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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 Dec 19. 2020

오늘도 지구를 기록합니다.

완전무결한 기록은 없다.

  한국에서 기상학을 공부하려면 꼭 거쳐 가야 하는 과목이 있다. 바로 현재의 날씨를 분석하고 기록할 수 있는 '관측법'과 앞으로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예보법'이다. 기상청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분야가 바로 관측과 예보이고, 실제 업무에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 두 분야는 겹치는 부분이 많아 따로 떼기가 힘들기도 하다. 단적인 예로 관측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예보를 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오늘의 예보를 모른 채 그때그때 관측에 급급하면 위험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기상현상이 발생했을 때 바로바로 대응하기 어렵다. 대체로 관측은 경력이 많지 않은 신입 직원들이 업무를 맡곤 한다. 많은 부분이 자동화되어 있고 기초적인 대기과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배우는 분야가 바로 관측 분야이기 때문이다.      


 보고 측정하는 것.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관측(觀測)은 이런 의미를 가진다. 사전적인 의미는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기상청에서는 각종 장비와 사람의 눈을 이용해 측정하고 기록하는 그 모든 행위를 관측이라고 정의하고 있다.(지상 기상관측 지침, 2016) 눈으로 보고 현장에서 느끼는 날씨의 중요성은 그 지역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기도하다. 그렇게 날씨를 바라보고 날씨를 기록하는 일을 하면서 사계절을 느끼고 기상의 특성을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요즈음은 대부분 전자 장비를 통해 관측할 수 있어 편해졌지만 지금까지도 사람의 손과 눈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 눈이나 증발량과 같이 물 현상을 측정하는 부분에서 이러한 어려움이 많이 나타난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수많은 과학 도서에 수많은 측정법이 나오지만 세계적으로 통일된 방법을 통해 기록을 남기는 것은 두근거리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는 일이다.     


 관측 업무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기는 기록, 평생 간다. 100년 뒤에 흑역사로 남고 싶지 않다면 틀리지 않게 잘해.”     


 지금은 사라진 양식 중에 관측 기록 중에 수기로 작성하는 관측 야장이라는 책자가 있었다. 정식 명칭은 ‘관측 기록부’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갔고 오랜 세월 다양한 형식으로 개량되었으며 수많은 기상관측 요소를 적었다. 대표적인 것이 기온과 구름, 강수량과 습도 같은 것들이다. 8절 스케치북보다 길이가 길고, 페이지가 여유분까지 380페이지 정도까지 되었던 책자에 떨리는 마음으로 검은색 플러스펜을 눌러 숫자를 쓰고는 했다. 글씨를 밉게 쓰는 날에는 선배들에게 타박도 받아야 했다. 현재는 전산 시스템으로 입력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수기 기록은 대부분 하지 않고 있다. 전산과 수기로 남긴 기록은 이제 쉽게 다운로드할 수도 관리할 수도 있게 되었다.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형식의 기록을 남기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기상 통계표’, 쉽게는 그냥 통계표라고 부른다. 기후통계를 내기 위한 자료라서 그렇게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표에 들어가는 기록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바로 기상현상의 시종 시간이다. 기사(記寫)를 적는다고 하는데, 기상현상이 언제 시작하고 끝났는지는 물론이고 어느 시간에 어떤 강도가 관측되었는지도 기록한다. 눈도, 안개도, 봄과 가을철에는 황사도 빼트리지 않고 하루의 일기를 적어 넣는다. 자정 즈음이 되어 자료를 다 적어 넣고 나면 바빴던 하루, 한가했던 하루가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어느 쪽이든 평생 내가 기록한 자료로 남을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공문서로 취급된다. 역사 기록에서 사관들의 이야기가 기록으로 남아 오백 년, 천년을 가는 것처럼 기상청 관측자가 기록한 오늘의 우리 동네 날씨가 그야말로 영원히 남게 된다. 나중에 예보나 특보의 검증을 할 때도 사용되고 사례를 분석할 때도 사용하기 때문에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언뜻 보면 쉬워 보일 수도 있는 ‘하늘을 보는 일’은 시간과 날씨에 따라 다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관측을 하는 요소 중에서도 늘 관측자들이 고민하게 만드는 것들이 분명 있다. 기상 관측의 요소는 기온과 이슬점 온도, 풍향과 풍속, 구름과 가시거리, 기상현상이 대표적인 자료인데 이 중 구름과 가시거리를 제외하면 자동관측장비(AWS와 ASOS)를 이용해서 쉽게 관측이 가능하다. 기기 관측의 어려움이 있는 부분이 나머지 두 요소다.     


 기상관측자가 바라보는 구름은 높이와 양, 그리고 모양으로 나뉜다. 하층운과 중층운, 상층운으로 세분화하여 표현하는데, 그 표현의 방법도 상당히 자세하다. 관측이 되지 않는 상황부터 흔히 알고 있는 10가지 종류의 구름들에 대한 설명도 기호와 숫자를 통해 알 수 있다. 하층운은 층적운(Sc), 층운(St)과 연직으로 발달하는 구름인 적운(Cu), 적란운(Cb)을 표현한다. 중층운은 고적운(Ac), 고층운(As) 그리고 난층운(Ns)의 상태와 양을 알려주고, 상층운 코드는 권운(Ci), 권적운(Cc) 그리고 권층운(Cs)을 말해준다. 세 층의 구름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것은 큰 장점인데, 한편으로는 적운과 적란운, 적운과 층운이 나타날 때 표현이 동시에 되지 않는 단점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코드로 만들어지는 자료 한 글자 한 글자의 풀이를 보고 있으면 그 날의 구름들이 그려지는 듯 눈앞이 선하다.      


