀리곤 한다. 발령을 받았다가 다른 기관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말은 늘 한결같다. 힘들지만 아름다운 곳, 그리고 살아볼만한 곳이다. 날씨의 최전방이라 지나가는 계절마다 견뎌내기 쉽지 않더라도 제주는 늘 환상의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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