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온뒤 May 25. 2021

게으른 햇살 아래서 마카롱

사소한 것에 행복을 누리는 법


마카롱을 그리 좋아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작고, 비싸고, 단맛이 강한 그 디저트는 신기하게도 대부분 비슷하게 생긴 모양새였다. 크림과 꼬끄에 맛이 있다면 얼마나 있겠는가, 하는 편견에 사로잡혀 마카롱은 내 디저트 투어 메뉴에서 사정없이 빠졌다.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흘러서 나는 마카롱으로 글도 쓰는 사람이 되었다. 프랑스의 유명 마카롱도 이탈리안식으로 만든 마카롱도 한국식 뚱카롱도 모두 즐기는 호불호가 적은 사람. 마카롱을 즐기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사연이 있지만 더 이상 내가 '가성비'에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적당히 맛있고 양이 많은 디저트도 좋지만 한입의 사치같이 풍부한 맛을 주는 작은 디저트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조금 더 잘 알았다면 외국에 나가서도 많은 제과점의 마카롱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도 든다.


마카롱은 만들기가 까다로운 디저트다. 생긴 건 참 무해하고 사소하게 생겼는데 그 안에 든 공을 알고 나면 쉬이 여기기 힘든 디저트이기도 하다. 마치 수면 위의 백조와 같은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더불어 마카롱 한 개의 단가가 프랜차이즈 제과점 단팥빵 두 개 가격이라고 해서 마냥 나무랄 것도 못된다. 우선, 들어가는 재료부터가 국내산이 불가능한 재료이기도 하다. 마카롱의 꼬끄(coque, 마카롱 양 옆을 햄버거 빵처럼 둘러싼 부분)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몬드 분말을 이용해야 한다. 계란 흰자에 슈가파우더를 넣고 만든 머랭을 아몬드 분말과 함께 섞는 것이 꼬끄 반죽 만드는 방법이다. 말로 하면 쉬워 보이지만 일단 저 머랭이라는 녀석의 농도와 되직함을 일괄적으로 맞추기가 매우 어렵다. 과하게 저어서 너무 단단한 머랭이 되어서도, 너무 묽은 머랭이 되어서도 안된다. 만들어진 머랭은 지체 없이 체친 아몬드 분말과 다른 분말류(말차나 녹차분말, 카카오 분말 같은 부재료들)를 섞는다. 이때 마카로나쥬(Macaronage)라고 불리는 섞는 법을 이용해서 마카롱 꼬끄 반죽이 적당하게 공기가 섞이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핵심이다. 그 반죽을 짜는 주머니에 넣어 '적당한' 압력으로 짜 주고 '적당히' 말린다. 그리고 오븐에서 150도로 13분 정도 날씨 상황에 따라 '적당히' 말려주는 작업을 하면 완성이다.


간단하게 표현해서 '적당'이지만 사실 변화무쌍한 한국의 날씨는 마카롱을 만들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다. 밀폐되어 온습도가 완벽하게 조절되는 환경이 아니라면 외부 기온이나 습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많은 개인 제과사들이 자신의 카페에서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어려움을 생각할 수 있다. 만들어진 마카롱 꼬끄들은 잘못 건드리면 부서지는 경우가 많아 조심조심 다루어야 하는 부분도 한 가지 어려움이다.


마카롱의 사이에 들어가는 필링은 또 어떤가. 내용물을 넣을 때 선택지가 천차만별이라 꼬끄 맛과 밸런스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고, 적당히 단단해서 마카롱 전체의 모양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마카롱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라뒤레 마카롱은 필링이 많지 않은 편이지만 한국에서는 '뚱카롱'이라고 부를 정도로 많은 양의 필링을 넣은 마카롱도 있다. 필링의 양은 순전히 개인 취향인 듯하다. 꼬끄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것은 필링이 적은 쪽이고, 필링이 많을수록 꼬끄의 맛보다는 필링의 맛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마카롱은 만드는 전 과정이 제과사(파티시에)의 상상력과 경험, 밸런스가 많이 요구되는 고난도의 디저트이다. 그래서 제대로 만들어진 마카롱은 비싸다. 그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마카롱의 매력을 느끼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고객의 취향인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했음에도 '그런 비싼 디저트를 마구 먹다니 너무 사치스러운 것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예전의 내 생각도 그랬다. 하지만 마카롱을 만드는 체험을 해본 후에는 도저히 마카롱을 천 원에 판다는 것이 이해가지 않았다. 거기다, 마카롱의 매력은 배부를 때도 한 개 정도는 커피와 함께 심심하지 않게 즐길 수 있다는 그 부분에 있다. 배는 부른데, 음료만 주문하기는 조금 허전하고 길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말이다. 마카롱은 그 모양만으로도 훌륭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어떤 마카롱을 취향으로 하는지, 요즘은 어떤 마카롱이 유행인지, 필링은 두꺼운 것을 선호하는지 그 반대인지. 많은 디저트가 제각기의 취향이 있기 때문에 마카롱도 비슷하다. 어영부영 몇천 원짜리 케이크를 주문했다가 반도 먹지 못하고 남긴 경험이 있는 내게는 오히려 마카롱 하나가 훨씬 저렴하게 느껴진다.


마카롱을 가장 즐기기 좋은 때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오후 세시반을 꼽을 것이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에 카페를 가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음료 한잔에 마카롱 한알. 책 한 권을 느릿느릿 읽으면서 저녁시간을 기다리기에는 딱 좋다. 해는 정오처럼 찌를 듯이 강하지는 않고 약간 기울어서 창문에 가려지거나 블라인드 사이로 조금씩 고개를 내미는 정도다. 내가 마카롱을 즐기러 가는 카페들은 대부분 햇살이 잘 드는 남향으로 커다란 창문을 가지고 있었다. 바깥을 보기도 하고 멍하니 조용조용하게 흘러나오는 가게의 오르골 음악을 듣기도 했다. 손님들 또한 대부분 나와 비슷하게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손님들이었고, 수다스러운 손님들이 오더라도 가게가 작은 탓인지 목소리를 낮추어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곳이었다. 그 공간에 녹아 있을 때면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쉬어가는 기분도 든다.


아주 게으르고 싶을 때 마카롱을 먹는다. 어쩌면 귀족들이 먹었다는 사치스러움을 조금 빌려오고 싶은 걸지도. 커피도 잘 어울리지만, 따스한 홍차나 허브티와도 궁합이 잘 맞다. 햇살과 잘 어울리는 디저트라는 생각이 드는 건 습관 때문일까. 아니면 동그랗고 예쁜 디저트가 주는 소소하지만 따스한 행복 때문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소나기가 와장창 오면 샤브샤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