 구름을 기계로 관측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런 복잡성 때문이다. 하늘 아래 같은 구름은 없다고 했던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구름은 규칙성을 가진 불규칙의 향연이다. 때로는 대여섯 가지 구름이 한 번에 관측되기도 하고 층적운도 적운도 아닌 구름이나 층운이라고 해야 할지 안개라고 해야 할지 애매한 경우도 있다. 관측자의 경험과 그날그날 날씨 상황에 따라 같은 구름을 보더라도 관측한 구름은 달라질 수 있다.     


 사람도 어려운 관측인데 기계라고 쉬울까. 운고계와 운량계를 통해 구름을 관측할 수 있지만, 기계가 관측하는 하늘은 사람의 눈으로 보는 하늘보다 훨씬 범위가 좁다. 카메라가 허락하는 각도의 사진을 찍어 구름의 높이와 구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주 원리인데, 카메라가 넓은 하늘을 모두 담기란 힘든 법이다. 기술이 더 나아지고 관측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는 사람의 눈이 더 믿을만하다는 의견도 있다.      


 또 하나는 가시거리다. 가시거리는 비교적 기계화가 쉬운 편이다. 관측 장소 주변은 보통 건물이 많이 위치하지 않은 곳이라 시야가 트여있어 얼마나 멀리 보이는지 관측하기가 편하다. 기계에도 이런 점이 똑같이 적용되어 일률적인 기준으로 관측을 해 준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사람의 눈으로 주변을 살피기 어려운 밤에도 기계로 관측하면 훨씬 편하다. 야간 시정은 특히 시정계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관측자들이 늘 힘들어하는 점은 역시 관측할 수 있는 범위가 기계로는 한정적이라는 것이지만, 다양한 장비와 기법들이 개발되어서 품을 덜 들게 해 준다. 요즈음에는 시정계 기능도 더욱 고도화되면서 사람이 놓치기 쉬운 기상현상까지 기록해 준다. 100% 신뢰할 수 있는 정보는 아니지만 한 사람이 기록해야 하는 관측을 또 다른 눈으로 관측해주니 듬직한 파트너가 된다.      


 그런데 모든 관측 요소와 관측 방법보다도 중요한 것들이 있다. 관측자들이 약한 강박증이나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기도 할 정도로 중요한 일.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대부분의 관측은 정시, 그러니까 매 시간 00분에 이루어진다. 다만 현실적으로 모든 관측이 1분 안에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보통은 정시가 되기 5분 전, 55분이 되면 미리 관측을 시작하고는 한다. 자칫 다른 업무를 하다가 잊을 수 있기 때문인지 관측자들의 컴퓨터에는 늘 정시가 되기 5분이나 3분 전부터 알람이 울리고, 정시와 정시가 조금 지난 시간까지 알람이 설정되어 있다. 그마저도 믿음직스럽지 않아서 어떤 관측자들은 휴대폰 알람을 설정해두곤 했다. 관측 업무를 경험해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에서 관측 알람을 들었는데 기상관측을 해야 하는 시간이 지나있어서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깬 경험이 있을 정도로, 그들에게 시간이라는 존재는 중요하다. 나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정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 순간에 존재하는 기상현상은 그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지하지 못한 사이 무엇인가가 지나가 버릴까 봐 안달복달하게 된다. 교대근무를 하니 하루에 열두 번을 관측하면 퇴근 시간이 되는데도 그때그때 긴장되고 손이 떨리는 일이 다반사다. 정시를 전후로 소나기라도 내린다면 1분 1분의 하늘을 바라보느라 쉴 틈이 없다.      


 대한민국은 여러 나라 중에서도 관측환경을 갖추기가 유독 어려운 나라다. 관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꽤 큰 공간이 필요하다. 최소 70m2, 평으로 따지면 21평 정도가 필요하다. 관측 장비가 많은 곳이라면 가로세로 25m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데, 평수로 따지면 190평 정도다. 인구밀도가 낮은 중소도시에서는 큰 상관이 없지만 큰 도시에 관측 환경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 다행인 것은 자동기상관측장비들 중에서도 꼭 필요한 장비들만을 선별해서 좁은 장소에도 설치를 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관측을 하는 사람들은 그 장소 하나하나의 특성을 알고 기온이 갑자기 오르면 왜 오르는지, 비가 그곳만 피해 간다면 이유가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분석한다. 그렇게 지형 특성을 분석한 자료를 가지고 예보관들은 예보를 낼 때 참고하게 된다. 대한민국처럼 복잡한 지형일수록 다양한 관측 자료가 축적되어 있어야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모든 예보와 모든 수치모델의 든든한 기반이 되어주고 있는 관측자료. 하루하루 내 이름이 새겨진 관측 기록을 볼 때마다 그날의 날씨가 떠오를 때가 많다. 관측 업무는 날씨를 바라보는 일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출발점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오늘도 묵묵히 티 나지 않게 하늘을 바라보고 지구의 하루를 기록하고 있다. 완전무결한 기록은 없지만, 그럼에도 나의 기록이 무엇인가를 바꾼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눈이 오는 날에는 온통 하늘이 하얘서, 어떤 구름이 있는지 알기가 힘들다. 이럴때는 위성 사진을 얼른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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