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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 May 17. 2021

소나기가 와장창 오면 샤브샤브

 코로나19 탓인지 친구들과 만날 수 있는 날도 굉장히 드물어졌다. 그 전에도 일 년에 두세 번 밖에 못 보던 친구들이었는데, 한 명은 육아를, 두 명은 직장에 바빠 서로를 못 본 지가 어언 2년이 되어간다. 사실 코로나보다도 서로의 삶이 바빠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언젠가 서로가 시간을 만들 수 있게 되면 또 만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하는 나날들이다. 


 이 친구들, Y와 S는 대학 때부터 항상 함께 몰려다니던 친구들이다. 교우관계가 그리 넓지 않던 내가 부모님까지 얼굴을 튼 몇 안 되는 아이들이기도 하다. 처음 이들을 우리 집에 초대했을 때도 마치 글을 쓰는 오늘 같은 날이었다. 우중충하고 비가 꼭 여름처럼 무식하게 내리던 날이었다. 계절은 언제였지.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비탈길을 잔뜩 올라야 하는 우리 집에 올라오기 힘들 정도로 비가 많이 쏟아졌던 것만 기억이 난다. 용띠 세명이 모이니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면서 웃었더랬다. 


 당시는 샤브샤브가 유행하던 때였다. 샤브샤브라는 단어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그 음식은 우리를 점령해 버렸다. 전골과 같은 국물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고기를 먹으면서도 야채를 먹어 살이 찐다는 죄책감을 덜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자작해진 국물에 만들어 먹는 죽이나 칼국수도 일품이었다. 월남쌈과 함께 먹는 뷔페 형식의 샤브샤브도 많았다. 배고픈 대학생들에게 중요한 가격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해물이나 다른 옵션에 따라 가격이 달라졌으니. 하지만 고기는 종잇장만큼 얇게 주고, 야채만 산더미같이 주는 샤브샤브에 지친 우리는 결국 한 사람의 집에 모여 샤브샤브를 먹기로 했다. 바로 우리 집에서. 


 날은 주말이었다. 부모님이 집에 계시긴 했지만, 두 분이 대외활동으로(아마도 산악회였을 것이다) 집을 비우신다는 것을 확답받고 친구들을 초대할 계획을 세웠다. 어머니의 추천으로 샤브샤브용 한우를 잔뜩 마련하고, 야채와 버섯도 준비했다. 오래간만에 집에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기분에 청소도 열심히 했다. 다 함께 모여서 배가 터지도록 샤브샤브를 먹고 수다도 떨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그 친구들과는 아직도 대학 새내기처럼 수다를 떤다. 소재가 달라져도 마음은 그때처럼 말이다. 


 샤브샤브는 몽골에서 시작되어 일본으로 전파된 요리라고 한다. 몽골에서는 투구에 국물을 끓여 먹었다고 하는데 옛날 사람들이 머리도 제대로 감지 않았을 것을 생각하면 비위생적이기 짝이 없는 요리였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일본에서 소위 '나베'라고 하는 냄비에 전골요리처럼 먹는 요리로 발전을 했으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한국형 샤브샤브만 알고 있던 나는 일본에 여행 갔을 때 현지의 '샤부샤부'를 보고 조금 놀라기는 했더랬다. 1인분의 양이 너무 적어서. 그리고 1인분짜리 샤브샤브가 있어서. 


 여러 나라에서 자신들만의 바리에이션이 있을 만큼 샤브샤브는 응용이 가능한 음식이다. 현지의 야채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메인이 되는 것은 육수와 고기. 육수는 다시마나 멸치를 베이스로 약간 진하게 준비한다. 미리 간을 해도 좋지만 졸아들 것을 생각해서 심심한 듯이 간을 맞추는 것이 좋다. 여러 가지 육수를 준비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냄비를 두 개 준비해야 할 것이다. 준비할 시간이 많다면 먹기 전날 멸치, 디포리, 다시마, 양파, 파를 넣고 30분에서 2시간 정도 길게 우려내 준다. 다시마는 중간에 빼라고 하기도 하지만 여러 번 먹어본 결과,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넣어놓으나 아니나 크게 차이를 느끼지 않았다. 육수를 준비할 시간이 없다면 시판하는 국수장국 소스를 이용해도 된다. 솔직히 맛은 이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간편하기도 하고, 꼭 사 먹는 맛이 난다. 치킨스톡도 넣어서 만들어 봤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샤브샤브'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마트에서 파는 훈제 멸치를 우리면 가다랑어포를 끓인 느낌도 난다.


 다음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고기. 고기는 정육점에서 어떤 소고기 든 '불고기 용' 혹은 '샤브샤브 용'을 준비하면 된다. 불고기용은 조금 두꺼울 수도 있으니 주의한다. 얇고 야들야들해서 국물에 넣자마자 익어버리는 정도를 원한다면 샤브샤브용으로 얇게 잘려있는 고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냉동 우삽겹을 사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차돌박이도 좋지만 모든 고기를 차돌박이로 준비하면 국물이 느끼해질 가능성이 크다. 1인분에 보통 200g이라고 나오지만 300g 정도 준비하는 것이 심적으로 넉넉하다. 남으면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볶아 먹어도 되니까. 육식파에게 고기는 늘 옳다. 


 마지막으로 야채를 준비한다. 필수 야채는 배추(혹은 양배추), 대파, 숙주, 표고버섯 정도. 모두 국물의 맛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들이다. 다양한 야채를 넣어 보았지만 어울리지 않는 야채는 없었다. 아, 상추와 오이는 제외한다. 넣으려는 사람도 없을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야채 각각의 양을 적당하게 조절하는 것이다. 1인분을 기준으로 하면 배추는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이파리로 2장 정도면 충분하다. 대파는 1줄기의 절반 정도, 숙주는 한 줌에서 한 줌 반, 표고버섯은 한 개를 편으로 썬 정도. 나머지 모든 야채는 한 줌에서 한 줌 반 정도를 준비한다고 생각하면 좋다. 최종적으로 샤브샤브를 끓일 냄비에 가득 차는 정도면 1인분(물론 냄비도 1~2인용 기준), 2번 차는 정도면 3~4인분이다. 야채를 얼마나 좋아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말이다. 


 또 하나, 샤브샤브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소스다. 보통 노란 연겨자와 간장을 섞은 양념을 많이 준비하는데 전문점에 가면 다양한 소스가 있다. 그중 추천할 만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연초록 와사비와 간장을 섞은 와사비간장과 간장과 매실청, 식초, 깨소금, 참기름을 섞은 만두 간장이 가장 기본이다. 상큼한 것을 원한다면 유자청을 활용한 소스도 좋다. 새우와 어울리는 칠리소스도 매콤해서 좋다. 쌀국수에 뿌려먹는 소스들도 다 어울린다. 스리차차나 해선장 같은 것들 말이다. 월남쌈과 함께 먹는 곳에서는 땅콩소스도 나오는데, 짭조름하고 땅콩 맛이 강한 것이 일품이었다. 하지만 기본 소스만을 준비해도 샤브샤브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샤브샤브만큼 계절에 맞게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많지 않다. 재료는 대부분 생으로 준비하면 되기에 양념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여러 사람이 먹기에도 좋다. 따끈한 국물은 배를 채우는 것과 동시에 차가워진 몸에 훈기를 가져다준다. 비 오는 날에 비에 젖어 차가워진 몸에 국물과 고기를 넣으면 위로를 받는 기분이다. 국물의 힘일까, 고기의 힘일까.




사진출처: pixabay @ng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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