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단짠의 정석
'소풍 메뉴'라고 하면 역시 김밥이 최고겠지만, 나는 유부초밥을 더 좋아하는 애였다. 김밥을 쌀 시간이 없을 때면 엄마는 마트에서 파는 '유부초밥 세트'를 사 오셨다. 그때는 유부가 두부를 튀겨서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도 몰랐지만 삼각형으로 생긴 고양이나 강아지의 뽕실한 귀 모양을 하고 새콤달콤한 초밥 소스에 다양한 토핑(과 함께 MSG 또한)을 뿌려 먹노라면 수분이 부족한 김밥에 비해 매력적이기도 했다. 만들기가 쉽다는 것도, 김밥에는 간 소고기를 잘 넣지 않는 엄마가 유부초밥에는 종종 간 소고기를 함께 넣어준다는 것도 좋았다. 우리 집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유부초밥을 만들어본 일이 없을 것이다. 애매한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은 엄마가 '유부를 절여서 해 볼까'하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 어렴풋하게 기억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가 현실로 이루어졌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자취를 하면서 단 한번, 직접 유부초밥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유부를 사서 조림간장에 조리고 양념장을 만드는 것까지 말이다. 막상 해보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많은 대체제가 있는데 매번 유부를 사고 데쳐 졸이는 과정을 하기는 힘들다.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먼저 네모난 유부를 산다. 인터넷에 조림용 유부나, 냉동 유부 중에서 조미가 되어있지 않은 제품을 사면 된다. 보통 냉동상태로 오고, 일본 우동집에 가면 정사각이나 직사각형으로 두툼하게 만들어져 있는 유부가 바로 그것이다. 혹여 두부를 튀기는 작업까지도 자신의 손으로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물론 추천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편으로 썬 뒤 꾹 눌러서 물기를 최대한 뺀 후 110~120도에서 한번, 기름을 빼고 180~190도에서 한번 더 튀기면 된다고 한다. 그렇게 튀긴다고 해서 파는 유부 정도의 퀄리티가 나올지 아닐지는 해 봐야 알 일이다. 대부분의 튀김요리는 가정에서 하기에는 매우 힘들고 귀찮은 작업이라는 것 만을 밝혀둔다. 유부를 구했으면 직사각형이나 이등변 삼각형으로 잘라준다. 요즘 유행은 사각형인 듯하다. 기름기를 조금 더 제거해주기 위해서 쌀뜨물에 살짝 데치라고 하는데 쌀뜨물이 없는 나는 끓는 물에 8~10초 정도 데쳤다.
조미간장은 일본식 가쓰오부시 장국용 간장 소스(혹은 양조간장일 경우 다시마와 함께 양을 1.5배로)와 설탕, 식초, 청주를 3:1:1:0.5 정도로 섞어주는데 사람마다 원하는 양념이 다르니 이것을 베이스로 설탕이나 매실진액 등을 가감하면 된다. 식초를 너무 많이 넣지는 않는 것이 좋다. 양념장이 너무 간이 세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양을 만들고, 많다 싶으면 물을 넣으면 된다. 그 후 냄비에 끓는 물에 데친 유부들을 양념장에 자작하게 깔고 양념장과 동량의 물을 함께 넣고 자작하게 졸이고 잘 조려졌을 때 식혀주면 유부는 완성이다. 남은 양념장은 버터 간장밥이나 간장 국수 소스로 써도 맛있다.
내부 밥은 고슬고슬하지 않아도 된다. 일식집에서는 초밥에 쓰는 밥과 비슷하게 만들어 주지만, 우리 집 밥은 전통적으로 항상 질은 밥이었기 때문에 나는 밥의 상태에 그다지 연연하지는 않는다. 밥용 조미소스는 식초:설탕:소금:간장:청주를 3:2:0.5(그냥 한 꼬집정도):색이 진해지지 않을 정도:1로 준비한다. 이 또한 먹어보고 너무 시거나 달지 않게 밸런스를 맞춘다. 후리카게와 김가루, 조림 우동이나 볶은 당근, 간 소고기 등 주먹밥을 만들만한 재료가 있으면 무엇이든 잘게 다져 준비해놓는다. 밥과 소스, 부재료들을 모두 넣고 주먹밥 만들듯이 잘 섞어 유부 안에 안착시켜주면 끝이다. 밑준비가 오래 걸릴 뿐 대량생산을 하기에 아주 적절한 메뉴다. 1인분을 만들기에는 참 아쉬운 메뉴.
그래서 결국 간편한 인스턴트 초밥세트를 사게 된다. 브랜드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평균치 이상의 맛을 하고 있다. 조미소스를 뿌리고 갈아 볶은 고기와 다진 야채만 준비하면 끝이다. 놀러 가는 기분을 내면서 만드는데 채 20분이 걸리지 않는다. 그나마 10분은 뒷정리를 하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김밥보다도 유부초밥을 먹는 일이 많아졌다. 일회용 도시락에 차곡차곡 오와 열을 맞추어 엎어져 있는 유부초밥을 볼 때는 괜히 기분이 좋다. 쫄깃쫄깃한 유부를 씹었을 때 양념장의 국물이 입안에 퍼지면서 적당히 촉촉한 밥알과 섞일 때, 바깥에 있다면 하늘을 보게 된다. 이른 단풍이 철없이 하늘을 올리브 색으로 물들인 그런 날에 먹는다면 더욱 행복하겠지. 바람은 딱 카디건을 입을 정도로 선선하고 나무 그늘에서는 조금 서늘한 듯하면서 공기는 깨끗하게 건조한 날씨.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오전 내내 바람은 적당했고 햇볕은 따가웠지만 우거진 나무 아래에 있으면 덥지도 춥지도 않은, 그야말로 딱 좋은 산책 날씨다. 벤치에 앉으면 유부초밥 도시락을 싸오지 않은 것이 아쉬울 정도로 말이다. 공원에는 그늘막 텐트를 치고 오수를 즐기는 부모님들과 햇살 아래에서 에너지를 끊임없이 분출하는 아이들이 가득하겠지. 그런 상상이 늘 함께 온다.
기분 좋은 날에 먹을 만한 음식이다, 유부초밥은.
사진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stuart_spivack/