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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 Apr 29. 2021

숨이 턱 막힐 때 뚫어주는 감바스 알  아히요

 몇 년 전 여름 부모님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다녀오셨다. 친한 부부와 함께하는 6인조 중년 그룹이었다. 차를 한대 빌려 타고 2주가 넘게 했던 그들의 도전은 지금까지도 내가 부러워하는 자유여행 중 하나다. 여섯 분 모두 영어가 능숙하지도 않았고, 스페인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여행을 가기 전 기본적인 회화와 다양한 예시를 가져가기는 하셨다고 했지만 나는 아직도 부모님과 그 친구분들이 어떻게 여행을 했을지가 궁금하다. 몇 번이나 그때의 에피소드를 들었음에도.


 중요한 건 내가 한 번도 스페인을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나는 아직 유럽 대륙에 제대로 발을 들여보지도 못한 아시아 촌사람이다. 남들은 대학생 때 빚을 내서라도 간다던데, 나는 오히려 북미 대륙을 일주하기에 바빴더랬다. 회사에 들어와서 이렇게 몇 번이나 갈 줄 알았다면 유럽을 향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날이 더운 여름만 되면 종종 부모님과 '본격! 스페인 여름 VS 한국 여름!'과 같은 에피소드 대회를 열고는 한다. 그리고 나는 무참히 패배한다. 스페인의 더위를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도 스페인 느낌이 물씬 나게 만드는 요리가 있다. 한국에서도 이미 양식 좀 먹는 사람들에게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새우+마늘+기름 요리다. 이름은 감바스 알 아히요(Gambas al Ajillo)인데 스페인어라 한국으로 직역하자면 대충 새우와 마늘이라는 의미다. 앞서 이야기 한 재료와도 딱 맞아떨어진다.


 감바스 알 아히요(이하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쓰는 줄임말인 '감바스'로 통일하겠다.)가 인기가 많아진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게 감바스는 파스타는 먹기 싫고 양식은 먹고 싶을 때 안주로 딱 맞는 요리였다. 감바스는 우선 탄수화물이 없다. 그렇다 보니 왠지 살이 찌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을 들게 한다. 재료도 언뜻 굉장히 다이어트에 최적화되어 있다. 거기에 술안주의 대명사답게 맥주와 어울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와인과도, 소주와도 어울린다. 막걸리와는 약간 겉돌지만 감바스의 느끼함을 막걸리의 달콤 쌉싸름함이 씻어줄 때도 있어서 별점 다섯 개 중에 세 개 정도는 줄 수 있는 정도다. 코냑이나 위스키와는 함께 먹어보지 않았지만 일단 증류주 계열과는 다 사이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뭐니 뭐니 해도 다양한 맥주와 모두 어울린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부모님은 올리브 향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셔서 감바스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두 분이 찍어오신 사진에 언뜻 감바스로 보이는 요리가 얹어져 있기도 했다. 맥주와, 상기되어 달아오른 뺨도 함께 말이다. (아버지는 뜨거운 햇빛에 타서 그렇다고 설명해 주셨다.) 스페인에서는 대중적으로 먹는 요리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경악했던 점은 바로 기름의 사용에 있었다.


 감바스는 근본적으로 기름을 아주 잔뜩 먹게 되는 요리다. 양식 레스토랑에 가서 내가 예전에 놀란 경험과도 일맥상통했다. 식전 빵과 함께 나오는 소스가 그것이다. 보통 올리브유와 발사믹 소스를 섞은 소스가 나온다. 샐러드에는 오리엔탈 소스가 뿌려져 나오는데 이 또한 올리브유에 발사믹 소스를 더한 것이다. 외국인들은 참 기름을 먹는데 거부감이 없나 보다, 하고 내게는 접근할 수 없을 음식으로 남기도 했다.


 만드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재료를 준비하는 것이 80%쯤 되는 것 같다. 나머지는 예쁜 팬과 적당한 화력이 알아서 해준다. 먹고 싶은 만큼의 새우와 통마늘과 매운 재료(페페론치노, 청양고추, 베트남 고추, 홍고추, 전부 없다면 고춧가루라도.), 후추, 올리브유가 기본 재료다. 파스타에 뿌리고 남은 파슬리 가루나 바질 가루가 있으면 더 좋다. 새우는 내장을 정리하고 꼬리지느러미를 씻은 후 머리를 잘라내고 껍질을 벗긴 상태로 준비한다. 손질이 되어 있는 것을 사면 더 편하다. 물론 손질된 것들도 내장이나 이물질이 묻어있는지 꼼꼼히 확인해준다. 감바스는 새우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후추와 아주 약간의 소금으로 약간 밑간을 해 둔다. 굵은소금 말고 가는소금을 이용한다.


