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에도 콜센터가 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 기상청의 날씨 정보는 대부분 신문이나 뉴스로 나가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즉시 최신 기상정보를 들으려면 지역 예보관의 직통번호를 알아야 했다. 전문 상담원이 아니고, 예보 인력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예보관들의 업무 과중을 줄이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131 기상 콜센터다. 2008년에 개소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기상콜센터는 1년 만에 100만 건이 넘는 상담을 했고, 하루에는 4천 건 가량의 문의가 들어온다.
전화를 통해 예보를 들을 수 있도록 예보 개황을 녹음하는 것이 예보관들의 업무로 들어왔다. 그 예보를 다 들은 후에는 상담원 연결이 가능했다. 아주 오래 전의 기상전화 131은 전화로 듣는 라디오였다고 한다. 녹음 업무를 하는 직원들이 한 시간에 한 번씩 날씨 상황을 직접 녹음하고, 전화를 들어 지역번호와 131을 누르면 라디오를 켠 것처럼 내용이 중간부터 나오고 끝나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식이다. 날이 좋을 때야 본인의 노하우만 있으면 녹음이 금방 끝나지만, 태풍이라도 올라오는 날에는 녹음이 20분, 30분 이어졌다. 말실수라도 하면 처음부터 다시 녹음을 해야 한다. 손에 땀을 쥐고 긴장하며 녹음을 하고 나면 다음 녹음시간이 다가온다. 당시의 담당자들은 또박또박 명확한 발음으로 녹음을 마쳐야 한다. 한글 발음을 입력하면 기계음으로 읽어주는 기능이 도입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대부분의 녹음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갔다고 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TTS(Text to Speech) 프로그램의 기능이 향상되면서 대부분의 예보를 기계음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예보관들의 부담도 덜고, 시간도 절약되는 방법이었다.
현재 제공되는 ARS 방식의 기상콜센터는 간단한 예보라면 바로 들을 수 있다. 특보와 예보, 해상예보와 지진정보도 알 수 있다. 특히 해양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자료를 얻기 힘든 경우가 많아 기상콜센터의 단축번호 중 2개(2번 해상예보, 7번 항해 기상정보)가 바다에 관한 예보다. 한 번이라도 기상상담을 받아 본 사람이라면 다양하고 상세한 정보에 놀라게 된다. 그 정보로도 모자라다면 0번을 눌러 상담사를 연결한다. 예보관은 아니지만 그날그날의 날씨를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하고 정보를 제공해 주는 콜센터의 상담직원들이다.
초보 예보관이던 시절 기상콜센터는 무엇보다 든든한 조력자였다. 131이라는 중간과정이 있으므로 해서 단순 날씨 문의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때때로 '131 사람들을 믿을 수가 없어서 이쪽으로 전화했다'라고 이야기하는 민원인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였다.
"131 콜센터의 상담직원들과 저희들이 드릴 수 있는 정보가 다르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기상청 홈페이지나 네이버에서 내일 날씨를 검색하셔도 같은 정보가 나옵니다. 오히려, 날씨가 좋지 않을 때에는 콜센터 연결이 더 빠를 수 있습니다."
당시의 나는 사투리를 잘 알아듣지 못해 민원인의 말을 두 번 세 번 되묻는 것이 일상이었다. 빠른 속도와 다른 억양은 너무 어려웠고 그런 나를 대부분의 민원인들은 답답해했다. 한 번도 살아보지 못했던 다른 지역의 말투에 익숙해지는 것은 거의 1년이 걸렸다. 그렇게 익숙해지고 나서는 민원 전화가 일상이 된다. 131 콜센터가 있다고는 해도 직접 하는 전화가 100% 사라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시청, 구청 같은 유관기관은 물론이고 이래저래 알게 된 기자분이나 기상 관련 업체가 전화 오는 경우도 많다.
업무 분장에 '기상상황에 관한 상담'이 있을 만큼 예보를 설명하는 업무는 예보관에게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직원에 따라서 전화받는 업무를 유독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전화벨이 울릴 때 내선이 아니면 긴장부터 된다고 한다. 특히 업무 집중도가 높아야 하는 예보시간에 전화가 오면 당장 해야 할 업무를 뒷전으로 하고 전화를 받아야 하니 답답하기도 힘들기도 하다. 전화를 한번 끊으면 연이어 다른 전화가 오는데 그렇게 받은 전화가 하루에 몇십 건이 될 때도 있다. 특히 날씨가 나쁜 날에 오는 전화는 끔찍하다. 대체로 사람들은 화가 나 있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고, 전화받는 사람들이 이 나쁜 날씨를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전화를 하는 일도 많다. 만약 기상 콜센터가 없었다면 얼마나 더 힘들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전화를 하고 있을 때의 나는 예보관이라기보다는 상담사의 역할을 더 많이 한다. 컴퓨터나 휴대폰을 이용하고 있다면 어디를 어떻게 찾아 들어가면 되는지 알아봐 주고, 메뉴 하나하나를 설명해 준다. 어떤 직원들은 내가 전화받는 방식이 어디서 전화상담을 많이 해 본 솜씨라고 하기도 한다. 상담사 경력보다는 어떻게 전화를 받으면 가장 자연스럽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지 연구한 결과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소비자로서 고객센터에 전화를 할 때는 남일 같지가 않아 친절해진다. 전화를 끊을 때 가벼운 인사를 하는 것도 습관이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전화를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상담을 한다. 본의 아니게 콜센터 직원의 하루를 체험하는 일도 종종 있다. 주로 '악성민원'으로 분류되는 성희롱이나 폭언, 욕설 같은 것들이다. 전문 콜센터가 아니다 보니 이에 대한 매뉴얼은 명확하게 없는 데다 전화받는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환경 또한 아니다. '국민신문고' 등의 국민 참여형 민원으로 매우 불만족 기록을 남기겠다거나 부서장이나 청장에게 직접 전화하겠다는 낮은 급수의 직원으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 또한 많다. 한통의 전화를 받고 나면 걱정과 울분에 휩싸이는 일도 이상한 사람이 전화 왔다며 억울해하고 화내는 일도 있다. 다음 전화를 받을 때 손이 떨리는 일도 몇 번이나 겪는다. 자주 겪는 일이 아니기에 없었던 것으로 치고 넘어가지만 이런 일을 하루에 전화를 100여 통 가까이 받고 있을 콜센터의 직원들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럼에도 예보관, 혹은 날씨 상담사라는 나의 위치는 때론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예보를 전달하면서 업무에서 바꿔야 할 방식이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미흡한 점을 지적당하면 부끄러움이 앞선다. 전화를 받다 보면 유독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의 정보 배열이 있다. 기상청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하다시피 한 것들이었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어려웠던 것들을 발견하면 또 한 번 반성하게 된다. 예보를 말하는 방식이나 단어의 쓰임 또한 그렇다. 전화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분야나 연령에 따라서 원하는 정보가 다른 것이 확연히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말하는 사람, 즉 예보관이 전화를 받을 때는 그 예보가 혹시 나중에 틀리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확신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예보 낸 사람조차 신뢰하지 못하는 정보를 국민들이 신뢰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가능성의 정보는 필요하지만 그 가능성도 전문적인 분석에 의해 나온 것이라는 뉘앙스는 꼭 필요하다.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이 100점짜리, 100년 경력의 예보관이 된 것 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대한다.
부족함을 알기에 쉴 새 없이 공부하고 답답함을 알기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친절한 상담사가 되는 것. 예보에 대해 말할 때 초보 날씨 상담사인 내가 꼭 마음에 새겨두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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