 다음으로는 야채류를 손질할 차례다. 통마늘은 적당 적당히 편으로 썬다. 칼질이 익숙하지 않다면 십자 모양으로 네 조각 정도도 괜찮다. 모양은 좀 없지만. 매운 재료는 너무 많이 넣으면 한도 끝도 없이 매워지기 때문에 적당히 매콤할 정도의 양만 준비한다. 페페론치노와 베트남 고추는 바싹 말라있으니 손으로 약간 뭉갠다. 홍고추나 청양고추는 어슷 썰고 고춧가루는 뭉치지 않게 잘 풀어준다. 개인적으로는 고춧가루를 넣은 감바스가 정말 매력 있었다. 마찬가지로 모양은 좀 없다.


 그럼 정말 마무리 단계다. 먼저 마늘과 매운 재료(고춧가루를 제외한)를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른 팬에 볶아준다. 고춧가루를 제외한 이유는 너무 빨리 넣으면 타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향이 올라오면 새우를 넣고 익힌다. 고춧가루를 준비했다면 새우를 넣기 전에 기름을 조금 더 두르고 볶는다. 새우가 다 익으면 완성이다. 새우만큼 확실히 내가 익었다는 표시를 내주는 재료도 드물기에 익힘 정도를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매력이다.


 감바스에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의 감바스와 스페인의 감바스가 중요시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감바스에는 마늘이 많다. 얼마나 많으냐 하면 감잣국의 양파만큼 많다. 가끔 감자만큼 많이 넣어서 파는 곳도 있다. 내 취향 또한 마늘 잔뜩이기에 감바스를 먹고 난 날이면 삼겹살에 마늘 쌈 싸 먹은 것 마냥 몸에서 마늘 냄새가 진동할 때도 있다. 새우는 굳이 이야기하자면 된장찌개에 1인당 1개씩 들어가는 새우만 들어가도 불만을 가지지 않는 편이다. 맛있는 감바스의 관건은 새우에서 비린 맛이 올라오지 않는 것이다. 그 때문에 냉동 새우를 쓰면 아무래도 맛이 조금 덜하다. 비린 맛을 잡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후추 밑간을 조금 강하게 하는 것도 좋다.


 완성된 요리 곁에 아침에 사 온 바게트 빵을 썰어둔다. 마늘빵처럼 따로 굽지 않아도 충분하다. 감바스 접시의 올리브유가 훌륭한 소스가 되기 때문이다. 파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양껏 먹고 남은 기름도 절대 버리면 안 된다. 가능하면 올리브유뿐만이 아니라 밑재료도 좀 남겨주면 더 좋다. 맥주와 감바스를 실컷 먹으며 즐겼다면 다음날 아침에 남은 감바스를 가지고 알리오 올리오 인 듯 아닌 듯한 파스타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면을 삶고 적당히 삶아진 면을 남겨놓은 감바스에 넣고 볶는다. 재료가 많이 없다면 양파나 파나 피망이나 버섯 같은 재료를 좀 더 추가한다. 새로운 요리가 될 기회를 얻는 것이다. 큰 크기의 건새우 서너 개를 넣어도 식감이 나쁘지 않다. 파스타와 버섯은 찰떡궁합이므로 다양한 버섯으로 시도해 보는 것도 좋겠다. 팽이버섯을 제외하면 대부분 성공이었다.


 요리로 한번, 빵에 찍어먹는 소스로 한번, 파스타로 한번. 총 세 번을 즐길 수 있는 감바스는 요즘도 종종 내 식탁에 오르기도 한다. 혼자서 즐겨도 좋고 여럿이서 즐기면 더 좋은 요리가 감바스이기 때문이다. 감바스가 생각나는 것은 역시 뜨거운 여름이다. 국물을 후루룩 들이마시기는 힘들고 고된 일에 맥주 한잔이 생각나는 여름 더위. 뜨거운 바람이 부는 야외에 앉아서 맥주나 레모네이드를 한잔 마시면서 가볍게 즐기는 음식으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재료가 간단하니 불 앞에 오래 앉아 있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다. 면처럼 증기가 많이 나는 음식이었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열정적인 여름을 상상하면서 감바스를 이야기하면 무슨 겉멋이냐 싶어도 때로는 기분전환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언젠가 부모님과 유럽에 여행을 가게 되면 부모님이 나를 리드해 주기로 했던 적도 있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추억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이지만 그래도 영 낯설던 감바스는 부모님과 내게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 주었다. 현지에서 이 매력적인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힘들지만 신나게 기다리련다.



사진출처

pixabay @touch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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